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가수 비가 돈 내고 군 면제받는다면” 청중과 논쟁

김향미·박순봉 기자

연세대 2시간 특강… 14000석 빼곡

1일 오후 7시.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 노천극장에서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59)의 특별강연이 열렸다. 이날 1만4000석 규모의 노천극장에는 강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청중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지난달 선착순으로 배포된 무료 강연티켓(1만2000장)은 3일 만에 동이 났다.

강연장에는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청중이 자리했다. 샌델 교수는 청중과 함께했다. 재치 있는 발언으로 폭소를 이끌어내는가 하면 곧바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청중을 고민스럽게 만들었다. 이날 강연은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주제는 그의 새로운 책 제목과 같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샌델 교수는 청중에게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한국말로 첫인사를 했다. 그는 “오늘 철학강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청중이 토론하는 철학강의이자 가장 민주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오늘 논의할 주제는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지금은 ‘시장경제체제’에서 ‘시장사회’로 변했다. 과연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물음”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1일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자신의 신간과 같은 제목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1일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자신의 신간과 같은 제목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샌델 교수는 자신의 무료 강연티켓이 인터넷상에서 암표로 거래됐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가수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 티켓을 암거래로 사는 게 적절한지를 청중에게 물었다. 한 청중이 “내게 표가 있다면 자유롭게 팔 결정권이 있고, 또 공연을 보고 싶다면 표를 살 권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샌델은 “중국 베이징 외곽에 있는 병원에는 수많은 환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의료예약권을 암거래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에게 되물었다. 이 질문을 놓고 청중 사이에 논쟁이 오갔다. 한 여고생은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 티켓과 의료예약권은 모두 행복추구권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진’이라고 밝힌 대학생은 “레이디 가가 콘서트는 선택권이고, 의료예약권은 기본권이라 구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중은 취약계층의 어린 학생들에게 독서라든지 학습의 동기 부여를 위해 ‘현금’을 주는 제도를 두고도 토론을 벌였다. 샌델 교수는 “현금적 보상이랄지 인센티브를 적용하게 되면 재화들의 가치가 변질되기도 한다”며 “시장(돈)이 어떠한 영역에서 공공재에 도움이 되고, 어떠한 영역에서 중요한 가치를 밀어내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징병제’로 논의를 이어갔다. 많은 이들에게 공연의 즐거움을 주고 있는 가수 ‘비’가 수익의 일부를 한국 정부에 내고 그 대신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이 질문에 한 학생은 축구선수 박주영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박주영 선수가 2년이란 시간 동안 선수로 뛰면서 국위를 선양하고, 벌어들인 수익을 나눠주는 것이 사회에 더 기여하는 길이라고 본다”고 했다. 반면 또 다른 청중은 “돈을 내고 군면제를 받는다면 의무감을 돈으로 바꾸게 된다”며 “샌델 교수가 말한 것처럼 시민으로서의 가치를 저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핵심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첫째 공공의 이익, 또 공공재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기여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꼭 금전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두 번째는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의무 등은 시장논리(경제적 효율성)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없다”고 정리했다. 이어 “사회가 돈으로 인해서 혜택을 받는다 하더라도 비가 군대에 가는 것보다 정부에 득을 주는지는 알 수 없다”며 “비시장적인 가치인 의무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최근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패배감도 짙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러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만 시장사회의 위험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3학년 설한빛씨(22)는 “평상시에도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들이었다”면서도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과정이 좋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끝난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영훈중 2학년인 권순호군(14)은 “다른 강의랑 다르게 청중과 소통하는 것 같아 듣기도 편하고 집중도 잘됐다”며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면 우리나라에도 긍정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으로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된 샌델 교수는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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