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뒤에서 펼쳐지는 진짜 무대 이야기, 연극 '언더스터디'

선명수 기자

이름 없는 ‘대기 배우’ 이야기

작은 기회를 기다리는 우리 모습

공연계 현실 통한 ‘유쾌한 고발’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언더스터디>의 한 장면. 레드앤블루 제공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언더스터디>의 한 장면. 레드앤블루 제공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언더스터디>의 한 장면. 레드앤블루 제공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언더스터디>의 한 장면. 레드앤블루 제공

프란츠 카프카의 미공개 작품이 공연 중인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 불 꺼진 무대에 한 남자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뜸 권총을 관객에게 겨누며 액션 배우처럼 등장한 이 남자, ‘해리’는 상업적인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환멸을 느낀다. 연극 소품인 권총을 휘두르며 최근 개봉한 화제작이 얼마나 구린지, 배우들의 연기가 얼마나 연기 같지도 않은지 신랄하게 독설을 퍼붓지만, 사실 그는 무대에서 연기할 기회조차 많지 않은 무명 배우다. ‘언더스터디의 언더스터디’인 그는 연극 리허설을 위해 이곳에 왔다. 곧이어 문제의 영화에 출연했던 할리우드의 라이징 스타, ‘제이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이크는 자신의 언더스터디로 캐스팅된 해리가 영 마뜩잖다.

‘언더스터디’는 배우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 같은 배역을 연습해 대기하는 배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드물게 언더스터디가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해 주목받는 사례도 있지만, 이들이 주연 대신 무대에 설 기회는 사실 많지 않다. 특히 뮤지컬 등 대극장 공연은 최근 더블 캐스팅을 넘어 주연급을 3명, 많게는 4명씩 캐스팅하는 추세라 언더스터디의 등판은 더 쉽지 않다. 결국 관객과 제작진 모두 원하지 않는 작은 가능성과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언더스터디의 숙명인 셈이다.

지난달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언더스터디>는 언더스터디 배우들의 무대 뒤 이야기를 보여준다. 미국의 극작가 테레사 레벡의 작품으로, 국내에선 이번이 초연이다. 공연은 카프카가 썼다고 설정한 가상의 미공개 작품이 공연되는 무대를 배경으로 한 ‘극중극’ 형식이다. 할리우드 톱스타 브루스의 언더스터디가 된 제이크, 그런 제이크의 언더스터디를 맡은 해리, 무대감독 록산느 등 세 명이 공연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셋은 리허설 초반부터 팽팽하게 맞붙는다. 제이크는 자신이 하던 배역을 카프카에 대한 이해가 없는 무명 배우가 맡는 게 불만스럽고, 해리는 비록 ‘언더스터디의 언더스터디’일지언정 자신만의 연기 철학이 확고하다. 옛 연인 해리의 등장에 당황한 록산느는 프로덕션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애쓰지만, 자꾸만 작품에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해리로 인해 짜증이 폭발한다. “넌 아무 권리도 없어! 넌 그냥 배우야! 아니, 넌 배우도 아니야, 넌 그냥 언더일 뿐이야!”

연극은 언더스터디가 화려하게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꿈 같은 성공담을 그리진 않는다. 오히려 톱스타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공연의 상업주의, 냉혹한 쇼 비즈니스계의 현실을 재치 있게 비틀어 보인다. 저마다 약간씩 꼬여 있고, 조금은 괴짜 같은 인물들은 아웅다웅하다가 무대에서 합을 맞추며 마음을 열고, 어느덧 무대 위 순간을 즐긴다. 설령 관객 앞에선 공연되지 못할 장면일지라도 말이다.

세 명의 배우가 110분간 탁구공 넘기듯 쉴 새 없이 대사를 주고받으며 그야말로 ‘말의 향연’을 펼치는 블랙코미디다. 이들의 밀고 당기는 위트 있는 대화가 자주 폭소를 유발하고, 늘어짐 없이 극을 끌어간다. 뮤지컬 <팬레터>와 <마리퀴리>,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등을 선보인 김태형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해리는 배우 김주헌·박훈·이동하가, 제이크는 강기둥·홍우진·김다흰이, 록산느는 정연·이윤지·정가희가 번갈아 연기한다. 공연은 2월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언더스터디>의 한 장면. 레드앤블루 제공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언더스터디>의 한 장면. 레드앤블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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