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인플레이션 (2)

미국선 “집 구입 미뤄” 독일선 “전기요금 30% 올라” 세계가 고물가 신음

최희진·박채영 기자

세계를 뒤흔드는 인플레

한 여성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의 애나폴리스에 있는 대형 할인매장 타깃에서 쇼핑 카트를 밀고 있다. 물가가 계속 치솟으면서 미국인들은 올여름 물가 충격에 직면해 있다. AFP연합뉴스

한 여성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의 애나폴리스에 있는 대형 할인매장 타깃에서 쇼핑 카트를 밀고 있다. 물가가 계속 치솟으면서 미국인들은 올여름 물가 충격에 직면해 있다. AFP연합뉴스

미, 두 달째 8%대 물가 상승
러 에너지 의존 높았던 유럽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격탄’

구인난에 임금 올리는 미국
상승분, 가격에 전가되면서
다시 물가 오르는 ‘악순환’

세계 경제 강대국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역대급’ 인플레이션에 신음하고 있다. 미국 물가상승률은 40여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지역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뛰는 물가에 외식을 줄이고 소비를 미루면서 버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지도가 급락하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상태다.

■“몇 개 집으면 금세 150달러”

미국에서 물가 상승을 가장 먼저 실감할 수 있는 곳은 주유소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는 김태림씨(31)는 18일 “예전에는 휘발유가 1갤런(약 3.8ℓ)당 3달러(약 3800원)도 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거의 5달러(약 6400원)까지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자동차 이동이 많은 미국은 휘발유가격 상승이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장바구니와 외식 물가도 피부로 느껴질 만큼 올랐다.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정명훈씨(40)는 “팬데믹 이전엔 한인 마트에서 식료품을 살 때 100달러(약 12만7000원) 이상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며 “요즘에는 많이 사지 않아도 150달러(약 19만원)가 쉽게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점에선 예전에 15달러(약 1만9000원) 정도 하던 메뉴들이 20달러(약 2만5000원) 이상으로 오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가파르게 오른 물가는 통계로 확인된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3% 올랐다. 물가상승률이 41년 만의 최고치였던 3월(8.5%)에 이어 두 달 연속 8%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는 6.2%로 집계됐다. 전달(6.5%)에 비해 상승폭이 줄었지만, 4개월 연속 6%대를 이어가고 있다.

유럽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독일의 CPI 상승률은 40년 만의 최고치인 7.4%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에너지가격이 오른 게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베를린에 사는 유학생 정수민씨(29)는 “마트에 가면 매장 선반에 식용유, 밀가루가 없다. 카운터에 가서 ‘식용유 있냐’고 물어봐야 하고, 1인당 1개밖에 살 수 없다”며 “예전에는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모씨(47)는 “외식 물가가 20% 이상 올랐다. 팬데믹 전에 케밥이 4.5유로(약 6000원)였는데 현재 6유로(약 8000원), 베트남 음식점에서 파는 쌀국수도 7.5유로(약 1만원)에서 9.5유로(약 1만2700원)로 올랐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전기, 가스요금이 최근 3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독일은 전력 생산의 14.5%를 천연가스로 충당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종전의 55%에서 35%로 낮췄다. 천연가스 수입선을 중동, 미국 등으로 바꾸고 있지만 러시아산보다 가격이 비싸 에너지가격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임금 상승과 인플레이션, 악순환

교민들은 지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박씨는 “외식을 줄였고, 꼭 사야 하는 필수품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고 있다. 보험료처럼 매달 나가던 품목 중에서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해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김태림씨는 집을 사려다가 포기했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다. 김씨는 “월세도 오르고 매매가격도 올랐다. 집을 살까 생각했는데, 좋은 가격에 나온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돈을 몇 년 더 모아서 사려고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주택 매매가격의 변동을 보여주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지난 2월 286.68로, 1년 전 대비 19.8% 상승했다.

자영업자들은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외식 빈도는 줄일 수 있어도 원재료 구입비와 인건비는 줄일 수 없다. 미국의 정명훈씨는 유기농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원재료부터 직원 인건비까지 오르지 않은 것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정씨는 “달걀, 버터, 치즈 등 유제품 가격이 두 배 올랐다. 한국에서 오는 부자재 공급도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30% 정도 올랐다”며 “어쩔 수 없이 빵과 케이크 가격을 15~20% 인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팬데믹 이후 수입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실업수당을 받고 생활하는 게 굳이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며 “직원 구하기가 어려워 시간당 12~13달러(약 1만5200~1만6500원) 하던 시간제 직원 인건비가 지금은 최소 15달러(약 1만9000원)까지 올랐다”고 덧붙였다.

팬데믹 기간 미국 정부는 임시직·시간제 노동자들에게 주당 최대 600달러(76만원)의 실업수당을 지급했다. 또 연소득이 특정 수준 아래인 개인에게 1400달러(약 177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은퇴 시기가 머지않았던 노동자들은 팬데믹을 계기로 은퇴를 앞당겨 일터를 떠났고, 임시직·시간제 노동자들의 복귀 속도는 더디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월 1130만개의 일자리가 비어있는 반면, 구직 중인 미국인은 630만명에 그쳤다. 구인난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5.5% 올라, 4개월째 5%대 상승을 이어갔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상황을 대퇴직시대(Great Resignation)라고 부르고 있다.

임금이 오른 덕분에 소비자들은 기록적인 물가 상승에도 지출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17일(현지시간) 발표한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9% 늘어, 4개월째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생산자들이 임금 상승분을 가격에 계속 전가하기 때문에, 임금 상승이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해결되지 않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세계 경제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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