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포럼

닉 서르닉 “제로금리 종말로 벤처 투자 크게 줄 것…플랫폼 기업, 생존경쟁 불가피”

김상범 기자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강사

닉 서르닉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디지털 경제 부문 강사이다. 플랫폼을 가진 기업들이 권력을 어떻게 생성하고 행사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 <미래의 발명: 탈자본주의와 노동 없는 세계> 등을 저술했다. 닉 서르닉 제공

닉 서르닉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디지털 경제 부문 강사이다. 플랫폼을 가진 기업들이 권력을 어떻게 생성하고 행사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 <미래의 발명: 탈자본주의와 노동 없는 세계> 등을 저술했다. 닉 서르닉 제공

데이터 수집·분석 역량 힘입어
크고 빠르게 성장해온 플랫폼
노동법 등 기존 규칙에 새 도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RB)의 파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세계적인 저금리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난 10여년간 눈부신 성장을 거둬온 대형 정보기술(IT) 플랫폼 업체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수익성이 벽에 부딪히면서, 영원히 상승할 것만 같았던 나스닥 기술업체들의 시가총액은 쪼그라들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에 쏠렸던 기대감이 식어가는 2022년의 풍경이다.

플랫폼의 취약성을 미리 예견한 사람이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디지털 경제 부문을 가르치고 있는 젊은 연구원, 닉 서르닉이다. 그는 30대 중반이던 2016년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책을 썼다. 모두가 아마존·우버·페이스북의 성과에 환호하고 있을 때, 그는 플랫폼 경제에 내재된 ‘자본주의’의 속성을 냉철하게 관찰했다. 서르닉은 IT 산업의 발전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인 저금리·양적완화 기조에 힘입은 부산물이며, 자본주의 역사에서 수차례 되풀이돼 온 이윤율 하락, 거품 증가 등 한계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착취적인 노동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고, 독점 기업들은 머지않아 낮은 수익률로 인해 경쟁에 내몰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서르닉은 20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제로금리가 끝나면서) 많은 투자자들은 다시 정상적인 투자 패턴으로 되돌아갈 것이며, (IT 업계를 향한) 그동안의 위험한 투자는 회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들이 앞으로 급속도로 위축된 투자환경 속에서 생존경쟁에 내몰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울러 그는 플랫폼이 독점하고 있는 검색, 물류, 운송, 소셜 네트워킹 등의 ‘공익성’에도 주목했다. 서르닉은 플랫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공 플랫폼’을 제안하면서 “공공재를 대중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긴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플랫폼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플랫폼 비즈니스는 서로 다른 그룹을 하나로 모으는 중개자 형태이며, 플랫폼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종의 인프라다. 플랫폼의 가장 주목할 만한 측면은 바로 네트워크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플랫폼)이 매우 크고 빠르게 성장해 결국 시장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업들은 경쟁법, 노동법 등 기존 규칙에 새로운 도전을 일으키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사회 전반에 걸친 파급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 오늘날 플랫폼 기업들이 2016년 저술한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전망한 행보를 밟고 있다고 보나.

“많은 부분에서 그렇다. 특히 우버와 같은 비즈니스는 인위적으로 매출을 내기 위해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회사들은 어려움을 겪었고 몇년간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해야 했다. 이제 많은 도시에서 우버는 그들이 대체하고자 했던 택시 서비스만큼 비싸다. 또 다른 예측은 플랫폼들이 전통적인 독점 기업들처럼 한 산업 내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확장하리라는 것이었고,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리바바 등의 활발한 기업 인수활동으로 입증됐다. 플랫폼은 데이터 수집, 분석 등 핵심 역량을 통해 비교적 쉽게 새로운 영역에 진출할 수 있다.”

-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대폭 올렸다. 유동성 축소가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금리가 상승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은 다시 정상적인 투자 패턴으로 되돌아갈 것이며, 그동안의 위험한 투자는 회피할 것이다. 특히 벤처캐피털(VC) 자본이 유의미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는 최근 스타트업 투자를 이전 분기보다 최소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현재 빅테크 기업들의 경쟁자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로금리 시대의 종말은 수익성 압박도 가속화할 것이다. 우버는 여러 분기 동안 수십억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수익성 압력이 커짐에 따라 서비스 가격 인상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한국의 구글 인앱결제 방지법,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 도입 등 빅테크 기업들과 각국 정부들 사이의 마찰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두드러지고 있는 이 같은 양상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의 앱스토어 규제는 현재 애플과 구글이 요구하는 엄청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중소기업에 더 나은 경쟁의 장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리 상승에 커진 수익성 압박
서비스 가격 인상 가능성 높아
예전 같은 IT버블 붕괴 없지만
개별 기업 가치 하락은 못 피해

- 플랫폼의 낮은 영업이익 대비 높은 시장가치를 두고 닷컴 버블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

“1990년대 1차 IT 버블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은 분명히 있다. ‘크고 빠르게 성장하라’는 업계의 모토, 수익성 부족, 벤처캐피털 투자의 급증 등에서 그렇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디지털 기술이 1990년대보다 훨씬 깊이 우리 경제에 뿌리박고 있다. 과거에는 인터넷 상용화라는 개념이 생소했지만 오늘날 아마존 웹 서비스(AWS)와 같은 인프라는 전 세계 수많은 기업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1990년대 같은 붕괴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고 해도 개별 기업들의 가치 하락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음원·동영상 스트리밍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나 차량 호출서비스 같은 수익성이 없는 영역은 잠재적으로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 플랫폼 경제는 주로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데, 한 사회의 부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만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플랫폼 그 자체가 효율성을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러 영역에서 거래 비용이 절감됐다. 반면 오늘날 인터넷 경제는 거대한 광고 구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데, 이것이 사회의 부를 증가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광고는 생산적이기보다는 기생적(parasitical)이기 때문이다. 생산성의 문제도 있다. 디지털 기술의 생산성은 19세기 초 도입된 기술들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선진국의 생산성 증가세는 지난 수십년간 하락세를 걸어 왔는데 빅데이터, 머신러닝, 로봇공학 등이 이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메타(구 페이스북) 로고 앞에 끊어진 이더넷 케이블이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메타(구 페이스북) 로고 앞에 끊어진 이더넷 케이블이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최근 거대 IT 기업들 사이에서 수익성 악화 우려가 나온다.

“주로 영상 스트리밍 분야에서 경쟁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에 가입하는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넷플릭스가 구독자 감소라는 역풍을 맞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페이스북은 직접적인 경쟁에 직면하고 있지는 않지만, 젊은층 위주로 회원 수가 줄고 있다. 앞으로 플랫폼 경제의 중심 강자는 아마존,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와 같은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사업은 필수적인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플랫폼 체제에서 발생하는 일자리의 파편화, 불안정 노동의 증가 등은 어떻게 보는가.

“현실의 ‘긱 경제(Gig Economy·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직 형태로 고용하는 방식)’에서는 플랫폼이 급여 수준과 업무 방식 등에서 상당한 통제권을 갖고 있다. 플랫폼이 고용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법원이 사업자 계약이 아닌 근로계약을 강제한다면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많은 국가들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돼왔고 고용은 더 불안정해졌으며 정부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발언권을 제한해 왔다. 이런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훨씬 광범위한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빅테크 독점의 검색·물류·운송
공익에 기여하는 측면 존재해
탈자본주의적 ‘공공플랫폼’ 제안

- 플랫폼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아이디어로 탈자본주의적인 ‘공공 플랫폼’을 제안했다.

“빅테크 회사들은 검색, 물류, 운송, 소셜 네트워킹 등의 기능을 독점하고 있다. 이 기능들은 공익에 기여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앞으로 정부의 목표는 플랫폼 기능을 대중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보장하는 것이 돼야 한다. 이는 20세기 초 각국 정부가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독점 기업을 규제하는 표준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수도 공급과 같은 서비스의 국유화는, 시장의 변덕에서 중요한 인프라를 지키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플랫폼이라는 공공재를 대중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긴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