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훔쳐봐” “살쪘다고 구박”…상처 입은 자식들이 입을 열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잘못된 내리사랑 썰’ 공론화 장으로 끌어낸 팟캐스트 기획 ‘이상한 나라의 부모님’

[이진송의 아니 근데]“일기장 훔쳐봐” “살쪘다고 구박”…상처 입은 자식들이 입을 열었다

채널A의 <금쪽같은 내 새끼>의 매회, 아이들은 이상 행동의 원인인 부모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이상한 부모라도 열렬하게 사랑하고 간절하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게 맞나? 내리사랑의 우월함만을 강조하는 속담은, 성장한 자식에게 연로한 부모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 자주 소환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알 것이다. 치사랑이 얼마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지. 그런데 그 대단하다는 내리사랑은, ‘내’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순간 철회되거나 나를 공격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사랑의 정도나 방식은 다르지만 ‘효’ 사상이 강한 한국 사회가 부모의 사랑을 과도하게 성역화하는 것은 사실이다. 부모의 사랑은 그 자체로 너무나 완전하기에 이를 몰라주거나 거스르는 행위는 ‘불효’이자 ‘패륜’이라는 믿음. 이는 부모·자식 간의 위계를 공고히 하고, 가정 내 폭력이나 불평등을 은폐한다.

어린 시절 들은 옛날이야기를 생각해보자. 효자·효부는 자식이 늙은 부모의 음식을 자꾸 빼앗아 먹자, ‘자식은 또 낳을 수 있다’며 아동 살해를 감행하려 한다. 이것이 지극한 효로 포장되는 것이 K효도 가스라이팅이다. 봉양받을 권리나 효도할 의무가 약한 존재의 생명보다 우선한다. 최근 또 한 번의 가슴 아픈 아동 살해 사건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후 자살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동반자살’이라는 명명 속에서 범죄로 구별되지 않았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고, 살해 행위를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부정·모정’으로 포장하는 인식은 범죄 사실보다 가해자의 부모 정체성에 집중한다.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존속살해’는 가중처벌하며, 치사·폭행 또한 처단형의 하한선이 높아지지만 부모 등이 자식을 살해한 경우는 가중처벌하지 않는다.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것은 패륜으로 여겨지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저지르는 범죄는 체벌이나 훈육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경제적, 감정적 학대는 아직도 폭력으로 인정받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토록 기울어졌을까?

[이진송의 아니 근데]“일기장 훔쳐봐” “살쪘다고 구박”…상처 입은 자식들이 입을 열었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콘텐츠
‘기상천외 부모 행동’ 제보받아
진행자 셀럽 맷의 ‘입담’ 더해져
아픈 사연도 시트콤처럼 풀어내
‘효’ 사상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제 얼굴 침뱉기’라는 딜레마 탈출
청취자들 3탄까지 ‘뜨거운 호응’

문제는 가정과 부모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데서 발생한다.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는 출산과 육아의 고충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다. 여성은 경력단절을 포함한 어려움을 겪고, 육아의 많은 것을 부모가 ‘알아서’ 해야 한다. 사회는 육아라는 공동 과제를 방치하는 대신 부모에게 유일한 보호자로서 막강한 지위를 보장해준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내 자식 내가 패는 것’에는 공권력이 개입할 수 없었고, 아동·청소년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부모는 육아를 ‘투자’, 회수해야 하는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아동은 부모가 자신을 기르는 행위를 ‘갚아야 할 은혜’로 여기게 함으로써 부채 의식을 품는다. 자연스럽게, 육아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보상’을 바라게 된다. ‘화목한 가족’을 연출할 수 있는 착하고 말 잘 듣는 성격, 남들보다 뛰어난 성적 또는 성취, 두둑한 용돈 등.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다는 비난은 치명적이다. ‘나’의 성공, 그것도 부모가 인정하는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 효이자 자식 된 도리라는 죄책감은 자식의 삶과 자유를 침해한다. 보상의 범위가 돌봄과 부양 의무, 노후 대책까지 확장되면 어라라? 눈치챌 수밖에 없다. 국가가 노인 부양의 의무마저 ‘효’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떠넘기는구나! 가정의 ‘독박 시민 부양’이라는 링에 내몰린 약자끼리는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모·자식의 관계는 처음부터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성장한 자식이 반격할 힘을 갖추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효’ 카드가 패륜과 죄책감이라는 밑장까지 빼 들고 덤빌 때…,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추천한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일기장 훔쳐봐” “살쪘다고 구박”…상처 입은 자식들이 입을 열었다

<영혼의 노숙자>는 2017년 방송을 시작한 코미디 팟캐스트로, ‘셀럽 맷’이 진행한다. 월평균 조회 수가 100만에 이르는 인기 팟캐스트이다. 여러 특집 중 ‘이상한 나라의 부모님’(이하 ‘이나부’)이라는 기획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지금까지 총 3탄이 나왔다. 말 그대로 ‘이상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식들이 부모를 제보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님 욕이야 사춘기 시절부터 친구들끼리 누려온 콘텐츠지만, 이것을 공식적인 장으로 끌어내는 것은 유교 사회에서 상당한 도발로 보인다. 부모는 늘 ‘무자식이 상팔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며 온갖 푸념을 하고, 육아 상담 프로그램에 제보도 하지만 자식에게는… 영 마이크가 오지 않았다. 패륜이거나, ‘그래도 가족인데’,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반응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나부는 이 딜레마를 유쾌하게 돌파한다. 이나부 1탄의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도대체 우리 부모님은 왜 이럴까? 늘 생각하셨던 분들께 이번 화를 바칩니다. 걱정 마세요. 남들 부모님도 만만찮게 이상하답니다!(싱긋).” 그리고 유머의 끈을 강력하게 견인하는 것은 진행자인 셀럽 맷의 태도이다.

셀럽 맷은 종종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의 신내림 같은 사건은 어린 시절의 상처나 결핍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셀럽 맷은 산뜻한 태도와 재기 넘치는 말맛으로, 장르를 순식간에 시트콤으로 바꾼다. 웃어도 되나? 하고 멈칫거릴 때, 당사자는 능청스럽게 모자에서 꽃다발을 짜잔 꺼내는 마술사처럼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한다. 함께 와르르 웃다 보면 팟캐스트의 정체성인 문구를 떠올리게 된다.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 부모가 자식으로 인한 고난을 겪듯, 자식에게도 부모로 인한 고난이 닥친다. 꼭 범죄나 학대가 아니더라도, 듣는 사람들이 헛웃음을 터뜨릴 법한 기상천외한 부모들이… 세상에는 있다. 어떤 성취가 있든 “내가 기도해서 잘됐다”며 영광을 신도 자식도 아닌 자신에게 돌리기, 스마트폰에 깔아둔 일회성 만남 앱 들키기, 끝없는 외모 지적으로 자존감 깎아 먹기, 살쪘다고 구박하면서도 앞에 있으면 음식 억지로 먹이기,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으려고 딸에게 미리 밥을 차려서 먹인 후 “배부르지? 이제 배달시켜도 되냐?” 물어보기, 혼자 비싼 화장품을 쓰며 다른 가족은 손도 못 대게 하기, 일기장 훔쳐보기, 아파서 누워 있는데 불 켜고 들어와서 머리 한 거 봐달라고 자랑한 후 불 안 끄고 나가기…. 에피소드는 단편적이지만, 상징적이다. 세상에는 독특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부모·자식 사이의 기울어진 권력관계는 이것이 개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고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아동·청소년기를 함께하기에. 부모는 자식과 상호작용하고 협의하기보다 자기 입장을 밀어붙이는 데 익숙하다. 자식은 다른 관계와 달리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부모를 떠나기 어렵다. 그렇게 가정용 지옥이 열린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일기장 훔쳐봐” “살쪘다고 구박”…상처 입은 자식들이 입을 열었다

사연을 보낸 이들은 이렇게 이상한 부모 밑에서 그래도 이 정도면 잘 자랐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진행자와 게스트는 웃고 떠들며 사연자의 편을 들어준다. 중요한 것은 고통이 자기 안에서 얼마나 소화가 되었는지라고 짚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나부 1탄의 게스트 ‘굉여’는 뒤늦게 반성하며 잘해주려는 부모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화로 풀어야 되는데 그게 싫을 수도 있고. 굳이 내 마음이 원하지 않는데, 부모가 나이 들어서 작아지셨다, 이런 거 때문에 대화에 응하지 말고. ‘내가’ 준비가 됐을 때 대화하자. 이기적으로 살자.” 그리고 덧붙인다.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존재들이 있습니다.” 2년 만에 엄마를 만나 3시간 동안 너무 뜨겁고 반가웠는데, 4시간째부터 힘들어서 숨이 안 쉬어졌다는 본인의 경험담이다. 최근에야 비로소 부모에게 상처를 입은 자식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신과 전문의나 상담사들의 “부모를 미워해도 된다”라는 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방감을 얻었는가. 항상 부모에 대한 죄책감과 효에 대한 책임감만 강조하고,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크나큰 죄악처럼 취급되는 세상에서 자식은 고통을 말하거나 ‘부모를 용서하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했다. 부모님에게 늘 미안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가? 그들도 딱히 나에게 잘하지만은 않았다! 이나부는 이상한 부모를 제보한다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그럼에도’ 그 이상한 나라에서 잘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기록이다. 서로를 다독이는 위로와 웃음의 축제이다. 이제 그들이 아닌 ‘내가’ 나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는 왁자지껄한 의식이다. 가슴이 뛰는가?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부모, 내 속을 팍팍 썩이는 부모를 보유하고 있는가? 이나부는 조만간 4탄의 사연 모집을 앞두고 있으니, 한번 출전해보길 권한다(경찰서나 병원에 가야 할 심각한 사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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