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만하임시 “미군 기지를 공원으로 바꾸니 바람길이 트였다”

만하임 | 강한들 기자

③ 독일 만하임시

스피넬리 공원 전경. BUGA2023 제공

스피넬리 공원 전경. BUGA2023 제공

축구장 112개 규모의 기지가
찬 공기 흐름 막아 도심 ‘찜통’
주 정부, 스피넬리 공원 조성
공기 통로 생기자 온도 낮아져

‘녹색’이 ‘회색’을 몰아냈다. 지난 11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만하임에서 열린 ‘2023 독일 연방 정원박람회(BUGA)’ 스피넬리 공원의 ‘녹색’ 한 귀퉁이에는 크고 작은 시멘트 파편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곳이 얼마 전까지 미군 기지였음을 알려주는 흔적이다.

미군 기지였을 때 스피넬리 공원은 대부분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시멘트가 덮고 있는 80㏊(축구장 112개 크기) 규모 기지는 도시 전체를 찜통으로 만드는 주범이었다. 도시 열섬 현상으로 만하임 도심에서 솟았던 공기가 차가워진 뒤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미군 기지가 막고 있었다.

이제 스피넬리 공원은 폭염 시기에 도심의 기온을 낮춰줄 ‘녹색 공기 통로’가 됐다. 도심 밖에서 차가워진 공기는 스피넬리 공원을 지나 네카흐강을 따라 도심으로 돌아온다. 스피넬리 공원은 주 정부가 계획해 만들었다. 독일 연방정부는 지자체에 ‘기후위기 적응 계획’을 세우라고 강제하지 않는다. 지자체의 자율권이 강한 독일 헌법 탓이다. 지자체는 알아서 기후위기 적응 계획을 세우고 이행한다. 연방정부는 인력, 자금, 정보 등 지원만 한다. 주 정부는 연방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을 산하 지자체에 알려주고 우선순위에 맞는 자체 계획을 만든다. 스피넬리 공원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경향신문은 지난 11~14일 독일 만하임시, 브란덴부르크주, 독일 환경·자연보전·핵안전·소비자보호부(이후 독일 환경부)의 기후위기 적응 담당자를 만났다.

독일의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기후위기 적응 정책을 만들 때 어떻게 협력해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는지 이들에게 들었다.

시, 기후 적응 정책 만들 때
아이들 포함 시민 의견 반영
정부는 정보·담당자 등 지원

지자체 주도 정책, 어린이까지 참여

만하임시는 비를 흡수하고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 호수, 공원 등 녹지를 늘리는 ‘스폰지 도시’를 목표로 한다. 만하임시 기후적응 담당자 알렉산드라 이들러(아래 사진)는 지난 11일 “독일 연방 정원박람회(BUGA)는 10월에 끝나지만, 녹지는 남는다”고 말했다.

만하임시가 만든 ‘녹지’는 BUGA가 열리는 지역뿐만이 아니다. BUGA를 계기로 지하 공간이 이미 있는 도심에도 섬 같은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무를 심었다. 공원을 만드는 자금은 독일 연방정부가 지원했다. 만하임시는 그늘을 만들고, 불투수 공간을 줄이기 위해 도심에 올해는 750그루, 내년 총 1000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이들러는 “지하 공간이 주차장 등으로 차 있어 나무가 충분히 자랄 뿌리 공간을 확보하는 게 어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적응 해외는, 지금] 독일 만하임시 “미군 기지를 공원으로 바꾸니 바람길이 트였다”

만하임시에 따르면 도심에서는 66~85세 시민이 약 1만2000여명, 86세 이상만 해도 3000명 이상이 열대야에 노출된다. 그렇지만 대부분 가정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래서 스피넬리 도시개발 기본계획에는 “도심 녹지 조성, 빛 반사가 가능한 밝은 소재로 집을 짓는 등의 노력으로 최대 10도의 국소 지역 온도 감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만하임시는 이렇게 만든 공간을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린다. ‘녹색 공간’과 ‘청색 공간’을 표시한 자제 제작 지도를 온라인에 게시했다. ‘녹색 공간’은 상대적으로 시원한 녹지와 공공건물 등으로 한국의 ‘무더위 쉼터’에 해당한다. ‘청색 공간’은 분수대나 음수대 등 물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5~9월 사이 담당 직원이 녹색 공간과 청색 공간의 상태가 여전한지 확인한다. 공간 정보 중 ‘폭염에 대처할 수 있는 곳’의 클릭 회수가 연간 4만회 정도로 가장 많다. 만하임시는 폭염, 홍수가 닥쳤을 때 대응 방법도 상황별, 직종별로 세분화해 알린다. 재난 상황에서 시민들이 서로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가르친다. 폭염에 취약한 이웃을 위해 장을 볼 때 필요한 물품을 물어달라든지, 자주 방문해 상태를 확인해달라는 당부도 포함한다. 이들러는 “기후위기 적응은 ‘로켓 과학’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서로 도울 수 있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며 “행정력이 모든 개인에게 다가갈 수 없어서 취약계층에게 닿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하임시의 기후적응 정책 배경에는 2019년 시 의회가 채택한 기후적응 계획이 있다. 이 계획은 건강, 도시 구조, 수송, 건물, 산업, 농업 등 대부분 분야를 망라한다. 만하임시는 모든 부서 직원에게 기후 적응 관점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설문한 뒤 부서 간 협업을 시켰다. ‘기후적응’을 직접 담당하는 사람은 1~2명뿐이지만, 전 부서로 넓히면 15명 정도가 기후적응 업무를 하게 됐다. ‘기후 포털’을 통해 시민의 의견을 받았다. 아이들도 만하임시 의회로 모여,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했다. 조지 핀스 만하임시 기후전략팀장은 “향후 더 큰 문제를 겪을 아이들에게 기후위기 적응을 묻는 게 우리에게 매우 중요했다”며 “우리만의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가는 독일의 기후정책은 한국 정부가 ‘참고서’로 삼을 만하다. 한국에서는 중앙정부, 지자체가 기후위기 적응 계획을 세우도록 법으로 정해뒀다. 그런데 이 법이 만들어진 뒤 10여년이 지나고도 ‘형식’에 치우친 계획이 많다. 하향식 정책 구조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방정부의 기후위기 적응 대책에서는 지역의 특색에 맞는 정책과 우선순위를 찾기 어렵다. 한국 기후위기 적응주간이었던 지난달 30일 한국의 17개 광역지자체, 217개 기초지자체가 “기후적응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지역이 중심이 돼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협력할 것”을 선언한 이유다.

기존 스피넬리 기지(노란색)가 도심으로 향하는 찬 공기를 막던 모습.

기존 스피넬리 기지(노란색)가 도심으로 향하는 찬 공기를 막던 모습.

독일 연방 정원박람회 지원을 받아 스피넬리 기지를 녹화한 뒤의 찬 공기 흐름. 스피넬리 공원을 지나 네카흐강을 따라 도심까지 유입될 수 있게 됐다. 만하임시 제공

독일 연방 정원박람회 지원을 받아 스피넬리 기지를 녹화한 뒤의 찬 공기 흐름. 스피넬리 공원을 지나 네카흐강을 따라 도심까지 유입될 수 있게 됐다. 만하임시 제공

한국은 형식적 계획이 다수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 필요

전문가 파견하고, 계획 돕는 정부

독일 연방정부는 기후적응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할까. 독일 환경·자연보전·핵안전·소비자보호부(이후 독일 환경부)는 각 지자체가 ‘원할 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핵심 지원 기능은 독일 환경부 산하 기후적응센터가 담당한다. 기후적응센터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정보 제공’과 ‘지방정부 기후적응 담당자 지원’이다. 우선 기후적응센터는 각 지자체가 기후위기 적응 계획을 세우고, 적응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 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연방정부, 유럽연합(EU) 차원의 재정 지원 상황을 알린다. 이와 함께 기후적응 담당자를 교육한다. 필요하면 각 지자체의 기후위기 담당자 인건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기후적응 담당자는 지자체 내 부서들과 협업하고 전략을 세운다. 기후적응센터는 담당자들을 위해 ‘공공장소의 기후 회복력’ ‘건기 대응을 위한 전략’ 등 관련 강의를 수시로 연다. 지자체 내 ‘정책 입안자’와 의사소통, 대중 커뮤니케이션 등에 관한 세미나도 진행한다. 기후변화 적응 관련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멘토’를 지자체의 신임 담당자와 연결하고, 담당자 간 네트워킹도 지원한다.

[기후위기적응 해외는, 지금] 독일 만하임시 “미군 기지를 공원으로 바꾸니 바람길이 트였다”

연방정부는 이에 더해 각 지자체의 기후적응 사업도 지원한다. 우선순위는 ‘자연기반해법’(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환경 보존, 복원 등을 사용하는 것)이다. 재켈 울프 독일 환경부 유럽·국제 기후변화 적응과장(박사·위 사진)은 “현재 70명인 기후적응 매니저의 인건비를 비롯해 지난해 총 6000만유로(약 853억6200만원)의 예산을 썼다”며 “자연기반해법은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 다양성 프레임워크(뼈대) 이후 강화된 생물다양성 전략과 온실가스 흡수도 할 수 있는 종합적 대책이라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염 대응에 ‘에어컨 설치’ 등 방법으로 에너지 소비를 되레 늘리지 않으려 하는 이유기도 하다.

한국은 탄소중립기본법에 ‘탄소중립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정했다. 이 센터는 각 광역·기초지자체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 기후위기 적응 대책 수립과 지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 탄소중립지원센터 37곳에 책정된 예산은 54억원에 불과하다.

독일 정부는 2021년 낸 ‘독일 기후 영향과 위험 분석’ 보고서에서 기후위기 적응이 없다면 2022년에서 2050년까지 최대 9000억유로(약 1280조4300억원)의 손실이 있을 것이라 봤다. 보고서는 “기후변화 적응 없이는 205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이 0.6~1.8% 감소하고, 재난으로 인한 손실이 너무 커서 경제는 계속 성장할 수 없다”며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기후 적응’에 지금 비용을 쓰면 향후 손상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다른 목적에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환경부는 현재 기후적응법 초안을 내고 연방 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 기후위기 위험 분석에 기초한 기후위기 적응 계획을 작성할 임무를 부여하고,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기후위기 적응 계획이 설계됐는지 연방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독일 정부는 ‘측정 가능한 목표’를 둔 기후 적응 전략을 내년 여름까지 만들 계획이다. 새로운 기후 적응 전략은 내년 말쯤 수립된다.

독일에서 연방정부와 시 사이에 있는 주 정부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한다. 주 정부는 지자체를 위한 자금 조달 프로그램을 찾아서 각 지자체에 전달한다. 주기적으로 지자체별 기후적응 담당자에게 뉴스레터도 보내, 정보를 알린다.

주 정부는 기후적응 법안 등에 대해서는 지자체 현장의 의견을 모아 연방정부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한국에서도 기후 재난으로 참사가 벌어졌던 지역의 기후위기 적응 계획이 이런 재난을 막을 수 있도록 세워져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구조적 대책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취약계층에게 시민 네트워크를 활용할 사회적 연결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석진 기후위기대응에너지전환 지방정부협의회 연구원은 “한국에서도 연속적이고 전문적인 기후위기 적응 정책을 내기 위해 담당자를 둘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취재지원

[기후위기적응 해외는, 지금] 독일 만하임시 “미군 기지를 공원으로 바꾸니 바람길이 트였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