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돈 시간 여행에 ‘줄거리 초압축’…‘상친자’ 입덕은 계속될까

김공숙 국립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대중문화평론가

응답하라 ‘상견니’

지난 2019년 대만에서 방송돼 큰 인기를 모은 13부작 타임슬립 드라마 <상견니>는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그 주연 배우 그대로 2023년 영화로 재탄생했다.

지난 2019년 대만에서 방송돼 큰 인기를 모은 13부작 타임슬립 드라마 <상견니>는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그 주연 배우 그대로 2023년 영화로 재탄생했다.

‘친자’ 시대다. 영화 <상견니> 개봉으로 ‘상친자’가 회자되더니, ‘슬친자’ 얘기도 나온다. 슬친자는 <슬램덩크>에 미친 자, 상친자는 <상견니>에 미친 자다. <상견니>는 2019년 대만 드라마로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누렸고, 중국, 한국, 일본 등에 OTT 서비스되어 10억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중 한국 팬의 유별난 <상견니> 사랑은 ‘상친자’를 양산했다. 영화는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다. 개봉에 맞춰 주연 배우 3인방인 커자옌, 쉬광한, 스보위가 내한했는데, 무대인사 5회차 모두 예매 1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긴급 추가된 무대인사 예매 사이트는 한동안 마비가 될 정도였다. 배우들은 한국 잡지의 표지와 화보를 장식했고, 유명 유튜브 채널과 다수의 방송이 배우들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상친자들을 의식한 것일까. 미디어가 <상견니>에 보인 관심은 여느 외국 콘텐츠의 그것과는 분명 달랐다.

상견니(想見你)는 “너를 보고 싶어”라는 뜻이다. 드라마 <상견니>는 시간여행을 주 설정으로 하는 첫사랑 로맨스다. 항공기 사고로 잃은 애인을 그리워하던 여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난다. 시간여행 도구는 어딘가에서 배달되어온 낡은 카세트테이프 음악이다. 그런데 과거로 가서 만난 남성은 애인과 얼굴과 행동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다. 여주인공은 자기 얼굴과 똑같지만 다른 인물의 몸에 들어가 있다.

<상견니>는 하나로 얘기할 수 없는 드라마다. 두 남학생과 한 여학생의 삼각관계가 흔한 청춘 학원 로맨스 같아 보이지만, 시간여행 판타지에, 범죄자를 쫓는 미스터리 스릴러물로까지 변화된다. 무의식에 갇힌 인물이 등장할 때는 심리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는 전개지만 괜찮다. 문제는 주인공들의 복잡한 시간연대기(타임라인), 원칙을 알 수 없는 시간여행, 갑자기 출현한 인물과 수많은 변수 속에서 시청자가 혼돈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2019년 대만 드라마 원작으로
OTT로 한·중·일 등서 10억뷰
짧은 호흡 영화로 제작 ‘다른 맛’
원작보다 ‘완결된 엔딩’ 큰 호응
감격과 어리둥절 상반된 반응도

일부 ‘정답 찾기용 n차 관람’
올 공개될 ‘한국판 드라마’에선
타임라인 설명 등 보완 주목

이런 불친절한 시간 여행 판타지는 “꿈이었대”로 끝난 최근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드라마 말고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다. 2013년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만 봐도 9개의 향, 물론 신비의 향이긴 하지만, 이 향이 타고 있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만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규칙과 탄탄한 판타지 세계의 설계가 있었다. 판타지 세계는 현실이 아니기에 더 세심하게 설계되어야 하고, 그 규칙 안에서 움직이며, 규칙 안에서 설명이 되어야 한다. 판타지 장르가 초반부에 배경 세계의 소개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도 작품이 만들어낸 세상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상견니>는 시간여행의 규칙이 카세트테이프 음악을 들을 때라는 것 말고는 설계된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로써 창작자는 알지만 시청자는 모르는 서프라이즈가 출몰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드라마 후반부, 같은 얼굴의 나이 든 남주인공과 젊은 남주인공의 대면 장면이다. 그때까지 <상견니>가 평행우주 기반의 이야기인가 했던 시청자는, 그 우주들이 넘나들고 꼬여 다른 우주의, 같지만 다른 인물이 서로 만나는 장면에 이르면 당혹스러워진다. 이것이 멀티버스라고 하는 다중우주의 세계인 것인가? 드라마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여행 판타지 로맨스 <상견니>의 독특함이 바로 이 알 수 없는 복잡함에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드라마 감상 후 복습, 요점 정리, 인물별 타임라인을 공부해야만 <상견니>의 이야기 세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입시 학습법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상견니>의 서사 논리를 작정하고 이해하겠다며 달려들면 몰라도 한 번 봐서는 결코 딱 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그럼에도 <상견니>의 미덕은 첫사랑의 추억을 자극하는 영상미와 음악, 인물의 감정선이나 배우들의 1인 2역, 3역 연기가 좋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된다, 너무 보고 싶어 하면 만나게 된다는 첫사랑의 소망, 아련함, 애틋함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주인공 쉬광한의 싱그러운 외모와 행동이 시청자를 풋풋했던 시절로 데려다주고, 그 시절 사랑하고 싶은 남학생의 전형이니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극중 황위쉬안이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를 들으면 그의 영혼이 평행우주에 사는 천원루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오드 제공

극중 황위쉬안이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를 들으면 그의 영혼이 평행우주에 사는 천원루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오드 제공

원작의 감흥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충만할 수밖에 없다. 긴 드라마가 아니라 짧은 영화이니 그에 맞게 촘촘하고 확장된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감동과 여운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멀티버스 판타지 로맨스에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라는 영화 홍보에 기대감은 더욱 상승했다.

영화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그런데 거꾸로, 한 비평가의 ‘감격하거나 어리둥절하거나’라는 한 줄 평에 공감 백배 했다. 영화는 ‘원작 팬에게 바치는 헌사’가 맞다. 다만 원작을 너무도 사랑한 상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감격과 헌사라는 게 문제다. 원작을 보았음에도 ‘어리둥절’ 쪽 관객으로서는 여전히 모르겠고, 관람 내내 대혼돈의 <상견니> 멀티버스를 목도했을 뿐이다.

영화는 복잡한 원작의 시간여행 설정에 대한 이해가 알쏭달쏭한 상태라면 접근이 어렵다. 원작의 배경을 짧은 시간에 압축하려다 보니 더 난항이다. 처음에는 영화를 어느 정도까지 따라갈 수 있다. 중간쯤 오면 자괴감이 들면서 이해를 포기하고 배우들의 연기만 보자는 마음으로 바뀐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이해가 안 되니 잠깐 졸기도 한다.

제작진도 관객의 마음을 예측한 것일까. 중간에 피식 웃음이 터진 지점이 있다. 다른 우주에서 온, 같은 얼굴의 주인공 본체들이 모여 칠판에 서로의 타임라인을 그려가며 설명하고 이해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인물이 설명을 해줬어도, 어리둥절한 관객은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이제 나머지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관람 후 각종 자료를 탐독하며 아하, 이거였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다시, 그럼 이건 뭐지?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그래서 얼치기 관객이라도 <상견니>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면 n차 관람은 필수다. 여러 번 보면 아무래도 정답 찾기에 도움이 될 테니. 과거 드라마 <상견니>를 추천해준 상친자 지인과 영화를 함께 관람했다. 지인은 여러 번 보니 점점 이해된다며 열심히 설명해준다. 영화 <상견니>는 드라마 팬서비스용이 맞다. 어정쩡한 팬은 안 되고, 상친자쯤은 돼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영화는 원작의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팬들이 소망하는 완결된 엔딩으로 만드는 데 집중해 상친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상견니>를 새로운 영화로 처음 접하는 관객도 분명히 있다. 애매한 상친자도 있을 터이다.

영화가 원작에서 파생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디어를 가로지르며 이야기 세계를 넓혀가는 것을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웹툰 <신과 함께>가 영화로 만들어질 때 영화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을까. 아니다. 영화의 짧은 시간과 강렬한 볼거리에 맞추어 이야기를 압축하고 인물을 압축하고 성격을 바꿨다. 영화에서는 웹툰의 주인공인 회사원 진기한은 사라지고 위험한 일과 자주 맞닥뜨리는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이 주인공이다. 웹툰의 진기한과 강림을 압축해 영화에서는 강림(하정우) 혼자 그 역할을 한다. 영화의 웅장하고 강렬한 시각 효과를 도드라지게 하는 과정에서 원작 이야기는 생략되거나 단순화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했다. 매체 전환 시 유의할 점은 바뀌는 매체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의 변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영화 <신과 함께>의 쌍천만 관객은 그냥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다. 하나의 콘텐츠는 원작의 파생물이든 아니든, 그 자체로 완결성과 자기충족성이 있어야 한다.

[김공숙의 드라마티즘]대혼돈 시간 여행에 ‘줄거리 초압축’…‘상친자’ 입덕은 계속될까

콘텐츠 서사가 복잡해지니 예습과 복습이 필요한 콘텐츠들이 많아졌다. 적극적인 향유를 위해서라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콘텐츠를 그 자체로 충분히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더 즐기기 위해 자율적 보충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콘텐츠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선행학습이 필수라면 아무리 팬들을 위한 ‘추억 소환 여행 이벤트’라고 해도 무리다. 정답을 알기 위해 대체 몇 번의 관람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응답하라, 상견니!

이 <상견니>가 한국 드라마로도 리메이크된다. 전여빈, 안효섭, 강훈이 나오는 <너의 시간 속으로>라는 12부작 드라마가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판에서는 <상견니>의 카오스와 같은 시간여행과 판타지 세계가 이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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