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섬’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찾다···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

최민지 기자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한 장면.  ‘영화 속 영화’의 두 주인공이자 10대 시절 연인이었던 에이미(미아 바시코프스카)와 조지프(앤더슨 다니엘슨 라이)가 포뢰 섬으로 가는 배 위에서 재회하고 있다. 찬란 제공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한 장면. ‘영화 속 영화’의 두 주인공이자 10대 시절 연인이었던 에이미(미아 바시코프스카)와 조지프(앤더슨 다니엘슨 라이)가 포뢰 섬으로 가는 배 위에서 재회하고 있다. 찬란 제공

탁탁타탁탁…경쾌한 타자 소리와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된다. 단박에 느낌이 온다. 이것은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신작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배경이 스웨덴의 작은 섬 ‘포뢰’인 것은 필연적이다. 포뢰 섬은 스웨덴 출신 거장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1918~2007)이 집을 짓고 살며 대표작들을 연출한 곳이다. 베르히만의 <페르소나>(1966)를 비롯해 총 5편의 작품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전 세계 시네필들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영화감독 커플인 크리스(빅키 크리앱스)와 토니(팀 로스)는 각자 새로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베르히만의 집이 남아있는 포뢰 섬으로 향한다. 순조롭게 시나리오를 써나가고 자신의 팬들과도 교류하는 토니와 달리 크리스는 좀처럼 이야기 타래를 풀어내지 못한다. 그간 했던 이야기를 반복할까 걱정하고, ‘집필은 자해와 같다’며 고통스러워 한다. 베르히만이 아내 6명과 자녀 9명을 두고도 작품 활동에만 매진했다는 사실에 불편함도 느낀다. 크리스는 파트너 토니와 시나리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토니는 대화에 영 집중하지 못한다. 자신의 시나리오도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가 중반부에 접어들면 ‘영화 속 영화’가 시작된다. 크리스가 토니에게 들려주는 미완성의 시나리오가 포뢰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시나리오의 두 주인공 에이미(미아 바시코프스카)와 조지프(앤더슨 다니엘슨 라이)는 10대 시절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포뢰 섬에서 열린 친구의 결혼식에서 재회해 서로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영화 후반에 다다르면 (영화 속) 현실과 픽션의 경계는 무너지고 커플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베르히만 아일랜드> 포스터. 찬란 제공

<베르히만 아일랜드> 포스터. 찬란 제공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여성 예술가가 존경하는 거장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사랑하는 동료이자 연인으로부터 해방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안의 창조적 힘을 발견하는 영화다. 한센-러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도 읽힌다.

<다가오는 것들>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한센-러브는 연인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영화 <8월말 9월초>(1998)에 출연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두 사람은 현재 예술적 파트너이자 연인이다. 한센-러브는 2014~2019년 매년 포뢰 섬을 찾았으며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시나리오부터 촬영까지 모든 것을 이 섬에서 진행했다. 그는 “지금까지 굳게 닫혀있던 문들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며 작업을 하며 느낀 해방감을 고백하기도 했다.

휴양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소박하고도 야생적인 포뢰 섬의 풍경 만으로도 여름 바캉스 영화로 손색이 없다. 스웨덴 출신의 전설적 팝그룹 아바(ABBA)의 ‘더 위너 테익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익숙한 팝송부터 켈틱하프로 연주한 개성있는 곡들까지 사운드트랙이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영화는 내달 4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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