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단어
르네 피스터 지음 | 배명자 옮김
문예출판사 | 232쪽 | 1만7000원
슈피겔은 독일의 대표적인 진보성향 시사 주간지다. 르네 피스터는 슈피겔의 워싱턴지국 편집장이다. 그는 미국 국가안보국이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한 사건을 취재해 독일어권 최고의 기자상인 헨리난센상을 받았다.
<잘못된 단어>는 피스터가 최근의 극단적인 ‘정치적 올바름’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든 피해가려 할 만한 민감한 사례들을 예로 들어가며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오랫동안 기자 일을 하며 사실 검증, 가치 판단, 대중적 글쓰기를 훈련해온 저자의 시각은 날카롭고, 문장은 직설적이다.
그는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된 뒤 벌어진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 운동의 핵심 구호인 ‘경찰 예산 삭감하라’가 ‘경찰 전체를 해체하라’라는 주장으로 확대되면서 어떻게 운동 전체에 악재로 작용했는지 분석한다. 뉴욕타임스의 편집자였던 맥닐이 인종차별을 주제로 토론하던 중, 남의 말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니그로’라는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것이 정당했는지 묻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경찰의 흑인 폭행 문제를 여러 차원에서 토론해보자고 했다가 일부 학생들로부터 ‘흑인 차별을 인종주의 외 다른 근거로 해명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항의를 듣고 토론을 못했던 일을 사례로 들며 이런 문제에 대해 단 한 가지 시각만 갖는 것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여성 배우였던 엘렌 페이지가 남성으로 성별을 변경했을 때 ‘엘렌 페이지가 엘리엇 페이지로 바뀌었다’고 보도한 독일의 많은 언론이 ‘여성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의 죽은 이름을 공개했다’는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의 비판을 받고 기사를 수정하고 사과했던 것이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에 굴복”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독일 언론인이 주로 미국과 독일의 사례들을 가지고 쓴 것이어서 읽다 보면 책에서 언급된 사건들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고 싶어진다. 각 사건에 대한 판단에 따라 피스터의 주장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겠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뭔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분노의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쿨하고 여유로운 자유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