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 없어” 필연을 깬 SF의 맛

백승찬 선임기자
[책과 삶] “당연한 건 없어” 필연을 깬 SF의 맛

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 지음 | 권영주 옮김
비채 | 304쪽 | 1만6800원

뉴턴이 없었더라도 만유인력은 발견됐을 것이다. 만유인력은 케플러 같은 앞선 과학자들이 이룬 성과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디킨스가 없었다면 <올리버 트위스트>도 없었을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집필에 ‘역사적 필연성’은 없기 때문이다.

헤겔을 잇는 무신론 철학자 마르크스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노동운동에 정통했던 엥겔스가 만나지 않았다면 공산주의는 있었을까. 2015년 데뷔해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SF 작가 오가와 사토시의 중편 ‘거짓과 정전’은 이 질문을 탐구한다. 공장에서 일어난 폭동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엥겔스의 모습에서 시작해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스파이전이 이어진다. 역사에서 공산주의를 없애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 역사를 변형시키려는 사람과 ‘정전’을 고수하려는 사람이 대립한다. SF적 발상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 잘 쓰인 스파이 스릴러 역할도 한다.

<거짓과 정전>은 표제작을 비롯해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진 작품 6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마술사’는 기발한 타임머신 마술을 사용하는 마술사 부녀의 이야기다. ‘한줄기 빛’에는 서먹한 사이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경주마 때문에 고민하는 아들이 등장한다. ‘무지카 문다나’는 음악이 화폐이자 재산으로 통용되는 섬을 배경으로 한다.

발상이 재치 있고, 가독성도 뛰어나다. <거짓과 정전>은 오가와 사토시의 첫 단편집이다. 오가와는 “SF의 재미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가치관이 붕괴되는 듯한 감각을 맛보는 데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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