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처럼 디자인하면 작물이 스스로 자라요”

주영재 기자

퍼머컬처를 위한 생태조경… 이진호 맛있는정원코리아 대표

[주간경향] “숲은 농약과 비료, 퇴비, 심지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울창하게 잘 자라요. 가뭄과 홍수가 오면 밭은 흉작이 되지만 산은 끄떡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뜻하는) 퍼머컬처는 숲을 관찰해 얻은 원리를 그대로 농장과 정원에 옮긴 겁니다. 그러면서 이왕이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바꿔주는 거예요.” 퍼머컬처를 위한 생태조경을 디자인하는 맛있는정원코리아의 이진호 대표는 지난 11월 22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퍼머컬처’를 보기에도 아름답고, 환경도 생각하는 자연재배 방식이라고 소개하며 이같이 설명했다.

퍼머컬처는 아직 낯선 용어지만 한국의 전통 농법과 유사하다. 다만 땅의 공간적 활용과 미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퍼머컬처는 숲의 원리를 따라 식물 간 공생관계를 활용한다. 농약과 비료, 퇴비를 주지 않는다. 논밭을 갈거나 김을 매지도 않는다. 친환경적이다. 농작업이 줄어 노동력을 줄일 수 있다. 비료와 퇴비를 주지 않아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스스로 일하는 자연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많은 젊은이가 농업을 떠나는 이유는 힘이 들고, 돈이 되지 않아서다. 근데 이렇게 지속가능한 농업을 하게 되면 건강과 힐링을 줄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살리고, 농부의 강소농화도 가능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진호 맛있는정원코리아 대표가 지난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퍼머컬처’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백년 제공

이진호 맛있는정원코리아 대표가 지난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퍼머컬처’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백년 제공

자연재배로 생태계 살린다

농약은 아니더라도, 친환경 살충제라도 주는 게 당연하고, 화학비료는 안 주더라도, 퇴비는 줘야 농작물이 잘 자란다고 생각하는 상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쉽게 믿기 어렵다. 이 대표는 상식을 깨려면 농작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약과 비료의 힘으로 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주체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자기가 필요한 영양분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산자인데, 관행농업은 식물을 ‘소비자’로 본다고 했다. “지금의 관행농이나 유기농은 식물을 생산자로 보지 않고 소비자로 봐요. 그래서 자기가 주는 물과 퇴비, 비료 같은 것을 먹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고 생각하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욕심이에요. 더 빨리 더 크고 더 빨갛고 더 이쁘게 보이고 싶어서 자꾸 투입하는 거죠.”

투입을 중시하지만 역설적으로 땅과 작물에선 영양 결핍 현상이 일어난다. “건강한 흙 한숟가락에는 미생물 200억마리가 살고 있어요. 얘네들 생명은 몇시간밖에 안되죠. 이들의 사체와 똥이 다 식물의 먹이가 됩니다. 인간이 사서 넣어주는 비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양분이에요.” 농약은 이렇게 유기물을 분해해 유익한 영양소를 만들어내는 땅속 미생물을 죽인다. 비료는 식물의 자생력을 해친다. 나무의 뿌리는 양분을 얻기 위해 땅속에서 길게 뻗어나간다. 땅속 뿌리와 땅 위로 뻗은 줄기, 가지 길이의 이상적인 비율은 1:1이다. 비료를 주면 양분을 쉽게 얻을 수 있어 뿌리가 뻗어나가는 길이가 줄어든다. 뿌리가 퇴화하는 것이다. 땅속 양분을 폭넓게 활용하지 못하면서 작물의 영양소는 자연재배로 생산한 것에 미치지 않게 된다. 유기농 농업도 농약만 쓰지 않을 뿐 친환경 살충제와 퇴비로 식물의 질소 과잉 현상을 초래한다.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랄수록 열매의 영양적 가치가 높고, 잘 썩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인삼을 한 예로 들었다. “똑같은 인삼 씨앗을 사람이 밭에 뿌리면 인삼이 돼요. 이걸 산에 심어 키우면 산양삼이라고 부릅니다. 새들이 인삼 씨앗을 물고 날아다니다가 떨어뜨려 숲속에 난 삼은 산삼이라고 하죠. 인삼은 보통 6년근입니다. 6년이 지나면 썩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산삼은 10~100년 이상씩 묵어요. 인삼뿐만 아니라 도라지도 그렇고 더덕도 그래요. 이렇게 자연에 가까운 게 더 건강하고 더 약효가 뛰어나고 더 가치 있습니다.” 식물이 가진 면역력과 자가 치유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한 자연재배 농법의 힘이다.

프랑스 벡엘루앵에 있는 퍼머컬처 농장. La Ferme du Bec Hellouin.

프랑스 벡엘루앵에 있는 퍼머컬처 농장. La Ferme du Bec Hellouin.

퍼머컬처, 숲을 닮은 농장

퍼머컬처는 작지만 강한 농부 ‘강소농’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강소농이 되려면 단위면적 당 많이 심고, 많이 수확해야 한다. 농약이나 비료 투입을 줄여 원가를 낮춰야 한다. 특히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노동을 줄여야 한다. 힘이 들면 지쳐 포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산물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퍼머컬처는 이 다섯가지를 모두 가능하게 한다. 먼저 두둑(밭과 밭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언덕)을 입체적으로 디자인하는 게 중요하다. 관행농법의 밭은 절반을 통로로 쓴다. 열쇠구멍 모양의 두둑에서는 통로로 써야 하는 공간이 4분의 1로 줄어든다. 두둑을 높이 하면 경작 면적을 늘릴 수 있다. 추가로 미세기후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햇빛이 잘 드는 맨 위는 건조하고, 양지쪽 사면은 반건조, 반대편엔 반음지·반건조 상태가 된다. 밑은 다습한 곳이 된다. 그에 따라 각 미세기후에 맞는 작물을 심으면 좋다. 쪼그려 앉아서 하는 밭일을 줄일 수도 있다.

퍼머컬처는 자연을 닮은 농장을 지향한다. 동식물의 공생관계를 활용한다. 크고 작은 여러 식물이 어울려 자라는 숲의 원리를 따라 조성한다. 예를 들어 과수원이라고 하면 숲에 한 종류의 나무만 자라지 않듯, 사과 한 종류만 심는 게 아니라 사과 옆에 질소를 고정하는 아까시나무·박태기나무·오리나무·회화나무 등 콩과 나무를 심고, 그 옆에 배나 자두 같은 과실수를 심는 식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작물을 번갈아가며 심어준다. 빽빽하게 심어도 콩과 작물이 질소를 고정해주면서 충분한 양분을 얻을 수 있다. 옛 어른들이 지력이 떨어지면 콩을 심었던 이유다. “콩뿌리를 뽑으면 안에 동글동글한 알갱이들이 붙어 있는데 그게 바로 질소 덩어리입니다. 땅속 미생물과 함께 만들어내 땅을 비옥하게 만들죠.” 사과만 키울 경우 송충이가 창궐하지만, 송충이가 싫어하는 과실수나 메리골드 같은 꽃을 중간에 심으면 살충제를 쓰지 않아도 된다. “단일 작물만 심을 땐 농약을 안 칠 수가 없죠. 벌레에게도, 농장주에게도, 자연에도 파괴적일 뿐입니다.”

이 대표는 퍼머컬처 농장을 키친가든이라고도 불렀다. 농장과 정원의 경계가 없고, 농장에서 바로 따 요리를 해먹는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았다. 아파트단지나 유휴부지에 만드는 식으로 도시에서도 시도해볼 수 있다. 운반과 포장, 배달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농부와 얼굴을 맞대고 직접 거래하는 파머스마켓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먹을 음식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봐요. 맛있는 정원을 내 마당에 만들어 내가 생산한 걸 내가 조리해 먹으니 포장할 필요도 없고 운반할 필요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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