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현미경으로 마주한 미지의 세계…인간, 경외심과 겸손 깨닫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4) 볼 수 없었던 것을 발견하다

갈릴레오는 직접 개량한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 뒤 섬세한 스케치를 남겼다(1610년 출간된 갈릴레오의 책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갈릴레오는 직접 개량한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 뒤 섬세한 스케치를 남겼다(1610년 출간된 갈릴레오의 책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윳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자연 속에 숨겨진 신의 흔적을 찾는 희열의 결과로 굵직한 발견들이 하나둘씩 쌓여나가면서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지식들도 그 발견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어떤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비단 그 시기 지식인들의 나태함이나 무능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발견될 만한 것들이 이미 다 알려진 상황에서 세상이 놀랄 만한 새로운 발견을 한다는 것이 그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수고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회에 살펴본 대로 인간이 낯선 세계를 찾아 나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알려지지 않았던 동물과 식물들을 발견할 수도 있었고, 우리와 다른 지적 전통을 가진 이들이 발견한 자연의 흔적들을 배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세계에 남겨진 낯선 인간의 흔적을 마주하는 욕구마저 하나둘씩 채워지게 됐을 때,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탐험에 나설 만한 새로운 곳이 얼마 남지 않게 됐을 때, 이제 인간은 어떻게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겠는가?

‘걸림돌’이던 몇몇 이론 한계 넘어
마침내 ‘달의 분화구·목성의 위성·은하수의 별’ 찾아

오늘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볼 만한 것들을 다 봤고 들을 만한 이야기들을 다 들었다고 여기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인간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더 이상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겨졌을 때,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보고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일어났다.

1610년의 일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없었는가? 인류는 수천년 밤하늘의 달을 보았으면서도 그 달에 있는 많은 분화구들과 산들을 보지 못했다. 매일 밤 목성을 보면서도 그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들을 보지 못했고, 은하수를 보면서도 그 은하수를 구성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여전히 달을 보고 목성을 보고 은하수를 제대로 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보고 있었던 그것들 너머 보지 못한 새로운 어떤 것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여지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몇몇 근사한 이론들이 육안으로 보는 것 너머를 발견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달을 흠이 없이 깨끗한 천상의 구로 말했는데, 지상의 불완전한 물체와 천상의 완전한 물체와의 대비를 보여주는 아주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이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달에 투영한 이유이기도 했다. 적어도 사람들의 생각에 밤하늘에 떠 있는 유일한 이 존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과는 달리 순전하고 티없이 아름다운 것이어야 했다.

갈릴레오의 개량 망원경 덕분에 기존 ‘이성적 추론’과
선 긋고 ‘근대과학 탄생’ 알려

1610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별세계의 전령>에서 보여준 달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개량한 망원경으로 달과, 목성의 위성들과, 많은 별들을 관찰한 결과를 세상에 알렸다. 그토록 오랫동안 누구나 바라보면서도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달의 진짜 모습이 비로소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우리의 시지각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무엇인가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성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자연세계가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가정이 필요할 것이고, 그 합리성에 근거해 자연세계의 원리를 추론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한 탐구를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철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이성에 기반한 자연철학의 최정점에 있던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이성적 추론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모범을 탄탄히 세워뒀고, 고대 후기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들과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 그리고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을 거치면서 부침이 있긴 했으나 자연세계에 관한 그의 생각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은, 이 오랜 멍에를 끊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된 이성적 추론에 근거한 고대의 자연철학과 선을 긋는 새로운 근대과학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갈릴레오가 그린 수많은 분화구와 산들로 울퉁불퉁한 달의 모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천상의 신비하고 완전한 구의 형체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보다 더 사실에 가깝다라는 것이 쉽게 확인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성적 추론에 의한 발견은 증명을 필요로 하고 그 증명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각 사람의 이성적 능력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반면, 관찰도구에 의한 발견을 확인하는 일은 말 그대로 감각적이고 보편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누구라도 망원경을 통해서 달의 모습이 정말로 그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망원경 속에서 본 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면에 옮겨 많은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알리겠다는 갈릴레오의 계획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또 그는 그에 걸맞은 훌륭한 스케치 솜씨를 갖고 있었다. 그가 그린 달의 스케치는 그의 명성이 전 유럽에 퍼지는 성공을 거둘 만큼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갈릴레오가 거대한 우주 속에서 달과 목성과 은하수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시작한,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보려 한 이 새로운 과학은 이제 너무 작아 육안으로 다 볼 수 없었던 미세한 세계로 옮겨간다. 로버트 훅(1635-1703)은 1665년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를 펴내 자신이 만들었던 현미경으로 곤충들과 식물들을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책은 훅이 실험 큐레이터로 일했던 왕립학회가 1660년 창립되고 난 후 출간된 주요 초기작 중 하나였으며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어릴 적 화가를 꿈꾸기도 했던 훅의 그림 솜씨가 이 성공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마이크로그라피아>(1665) 중 생물 스케치.

<마이크로그라피아>(1665) 중 생물 스케치.

로버트 훅, 현미경으로 ‘미세한 세계’ 주목…
레이우엔훅은 ‘박테리아’ 첫 발견 성과
‘감각’ 자부하던 인류, 관찰 도구 등장으로
‘자연 세계의 극히 일부’임을 자각하기 시작

마이크로그라피아가 안내하는 이 세계에 매료돼 훅이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미세한 세계까지 들여다봤던 사람들 중에 안톤 판 레이우엔훅(1632~1723)이 있었다. 초기 근대과학이 태동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장인(artisan)과 과학자의 경계가 모호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비록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대학 교육도 받지 못했고 당시 과학의 공용어로 쓰였던 라틴어도 배우지 못했지만, 그는 유리를 다루는 데 능숙해 현미경의 성능을 육안의 270배에 이를 정도로 향상시킬 재주와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723년 91세의 일기로 죽을 때까지 영국 왕립학회에 약 200여통의 편지를 보내 자신이 개량한 현미경으로 관찰한 수많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했다. 적혈구세포와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의 세계는 이렇게 처음 발견됐다.

너무 거대해서 혹은 너무 미세해서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망원경을 통해 보게 된 것들에 대해 한없이 놀란 갈릴레오의 소감을 들어보자. “지난 세대들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 놀라운 것들을 내가 처음으로 관찰하게 하신 신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1610년 1월30일 벨리사리오 빈타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어떤 발견이 인간의 태생적인 감각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을 때 찾아오는 경외심, 갈릴레오의 이 말이 나에게는 그렇게 들린다.

그리고 이 경외심은 인간 감각에 대한 겸손으로 이어진다. 한때는 볼 수 있는 것을 다 봤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다 들었다고 자부했던 인간은 우리가 아는 것이 자연세계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자연세계의 무한함에 대해 갖는 그 겸손을 갈릴레오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이 우주에서 지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이미 발견되고 알려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가 아는 그 진리라고 할 것들이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에 비하면 극히 일부라고 고백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1615년 크리스티나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인공지능을 마치 갈릴레오의 망원경과 같은 획기적인 도약으로 바라보고 있다. 감각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망원경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지성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인공지능이 마찬가지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도록 인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달의 모습이 처음 공개됐을 때 대중들의 그 열렬했던 호응과도 같이 지금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과열돼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뜨거운 관심을 곱씹을수록 갈릴레오의 경외심과 겸손은 더 큰 울림을 준다. 전체 우주 속 극히 일부의 별들을 보았을 뿐 앞으로 관찰해야 할 무수히 많은 별들을 헤아려보며 겸손했던 갈릴레오처럼, 이제 막 선보이기 시작한 인공지능의 성과에 대해 성급히 과장할 필요도, 또 애써 무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총 3회에 걸쳐 ‘발견하다’라는 말을 자연세계의 비밀을 찾는 희열, 낯선 세계를 만나는 욕구,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게 된 경외감 등 여러 의미들로 재서술한 이유는 우리가 마주한 인공지능이 이 중 어떤 의미를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지, 또 어떤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게 될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이제 다음 회에서는 조금은 차분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인공지능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발견이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갖는지 차근차근 짚어보기로 하자.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이은수의 아이겐밸류 - 인간의 고유함을 되묻다]망원경·현미경으로 마주한 미지의 세계…인간, 경외심과 겸손 깨닫다

서울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학, 서양고전,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수행했던 인문학과 기술의 상호 발전에 대한 연구 및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 고대로부터 과학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및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발전 및 혁신 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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