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

기고 - 탈성장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북유럽 ‘생태복지국가 모델’이 현실적 대안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2001년 닷컴 버블의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은 현 자본주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불평등, 양극화 심화, 금융거품과 금융위기의 빈번한 발생, 환경과 생태 파괴, 전 세계적 감염병 발생 등으로 인해 적어도 진보 진영 내에서는 현재의 시스템, 신자유주의적, 성장지향적, 불로소득 추구형 자본주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광범위한 동의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새로운 대안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성장지향성을 버린 것이어야 한다는 데에도 일정 수준 동의가 형성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보통 저성장, 양극화라는 수식어로 설명되는데 저성장이라는 용어는 성장률 하락을 우리 사회가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부 경제학자들은 성장률 하락을 산업화 성공의 결과로 받아들이지만 이런 시각이 지배적이지는 않다. 아직도 선진국을 충분히 추격 혹은 추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지금까지 한번도 성장 이외에 다른 것을 목표로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 있다. 복지 확대를 추진할 때도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를 사용해온 것이 현실이다.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환경, 생태 중심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탈성장 논의가 시작돼 오랫동안 축적돼왔지만 한국에서는 극단적 성장주의자들과 온건한 성장주의자들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자는 복지 확대가 성장을 해칠 것이라고 보고 환경도 성장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고, 후자는 복지 확대가 성장에 기여할 수 있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하게 해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국내 상황은 온건한 성장론이라도 지켜낼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로 후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탈성장론은 너무나 먼 비전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과도하게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선진국의 소위 ‘발전한’ 생활수준을 개도국이 따라잡으려 하고 있는 체제인데, 그 목표는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자원 이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방향성이 잘못 설정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잘못된 방향을 향해 뛰는 사이 자원 파괴와 수탈은 심해지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해결책은 방향성을 바꾸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진단에 100% 동의한다. 문제는 어떻게 이 시스템에서 벗어날 것인가이다. 자원 낭비의 주체이자 시스템의 수혜자인, 선진국 기득권 집단의 기득권을 어떻게 내려놓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들에게 절반 정도 생산과 소비를 줄이고 그 남은 것에서 절반을 개도국에 양보하게 할 방안이 있을까.

현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탈성장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 ESG 경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스티글리츠의 ‘더 나은 세계화’ 모델들이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험은 탈성장하지 못해 직면하게 되는 위험이라기보다 그린 워싱, 노동인권의 실종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험이다. 그러한 점에서 탈성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잘 추진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바람직한 대안이다. 그 대안은 북유럽 국가들의 ‘생태복지국가 모델’로서 현실 사례가 있다는 매우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대안이 국민의 행복을 높일 수 있을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 성장을 통해 우리가 근본적으로 추구해온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민 행복일 것이라는 점에서 이것을 중심에 놓고 사고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물질적 삶의 수준 제고가 행복도를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겠지만 어느 정도 그 목표를 이룬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한가를 물어봤을 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물질적 삶의 수준 제고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데 왜 그런 목표를 열심히 추구해야 할까? 다행인 것은 북유럽 국가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다. 우리가 행복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역시 생태복지국가가 가장 현실적으로 유력한 대안 모델로 제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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