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향포럼

약탈적 플랫폼이 만든 ‘평점 사회’…기술의 장점 지렛대로 규제·대안 찾기 나서야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기고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플랫폼은 동시대 자본주의의 범용 기술 장치로 등극했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 속 애플리케이션(앱)들이 우리 주위 사물의 질서를 조정하는 원격장치가 되어간다. 플랫폼은 그 무엇보다 일상 생필품, 음식, 잠자리, 운송, 배달, 돌봄, 청소, 노동, 데이터, 콘텐츠 등의 원격 거래나 소비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플랫폼의 영향력은 더욱 깊어졌다. 온라인을 매개한 상품과 서비스 구매와 콘텐츠 소비, 비대면 소통이 크게 늘고 익숙해진 까닭이다. 기후 재난과 감염병이 우리의 일상이 된 ‘뉴노멀’ 상황에서, 인간의 물리적인 접촉을 플랫폼이 대신하려는 ‘언택트 경제’ 논리는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플랫폼 자본 논리가 온라인을 매개해 현실 질서를 좌우하는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도래다.

플랫폼 사업자는 (비)물질 시장 자원을 둘러싼 여럿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서로 연결해 자원 탐색에 소요되는 마찰 비용과 거래 비용을 낮춰주는 대가로 중개 수익을 취하는 일종의 ‘거간꾼’ 구실을 해왔다. 플랫폼의 진정한 능력은 흩어져 있는 자원 공급자를 묶어 이를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가 현명한 시장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그렇게 플랫폼 장치는 경제 행위자들의 효율적인 자원 교환의 물류 병참학(로지스틱스)에 크게 기여해왔다.

플랫폼 업계는 더 나아가 서비스 영역에서 거대한 신생의 노동 시장을 만들어내며 유연 근무와 고용 창출 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 여파로 불과 수년 만에 이미 우리 곁에 플랫폼 배달노동은 흔하게 발견되는 일상의 풍경이 됐다.

문제는 플랫폼이 권력이 되는 순간이다. 바로 인간의 시장 활동, 자원 정보의 실시간 파악 및 매칭, 데이터 알고리즘 예측을 통해 플랫폼의 중개 능력을 극대화하려고 할 때 모순에 처한다.

이를테면, 플랫폼에 매달린 이용자의 일상 활동은 플랫폼에 수시로 감지되어 데이터로 쉽게 치환되고 각자의 취향은 알고리즘 분류 처리를 통해 미래 구매력 예측 지표로 쓰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민간 데이터의 수집과 감시 없이는 그것의 제 기능이 작동 불가한 ‘기생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인다.

불행히도 최근까지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기술이나 조직 혁신보다는 시장에서의 ‘주목도’와 점유율 확보를 위해 가격 할인, 공짜 프로모션, 유명 연예인 광고 등 공격적인 자금 소진 전략을 취해왔다. 게다가 이들은 시장 독점력을 얻는 순간 기존의 시장 독점체와 별반 다르지 않게 행동해왔다. 가령, 고용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플랫폼 노동자를 개인 사업자로 만들어 외주화하거나, 플랫폼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접수하는 과도한 시장 욕망을 보이거나, 플랫폼 알고리즘 순위 조작을 통해 자체 브랜드 노출을 높이는 불공정 행위를 하거나,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은밀한 방식으로 노동 통제를 수행하는 등 전근대적인 사업 관행이 쉽게 관찰된다.

오늘날 플랫폼의 문제는 그것이 시장을 넘어서 사회와 정치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데 있다. 한 사회의 가치와 질서가 갈수록 플랫폼이 선사하는 ‘좋아요’ ‘랭킹’ ‘추천’ ‘주목과 평판’에 의지해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평점 사회’는 플랫폼 기업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특징적 국면이 됐다. 지도 위 별점이 영세업자의 생존을 좌우하고, 공유 택시의 배차 알고리즘이 기사의 노동 방식을 길들이고, 플랫폼 알고리즘이 사회의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혐오와 적대의 정치 문화를 배양하고, 소비자 손끝의 평점과 댓글이 플랫폼 노동 수행성의 척도로 쓰이면서 산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비수로 꽂히기도 한다.

플랫폼의 사유화된 기술은 시장의 규칙을 바꿀 뿐만 아니라, 사회의 소통과 관계 감각까지 특정 채널로 끌어들이고 있다. 인간의 노동과 사회관계를 악화시키고 말초적인 연결 강박을 유도하는 플랫폼 왜곡 현실을 ‘규제 공백지대’로 그저 방치할 수만은 없다. 플랫폼 시장이 야기하는 피폐화된 노동과 승자독식의 시장 독점 구조를 법·제도 개선을 통해 바꿔내야 한다. 더불어, 여전히 열려 있는 플랫폼 기술의 장점을 지렛대 삼아 시민 자신이 주도하는 플랫폼 매개형 사회 경제 모델을 확산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 늦지 않았다. 약탈의 플랫폼 현실에 맞서 호혜와 공생의 가치를 불어넣는 대안 실험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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