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세계도 별다르지 않게 보이길 바랐죠”

백승찬 기자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써낸‘ 다목적 프리랜서 배우’ 염문경

1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난 염문경은 배우로서는 ‘여성서사 장편영화의 주연’, 창작자로서는 ‘보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를 꿈꾼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사진 크게보기

1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난 염문경은 배우로서는 ‘여성서사 장편영화의 주연’, 창작자로서는 ‘보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를 꿈꾼다고 했다. 김창길 기자

염문경(32)은 스스로를 ‘다목적 프리랜서 배우’라고 부른다. “세속적인 성공을 기대한다면 머물기 힘든” 연극 무대를 지켰다. 단기적인 삶의 목표 역시 ‘여성서사 장편영화의 주연’이다.

하지만 삶의 경로는 그에게 온전한 배우의 삶만 허락하지 않았다.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에세이 <내향형 인간의 농담>을 펴냈다. 무엇보다 <자이언트 펭TV>의 메인 작가로 인기 캐릭터 펭수의 탄생에 기여했다.

펭수 작가·각본가…
“연기는 글 쓰는 데 도움되지만 작가 경력은 글쎄…단기 목표는 여성서사 장편영화 주연”

오는 23일 개봉하는 <메이드 인 루프탑>(연출 김조광수)은 염문경의 장편 시나리오 작가 데뷔작이다. 취업준비생 하늘(이홍내)은 3년 동안 사귄 연인 정민(강정우)과 헤어질 위기에 놓인다. 봉식(정휘)은 배드민턴 클럽에서 만난 민호(곽민규)와 ‘썸’을 타기 시작한다. 정민의 집에서 나온 하늘은 친구 봉식의 옥탑방을 찾아온다.

한국 퀴어영화들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의 삶을 슬프게 그려왔지만, <메이드 인 루프탑>은 밝고 명랑한 로맨틱 코미디다. 1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만난 염문경은 “예를 들어 경찰, 무속인이 나오는 영화는 그들의 직업 세계를 구경하는 즐거움을 주겠지만, <메이드 인 루프탑>의 성소수자 세계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세계처럼 보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 영화의 1990년대생 성소수자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일찌감치 끝낸 뒤 여느 이성애자 청년들과 다를 것 없이 취업, 주거, 인간관계를 고민한다.

김조광수 감독이 염문경에게 주목한 점 역시 <자이언트 펭TV>에서 발휘된 청년세대에 대한 관찰력이다. 극 중 봉식은 버는 족족 명품을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염문경은 “지금 청년들은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는다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갖지 않는 것 같다. 불확실한 미래를 기약하기보다는 지금의 행복에 조금 더 집중한다”며 “오늘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옥탑방’인 주거공간을 ‘루프탑’이라고 부르고, 와인잔에 막걸리를 부어 마시며 즐거움을 찾는다.

염문경은 <메이드 인 루프탑>에 정민의 여동생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오빠의 성정체성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오빠의 연인을 만나니 조금 당황한다. 그러면서도 오빠를 최대한 이해하려 한다. 염문경은 “외부 시선으로 성소수자 세계를 바라보면서, 로맨틱 코미디라는 판타지를 현실에서 열고 닫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를 했던 염문경은 졸업 후 아무 연고 없는 극단에 무작정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영화 <안시성> <도어락> <악질경찰> 등에도 출연했다. 염문경은 “배우는 다양한 인물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 ‘나’로 살면 자기 안에 있는 것만 꺼내 쓰잖아요. 자기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억압한 채로 산다고 할까요. 배우는 글로 적혀 있는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자기 속에 있는 여러 면모를 찾을 수 있어요. 인물을 이해하는 건 결국 나를 알아가는 겁니다. 설령 배우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해도, 전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좋아하고 아낄 겁니다.”

배우 경력은 글을 쓰는 데 대체로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배우로서 접근하기 쉬운 대사를 쓸 수 있고, 감정의 흐름도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작가 경력은 연기에 도움되지 않을 때도 있다. “대사를 하면서 ‘작가, 연출이 이런 기능을 원하는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기에 몰입해 여러 가능성을 시도하지 않고 그 기능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연극배우 시절 끝없는 아득함과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먹여살릴 경제활동을 하자”는 생각에 방송 보조작가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러다가 <자이언트 펭TV> 제작진과 인연이 닿았다. 같은 제작진의 <딩동댕대학교>에도 참여했다. 그는 펭수의 인기 비결에 대해 “연습생이고, 어리고, 인간도 아닌 펭귄이 자기 자신을 엄청 사랑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응원과 애정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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