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아기욕조를 산 엄마는 죄가 없다

김은성 기자
다이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물빠짐 아기욕조 리콜 공고문. 다이소 제공

다이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물빠짐 아기욕조 리콜 공고문. 다이소 제공

기준치의 612배가 넘는 환경호르몬 검출로 정부가 리콜 명령을 내린 ‘아기 욕조 집단분쟁 사건’과 관련해 비판의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정신적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제조사 등이 가구당 5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권고하자, 뉴스를 본 일부 독자들이 온라인 댓글 등을 통해 “다이소에서 값싼 신생아 용품을 구매한 엄마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이다. 정작 이번 사태를 초래한 부실한 KC(Korea Certification·국가통합인증) 제도에 대한 비판은 빠진 채 피해자들만 두 번 상처를 받고 있다.

소비자원의 분쟁조정 결과는 사후조치에 불과하다. 가격이 저렴해도 ‘KC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면 믿고 살 수 있는 ‘사전조치’가 없어 앞으로도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다이소에서 대거 팔린 해당 제품은 ‘국민 육아템’으로 불리며, 중고 거래 플랫폼이나 맘카페 등에서 원가(5000원)의 3~10배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낮은 등받이 덕분에 목을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를 씻기기 편하다는 점이 인기의 주 요인으로, 산후조리원이 산모에게 자주 선물하는 KC인증 제품이었다.

문제는 KC 인증을 한번 받으면 이후 제조과정에서 원료 등이 변경돼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해당 제품 제조사 대현화학공업은 2018년 친환경 소재로 첫 KC인증을 받았지만 2019년 다이소 납품 때 배수구 재질을 바꿨다. 친환경 원료는 주문생산방식으로 상당한 시일(7일~10일)이 걸리는 점 등을 이유로 저렴한 일반 원료를 썼다. 원료 변경 이후 별도의 시험검사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욕조 배수구에서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치의 612.5배 검출됐다며 리콜을 명령했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 때 쓰는 화학물질로 장시간 노출 시 간 손상과 생식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KC인증 기준에 따르면 아기욕조는 ‘공급자적합성확인 제품’(아기의 생명·신체에 해를 입힐 가능성이 낮은 상품)으로 분류돼 첫 인증을 받고 나면 재인증 과정이 없다. 해당 욕조에 KC인증이 표시된 채 계속 팔린 이유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안전 보증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재발을 막기 위해 영·유아용 제품에 대해 더 엄격한 안전관리를 받게 하는 내용의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정부와 국회는 개정안 논의 등을 통해 정부를 믿고 구매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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