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보다 비싼 경유…‘서민 연료’ 언제쯤 제자리로 돌아오려나

박상영 기자
석유제품 가격이 내림세를 보인 지난 3일 서울 시내 한 셀프주유소에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휘발유는 ℓ당 1875원까지 내린 데 비해 경유는 아직 1995원으로 높은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석유제품 가격이 내림세를 보인 지난 3일 서울 시내 한 셀프주유소에서 시민이 주유를 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휘발유는 ℓ당 1875원까지 내린 데 비해 경유는 아직 1995원으로 높은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7월 정부의 유류세 인하폭 확대 후
휘발유 ℓ당 1800원대 떨어졌지만
경유는 여전히 ‘ℓ당 1950원 안팎’

러시아산 의존도 큰데 전쟁에 ‘타격’
유럽 수요까지 많아져 수급난 가중
‘가격 고공행진’ 당분간 이어질 듯

경기 고양에 사는 A씨(49)의 거의 유일한 취미는 승용차 드라이브다. 그러나 그는 마음껏 교외로 달려보지 못한 지 벌써 2개월이 넘었다. 오히려 발끝 힘을 조절하며 연비 운전에 온통 신경 쓰기 바쁘다. 경유 가격이 너무 올라서다. 그는 틈만 나면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들어가 근처 주유소들 가격부터 10원 단위로 비교해본다. 휘발유값은 ℓ당 1800원대로 떨어졌지만 경유는 아직도 1950원 안팎에 머물고 있어 답답해한다.

정부가 지난 7월1일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37%로 확대한 이후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5주 연속 내림세를 기록 중이다. 8월 첫째주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 3월 둘째주 이후 약 5개월 만에 ℓ당 1800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경유 평균 가격은 ℓ당 1969.8원으로 휘발유보다 하락 폭이 작아 휘발유와 가격 차이는 더 커졌다. 소비자들은 경유 가격이 언제쯤 휘발유보다 낮아질지 주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서민 연료’인 경유 가격은 왜 치솟았고, 잘 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 경유는 휘발유보다 저렴할까

사실 국제시장에서는 경유가 줄곧 휘발유보다 비쌌다. 싱가포르 거래소 기준, 지난해 경유 가격은 배럴당 평균 77.8달러인 데 비해 휘발유는 75.3달러로 2.5달러 높았다. 2020년에도 경유(49.5달러)는 휘발유(45.1달러)보다 4.4달러 비쌌다.

경유가 상대적으로 휘발유보다 비싼 이유는 경유를 찾는 수요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휘발유는 99%가 승용차에 쓰이지만 경유는 화물차량이나 버스뿐 아니라 굴삭기, 레미콘 등 산업 전반에 쓰인다.

지난해 기준 휘발유 국내 소비는 8486만배럴인 데 비해 경유는 1억6610만배럴로 2배가량 많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경유가 유럽과 중국에서는 수송용뿐 아니라 발전 연료용으로도 많이 쓰이고 일본에선 난방용으로도 사용된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전까지 경유가 휘발유보다 저렴했다. 휘발유는 ℓ당 유류세(부가가치세 10% 포함)가 820원 부과됐지만 경유는 581원 수준이었다. 이는 1970~1980년대 승용차는 사치품이라고 봤지만 경유는 국가 경제에 필수인 산업용 연료라는 인식을 반영해 세금을 줄여준 결과다.

2000년대 들어 디젤 승용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경유에 부과하는 세금도 올렸지만, ‘서민 연료’라는 인식이 강해 여전히 휘발유보다 세금이 낮았다.

이 같은 세금 차이에도 올해 경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14년 만에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달 경유의 평균 가격은 배럴당 145.3달러인 데 비해 휘발유는 116.6달러로 차이가 28.7달러나 됐다.

이는 일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줄인 영향이 크다. 경유 수요가 높은 EU는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2027년까지 전면 중단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전체 경유 수입에서 러시아산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만큼 웃돈을 주더라도 대체 공급처를 찾기가 쉽잖다. 대안으로 미국산 경유 수입을 늘렸지만 미국도 경유 부족 사태로 이어져 배급제 논의까지 불거졌다.

■ 경유 가격 언제까지 오를까

여기에 러시아 때문에 액화천연가스(LNG) 가격까지 치솟자 이를 대체하기 위한 경유 수요가 또 늘면서 수급난이 가중됐다.

지난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에너지 시장 분석업체인 보르텍사 자료를 인용한 보도를 보면, 지난달 EU의 러시아 경유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20% 늘었다. JP모건은 “천연가스 가격이 너무 높아 에너지 회사와 제조업체들이 디젤로 전환하려 한다”며 “디젤 가격을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한국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도 역전 현상을 부추겼다. 정부가 이달부터 유류세를 37% 낮추면서 휘발유는 약 304원, 경유는 약 212원 세금이 줄었다. 이는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이 더 큰 만큼 같은 비율로 낮추면 그 혜택은 휘발유가 더 큰 구조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류세 인하 폭을 55%까지 확대할 경우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된다.

경유 가격 고공행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 뻔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지속되는 데다 원유에서 경유를 뽑아낼 설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동 중인 정제설비는 올해 125곳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135곳)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하루 정제용량도 1778만9010배럴로 2019년(1869만2335배럴) 생산량을 밑돌고 있다. 수익성 하락과 친환경 정책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제설비 규모가 줄어들어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EU의 러시아 제재 영향은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고 러시아가 가격상한제 등 제재에 반발해 공급을 줄이면 경유가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상당 기간 경유가 휘발유보다 더 비싼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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