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여, ‘어린이’는 건들지 말자

이진송|계간 홀로 발행인

미디어가 아동을 그리는 양상과 어른의 역할

“어서 일어나~ 나 학교 가야지!” 서울우유의 광고 한 장면. 팔짱을 낀 어린이가 양친을 깨운다. 아직 침대에서 눈도 못 뜨고 비비적거리는 어른과 달리 머리도 말끔하게 묶었고 옷도 다 입은 어린이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건넨다. 회사 갈 준비를 마친 부부가 우유를 받아 마시며 말한다. “딸~ 챙겨줘서 고마워.” 가족끼리 맞춘 디자인의 잠옷을 입고 피로를 호소하는 어른은 ‘귀엽게’ 연출되고, 초등학교 저학년인 어린이는 혼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어른스럽게’ 보호자를 챙긴다. AP 광고 평론은 이 장면을 ‘아이가 부모를 챙겨준다’는 내용으로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의 ‘○린이’ 신조어 남용 현상과 연결하여 본다면 이러한 역전 구도는 단단히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은 다가오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넘쳐나는 ‘○린이’ 표현의 문제점을 짚어보려 한다. 미디어 속에서 아동이 그려지는 양상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어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본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혼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어른스럽게’ 보호자를 챙기는 장면을 담은 광고의 한 장면. 한 광고 평론은 이 역전 구도를 놓고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았다.  서울우유 광고 영상 캡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혼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어른스럽게’ 보호자를 챙기는 장면을 담은 광고의 한 장면. 한 광고 평론은 이 역전 구도를 놓고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았다. 서울우유 광고 영상 캡처

서툴다 의미 ‘주린이’ ‘요린이’…
‘초보’라는 정확한 용어 있음에도
미디어는 앞다퉈 ‘○린이’ 표현

아동의 귀여움을 소비하면서
노키즈존 찬성하는 게 현실
우린 아이들을 충분히 보호하고
관용을 베풀고 있는 지 돌아봐야

재미있더라도, 귀엽더라도
‘○린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
내가 나를 소중히 존중하는 것과
다른 약자의 언어를 빼앗아
자신을 포장하는 건 다르기 때문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혼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어른스럽게’ 보호자를 챙기는 장면을 담은 광고의 한 장면. 한 광고 평론은 이 역전 구도를 놓고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았다.  서울우유 광고 영상 캡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혼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어른스럽게’ 보호자를 챙기는 장면을 담은 광고의 한 장면. 한 광고 평론은 이 역전 구도를 놓고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았다. 서울우유 광고 영상 캡처

지난 4월23일,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시민청이 ‘○린이 날·☆린이 날·△린이 날’이라는 온라인 캠페인을 열었다. 서울문화재단이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온라인 캠페인 홍보 문구는 다음과 같다. “첫 도전과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린이’ 인증 사진을 올려달라” “첫 도전을 시작하는 우리는 모두 어린이다. 어린이가 따뜻한 관심 속에서 자랄 수 있게 사랑과 응원을 보내달라”. ‘○린이’는 특정 분야의 초보를 일컫는 신조어다. 주식을 처음 시작하면 ‘주린이’, 요리가 서툰 이를 ‘요린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초기부터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과 항의가 꾸준했지만, 일간지를 포함한 방송매체, 상품명 등에 무분별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공공기관까지 진출했다. 해당 캠페인은 하루 만에 항의를 받아 중지되었다. ‘○린이’라는 표현이 어린이를 지우는 아동 혐오 표현이므로 사용을 지양하자던 이들의 우려처럼, 서울문화재단의 ‘○린이’ 캠페인은 어린이 대상이 아니다. 선물 중에는 마사지 기구 3종, 커피 기프티콘 등이 있다. 세상 어딘가에는 마사지 기구를 갖고 싶어 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캠페인이 아동 배제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초보라는 정확한 용어가 있음에도 ‘어린이’라는 표현에 ‘서툴고 미숙한 초보’라는 뜻을 입혀 의미를 침해하고, 이제는 어린이날까지 빼앗으려 들다니. 어른은 364일이 자기의 날인데도…. ‘인생이 내 맘 같지 않고, 나도 내 나이는 처음이라서 막막하고 무섭기만 한데, 364일이 나의 날이라니?! 이 글은 쓰레기야!’ 울컥했다면 자자, 진정하자. 어른이 힘들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팍팍한 세상에서, 어린이처럼 누가 나를 보호하고 귀여워해주며, 좀 서툴러도 괜찮다고 봐줬으면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우리 사회가 그렇게 어린이를 보호하고 귀여워하며, 충분한 관용을 베푸는가? 노키즈존이 창궐하고, ‘맘충’ ‘민폐’ ‘민식이법이 양산한 피해자(운전자)’ 같은 표현과 인식이 공기처럼 퍼진 현실을 보면 할 말이 없다. 당장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초상권 같은 여러 권리를 자연스럽게 박탈당하고, 대부분의 물건 높이와 크기가 나에게 맞지 않으며, 개인의 성향 따위 무시하고 재롱을 부리라고 무대에 올려놓던 세계를. 날 선 일상 속 마주친 어른의 호의와 배려가 얼마나 달콤하고 따뜻했는지, 얼마나 드물고 귀한 것이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을 수 없는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혼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어른스럽게’ 보호자를 챙기는 장면을 담은 광고의 한 장면. 한 광고 평론은 이 역전 구도를 놓고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았다.  서울우유 광고 영상 캡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혼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후 ‘어른스럽게’ 보호자를 챙기는 장면을 담은 광고의 한 장면. 한 광고 평론은 이 역전 구도를 놓고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았다. 서울우유 광고 영상 캡처

아동 혐오는 최근에야 불거지는 문제 같지만, 사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아동을 배제하고 멸시했다.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1910년대, 어린이날을 제정한 1923년에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물이자 인격이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내가 학교에 다녔던 1990년대에도 교사가 여덟 살, 아홉 살짜리를 바닥에 쓰러질 정도로 때리는 게 흔했으니 100여년 전에는 오죽했을까. ‘어린이’라는 단어는 젊은이, 늙은이처럼 독립된 개인을 지칭하며, 엄연히 존재하지만 무시당하던 작은 인간을 ‘발견’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작고 어린 존재에게도 감정과 인격과 존엄이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 그 크기와 무게는 나보다 작거나 가볍지 않다. 꼭 같다.

모든 규격이 어른에게 맞춰진 세계에서, 어린이는 미숙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른의 관점이기에 절대적인 사실이 아니다. 어린이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치열하고 견실하게 살아간다. 초보처럼 그 자체로 미숙함을 뜻하는 단어를 ‘○린이’로 갈음해 어린이 자체를 폄하할 수 없다. 언어는 정확해야 한다. 어린이는 주식이나 골프, 코인을 하지 않는다. 또한 ‘첫 도전을 시작하는 우리는 모두 어린이’라며 어리다는 특성에서 오는 차이점을 지워버리면, 정작 보호해야 할 어린이의 자리에 어른이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가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점이다. 서울우유의 광고처럼.

2019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도 엄마를 지키려 하는 초등학생이 등장한다.  KBS 제공

2019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도 엄마를 지키려 하는 초등학생이 등장한다. KBS 제공

사실 어린이가 어른을 돌보거나,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게 그려지는 것은 오랜 문제점이다. 아역 대부분은 어른들의 모순을 간파하고 천진난만함을 무기로 ‘사이다’를 날리거나, 부모를 더 배려하는 ‘기특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 <곡성>(2016)의 딸은 아버지의 일터로 속옷을 가져다주며 아내가 할 법한 잔소리를 하고, 혀를 찬다. <품위있는 그녀>(JTBC, 2017)의 딸은 아빠의 불륜 사실을 알아채고 한심해하며, 이혼하게 된 엄마를 위로한다. <착한 마녀전>(SBS, 2018)의 딸은 엄마를 함부로 대하는 친척들에게 반발하며 엄마의 비밀을 지켜준다.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tvN, 2020)에서 5세 아동은 의사라서 바쁘고 이혼해서 외로운 아빠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한 번도 투정 부린 적 없’다는 놀라운 설정의 소유자다. 다섯 살이요?! 어른과 아동의 구도에서 언제나 어른의 사정과 고난이 두드러지고,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가뜩이나 힘든 어른을 더 힘들게 하지 않는 어린이만이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동백꽃 필 무렵>(KBS, 2019)에서도 엄마를 지키려 하는 초등학생 아들이 나온다. 다만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어른들이 문제점을 인지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너무 빨리 크지 마. 안 그래도 돼” “필구야 너 왜 이렇게 자꾸 커… 왜 이렇게 눈치가 빤해 애가” 하고 안타까워하는 대사는 드라마 속 아동의 성숙함이 일반적이지 않으며 이는 어른들의 잘못임을 분명히 한다.

서사에서 캐릭터는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아동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드라마적 허용은 필요하다. 그러나 미디어가 ‘손 안 가고, 어른의 사정을 헤아려주는 기특한’ 아동 캐릭터만을 반복적으로 송출한다면, 이러한 경향이 드라마나 영화 같은 픽션을 넘어 육아 리얼리티 같은 장르까지 확장된다면 어린이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를 쉽게 미디어에 출연시키고 이용하면서, 정작 발달 단계에 따른 가능/불가능한 범위나 어린이를 대할 때 어른이 알아야 하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가? 타고나길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어린이가 등장한다 해도, 적절한 수준의 보호와 돌봄을 제공해야 하며 그에게 어른을 돌볼 의무는 없음을 명시하는가?

이진송|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계간 홀로 발행인

육아 예능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어린이를 귀여운 ‘이미지’로 소비하면서, 동시에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것이 2020년대의 아동 혐오다. 아동학대 사건에는 분통을 터뜨리지만, 어른을 ‘○린이’라고 부르며 어린이의 몫을 빼앗는다. 욕하거나 때리지 않으면 차별이나 혐오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귀여운 ○○이의 랜선 삼촌/이모인데! 그냥 재미있고 귀여워서 ‘○린이’라는 표현을 쓴 것뿐인데! 하지 말자. 어린이의 취약한 특성에서는 다 벗어난 어른이, 어리고 약하기에 받는 보호와 관용을 탐내면 추하다. 요즘에는 ‘○린이’에서 한술 더 떠 ‘신생아’에서 따온 ‘~생아’가 등장했다고 한다. 역시, 하지 말자.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것과, 다른 약자의 언어를 빼앗으면서까지 자신을 귀엽게 포장하는 것은 다르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서로 격려해주고, 초보의 어색함은 알아서 극복한 뒤 어른의 할 일을 하면 된다. 방정환이 100년 전에 이미 지침을 만들어놨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올려다봐주고, 존댓말을 쓰고, 책망할 때는 성만 내지 말고 자세하게 타이르고… 그러니까, 언젠가 어린이였던 내가 간절히 바랐던 딱 그만큼의 존중과 배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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