‘극과 극’ 한계에서 시작하는 페미니즘

이영경 기자
일본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왼쪽)와 AV배우·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작가 스즈키 스즈미.

일본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왼쪽)와 AV배우·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작가 스즈키 스즈미.

십대부터 ‘밤 세계’를 경험한 AV배우 출신 여성 작가, 대표적 페미니스트와의 만남이라니 그 자체로 흥미롭다.

대학생 때 유흥업소 직원으로 일하고 AV 배우로도 활동한 스즈키 스즈미는 일본경제신문사에서 5년간 기자로 일하고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성공한 작가다. 대화 상대는 <여성혐오를 혐오하다>를 쓴 일본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학자 우에노 지즈코다. 우에노는 스즈키의 책 <귀엽고 심술 맞은 여동생이 되고 싶어>를 보고 “이런 제목을 쓰는 건 이제 한계가 왔죠”라고 논평한다. 자신의 한계 밖으로 나가고자 애쓰는 젊은 작가와 우에노가 주고받은 편지글은 페미니즘의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문학수첩) 이야기다.

‘83년생 스즈미’는 페미니즘이 가져온 변화에 따른 희망과 좌절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세대다. ‘결혼-출산-육아’라는 생애주기를 충실히 따른 ‘82년생 김지영’과 또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해 애썼다. 남성 중심 성 시장에서 일하며 성적 매력을 ‘에로스 자본’으로 여기며 이를 이용해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우에노는 “자본의 소유자가 그 자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재화를 자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스즈키가 AV 여배우들이 촬영장에서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피해상황에 놓이는 것에 대해 “피해자로 여겨지고 싶지도 않고 약자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자, 우에노는 일본 미투 운동 시작을 이끈 이토 시오리, 위안부 피해자들을 예로 들며 “피해자라고 밝히는 것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강함의 증거”라고 말한다.

우에노가 스즈키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다. 둘은 솔직하게 대화하고, 대화 속에서 연대가 이뤄진다. “페미니즘이란 어떤 물음을 제기했을 때 정답이 나오는 자동기계장치가 아니”라는 우에노의 말, “일상을 살아내는 순간에 여성이 조금이라도 부자유스러움을 느낄 때, 실제로 나를 구해줄 사상이 있다고 여기게 됐으면 좋겠다”는 스즈키의 말이 공존한다.

[책과 책 사이] ‘극과 극’ 한계에서 시작하는 페미니즘
[책과 책 사이] ‘극과 극’ 한계에서 시작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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