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지방화 시대” 맞춰 “비수도권 산업 전환” 한목소리

안광호·반기웅·이창준 기자

9개 지역연구원장들이 바라는 ‘지역 비전’

전북의 최대 현안은 새만금과 군산·김제·부안을 아우르는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사업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진 크게보기

전북의 최대 현안은 새만금과 군산·김제·부안을 아우르는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사업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의 정체성을 “지방화 시대를 여는 정부”라고 했다. ‘지방의 시대’를 핵심 모토로 삼고, 역대 정부 최초로 인수위에 지역균형발전특위를 설치했다. 국토의 88.2%를 차지하는 지방의 경쟁력 상실은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 비수도권 광역지자체 산하 기관으로 지역 역점과제를 수립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지역연구원의 원장들은 지방 경쟁력 확보를 위한 나름의 산업 전환 해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비전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9개 비수도권 지역연구원장들로부터 새 정부에 바라는 지역의 비전을 들어봤다.

세계 최대규모 해상풍력
기반시설 위해 정부 지원을

■전남 ‘서남권 해상풍력단지’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장은 지역의 숙원사업으로 전남 서남권 해상풍력단지 건설사업을 꼽았다. 신안 임자도 30㎞ 해상 일대에 추진 중인 8.2기가와트(GW, 1GW는 원전 1기 수준의 발전량)의 해상풍력단지는 단일 단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며 총 사업비는 48조5000억원이다. 박 원장은 “8.2GW가 완성되면 수백개의 기업을 유치할 수 있고, 12만여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이후엔 발전기금을 조성해 지역발전 재원으로 활용하고, 덴마크 미델그룬덴(유람선)이나 영국 램피온(보트 투어) 등과 같이 단지와 연계한 유람선을 운영하거나 해양 레저시설 등을 갖춘 새로운 관광명소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제는 단지 개발에 필요한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도는 중앙정부로부터 예산 약 8000억원을 지원받아 목포 신항만 부두의 배후단지와 국립에너지연구소 등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선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현 심사 방식으로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박 원장은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예타가 지역낙후도지수 비중을 확대하는 등 지역균형발전 취지에 적합한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만톤 쓰레기 감당 못해
환경보전기여금 도입 필요

■제주 ‘쓰레기 없는 섬’ 만들기

제주도는 ‘쓰레기 없는 섬’ 만들기가 최우선 과제다. 지난해 제주지역에서 수거된 해양쓰레기는 2만1489t으로, 2019년과 비교해 82.7%(9729t) 증가했다. 해양쓰레기의 80%는 쉽게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이다. 문제는 쓰레기를 처리할 하수처리시설이나 쓰레기매립장 등 기초환경시설이 넘쳐나는 쓰레기로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제주는 ‘쓰레기 걱정 없는 제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예산으로 올해만 493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김상협 제주연구원장은 “제주도 인구가 70만명이 안 되는데, 연간 1500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들어오다보니 도내 기초환경시설 규모로는 감당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고육책으로 관광객 등 방문객에게 환경보전기여금을 걷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 원장은 “자체 예산 투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환경보전기여금 제도가 속히 도입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새만금·군산·김제·부안
권역 광역교통망 확충 절실

■전북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

전북의 최대 현안은 새만금과 군산·김제·부안을 아우르는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 사업이다. 광역시가 없는 전북에 도로와 철도, 산업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해 새로운 광역경제권을 만들고, 나아가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계획대로라면 2030년까지 8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권혁남 전북연구원장은 “새만금 메가시티는 소멸위기를 겪는 전북의 새로운 발전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새만금은 스마트 수변도시로, 군산시는 스마트 그린산단과 강소연구개발특구로 만들 계획이다. 김제시는 스마트팜혁신밸리와 첨단농기계클러스터 구역으로 만들고, 부안군에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테마파크와 새만금 간척박물관을 세울 계획이다. 하지만 지역 갈등 때문에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새만금 방조제나 동서도로 관할권을 두고 갈등 중인 군산과 김제의 경우, 군산은 통합에 찬성하는 반면 김제는 반대하고 있다. 권 원장은 “상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권역 내 광역교통망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북항 원도심 전면 개발 시급
해양비즈니스 플랫폼 바꿔야

■부산, 북항 재개발·경부선 지하화

우리나라 최초 근대 무역항인 부산항 북항 주변도 노인 인구 30%가 넘는 지역소멸 예정지로 전락했다. 송교욱 부산연구원장은 북항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송 원장은 “북항 재개발을 통해 항구 지역을 해양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바꾸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여기에 시민 여가 시설을 갖추고 배후시가지 접근성 제고를 위한 보행 네트워크를 구축해 살고 싶은 도시로서 매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북항 재개발과 함께 경부선 철도 지하화도 부산 개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중요한 사업이다. 경부선 철도는 부산항 개항 이래 100년 넘게 부산 도심을 관통해 도시 균형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송 원장은 “경부선 지하화 사업은 상위 계획인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되지 못했다”며 “큰 틀에서 경부선 지하화를 통해 단절된 도심기능을 회복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산 북항 원도심 개발에는 ‘전면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재생사업 등 소규모 재생사업으로는 낙후된 지역의 ‘판’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 원장은 지역균형발전의 큰 틀은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을 중심으로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울경 3개 시·도를 단일 경제생활공동체로 만들어 수도권 일극화를 견제할 수 있는 국가의 양대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2030 부산세계박람회까지 개최된다면 신산업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충북 경제 위한 광역망 구축
철도 건설·2차전지 육성

■충북 ‘충청권 메가시티’ 전략

지난 10년간 충북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5%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그동안 충북은 전형적인 케인지안 이론에 근거한 총수요 증가정책(투자 유치 및 수출 촉진 정책)을 통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고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투자 유치는 효과적이지만 지속 가능한 방식은 아니다. 정초시 충북연구원장은 ‘내생성장전략’을 함께 구사해야 할 때라고 진단한다. 정 원장은 “충북 중소기업이 수직적 계열화 산업구조 속에 성장 잠재력이 위축되지 않도록 기술 경쟁력 제고와 시장 개척을 지역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모의 경제를 꾀하기 위해 충북이 택한 방법은 충청권 메가시티 전략이다. 충청권 메가시티의 필수 기반시설은 초광역 교통 네트워크다. 그중에서도 청주 통과(오송~청주 도심~청주공항) 충청 광역철도가 교통망 구축의 핵심이다. 정 원장은 “광역철도의 법적 개념은 ‘일상적인 교통수요(출퇴근)’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며 “따라서 출퇴근 수요가 가장 많은 도심을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광역교통망 구축과 함께 충청권 4개 지자체는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를 집중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정 원장은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사용해 지역의 정주환경부터 자연스럽게 인력 공급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대전환 시대 과제
환경 등 공공기관 유치 절박

■충남 ‘국가 탄소중립 클러스터’

2022년 현재 전국 화력발전 57기 중 29기가 충남도에 모여 있다. 충남에서 생산된 전기의 57.5%는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쓰인다. 충남의 숙원은 ‘국가 탄소중립 클러스터’ 구축이다. 탄소중립의 핵심 거점으로 점찍은 지역은 충남혁신도시(내포신도시)다. 유동훈 충남연구원장은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국제 경제질서 대전환 시대에 국가 탄소중립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은 충남의 절박한 과제”라며 “환경 기술, 해양환경, 에너지, 산업과 국토 발전 연구·개발(R&D) 관련 공공기관의 유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클러스터와 함께 충남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국방산업 클러스터 구축이다. 충남이 그리는 국방산업 클러스터 밑그림의 핵심은 육군사관학교의 논산 이전이다. 앞서 국방대학교 이전과 충남국방벤처센터 설립에 성공한 충남의 마지막 퍼즐이다. 유 원장은 “논산 인근에는 3군 본부, 육군훈련소, 국방대학교 등 주요 군사기관이 다수 밀집해 있는 만큼 육사의 논산 이전은 사관학교의 기능 강화와 국가안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남 국방국가산업단지를 시작으로 구축될 국방산업 클러스터의 조성으로 국가 발전과 지역 발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초소형 전기차 생산 본격화
내년 사업 끝나도 지원해야

■강원 ‘횡성형 일자리’ 추진

강원도가 최근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미래 먹거리 사업은 지역 상생형인 ‘횡성형 일자리’다. 전국에서 두번째 상생형 일자리 사업인 이 사업은 강원 횡성 지역을 기반으로 국내 최대 ‘초소형 전기차’ 생산기지 구축을 목표로 2020년 3월부터 본격 시작됐다. 초소형 전기차는 기존 승용차에 비해 탑승 인원을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춘 1~2인 전용 소형 승용차로, 최근 지역 마트 등에서 물류 운반 등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 같은 초소형 전기차의 97.5%는 횡성형 일자리 사업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강원도는 해당 사업에서 완성차 업체와 부품 기업 간 수평적 협업을 추구하는 ‘기업 간 이익 공유 모델’을 내세우며 전국 각지의 관련 유망 기업을 군 단위 지자체인 횡성으로 불러모았다. 부품 업체들이 초기에 적자를 보더라도 완성차 기업에 꾸준히 부품을 공급해 주면 완성차 업체는 향후 영업이익의 40%를 부품 기업과 공유하는 식이다. 초소형 전기차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생산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김석중 강원연구원장 직무대행은 “강원도를 확실한 소형 미래차 거점단지로 육성하기 위한 2단계 지원사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주요 숙원사업
우주산업클러스터 조성 계획

■경남 ‘항공우주청’ 설치

경남도는 새 정부에서 우주항공산업의 메카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길 기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같은 역할을 하는 ‘항공우주청’을 서부 경남 지역에 설치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 항공우주청 설치는 과학기술계의 주요 숙원사업 중 하나다. 항공우주청 설립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는 지역이 바로 경남도다. 진주시와 사천시 등 서부 경남 지역에 우주 항공과 관련된 기업과 정부 기관 등이 모여 있어 관련 집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김태영 경남연구원장 직무대행은 “경상남도는 서부 경남을 중심으로 우주 관련 43개 기업의 53개 사업장이 분포해 있고 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KAI),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한국세라믹기술원 등 관련 혁신 기관과 연계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라고 말했다.

경남도는 기존 지역 우주항공 산단 등과 항공우주청이 연계되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우주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김 대행은 “우주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새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되도록 도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창작뮤지컬 복합관”
경북, 안동 축 생명산업 도약

■대구 ‘문화 분권’·경북 ‘신산업’

대구시가 추구하는 국가균형발전 키워드는 ‘문화 분권’이다. 가칭 ‘대구아트플렉스’로 불리는 국가 문화산업 중심지를 대구 지역에 구축해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시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대구시가 선도적으로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대구의 문화 분권 사업을 구상한 대구·경북연구원은 대구아트플렉스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국립 창작뮤지컬 콤플렉스’ 건립을 제시했다. 전 세계 유일한 국제 뮤지컬 축제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15년째 개최해 온 대구시는 글로벌 협업에 유리한 뮤지컬 창작 거점의 최적지라는 것이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수도권에 집중된 주요 문화 기능을 대구로 일부 옮겨오면 문화시설 분산화 및 문화 선진화의 중요한 모멘텀 역할을 대구시가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원장은 경북도에는 2차전지·백신 등 미래 먹거리 위주의 신산업 벨트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첨단 산업을 선도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이 위치한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바이오·백신·헴프(대마) 등 미래 생명산업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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