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치선언은 위기를 도약으로 바꿀 희망 키우는 일”···선언 참가자가 말하는 ‘기후정치’ 절박한 이유

김기범 기자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왼쪽)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왼쪽)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기후위기가 갈수록 일상을 위협하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대응은 아직 미진하다. 파국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은 되려 퇴보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선포식은 바로 이처럼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선포식을 하루 앞둔 13일 시민선언(이하 선언) 참가자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과 소설가 최정화씨가 서울 중구 경향신문에서 만났다.

조 전 원장은 30년 동안 기상과학원에 몸담았고 2019년부터 기후위기에 대해 다양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녹색정의당에 총선 ‘1호 인재’로 영입됐다.

최 작가는 클라이파이(Clifi)라고 불리는 기후위기소설을 쓰는 소설가다. 클라이파이는 공상과학소설(SF·science Fiction)을 Scifi(사이파이)라고 줄이듯이 ‘Climate Fiction을 줄인 말이다. 주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을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선언에 참여하는 이유와 선언 의미에 대해 말해달라.

조천호 전 원장 : 이번 선언은 기존에 기후위기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정당들뿐 아니라 무관심했던 거대 정당도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고 본다. 기후위기 의제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다뤄지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나 행정에 있어서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의제이기도 하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인데, 기후위기가 절박한 상황임에도 밑바닥 의제인 상황에서는 국가적으로 자원이 투입될 수 없다. 기후위기를 한국 사회에서 최선의 의제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참가하게 됐다.

최정화 소설가 : 기후위기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기후위기 관련 목소리를 내는 정당들이 ‘선거에 출마만 해주면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원치 않는 거대 정당들을 억지로 찍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면서 당선은 아예 생각도 못 했다. 이제는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실제 당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이번 선언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위기 관련 활동을 하던 문화예술인, 연구자, 활동가 등이 한자리에 모여 희망을 확인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의미도 있다.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가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가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 과학자나 환경단체 활동가뿐 아니라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 다양한 이들이 기후정치 시민선언에 참가했다.

조천호 : 유엔환경계획(UNEP)이 만든 ‘기후환경실천 10계명’의 1계명이 ‘목소리를 내라’이고, 2계명이 ‘정치가들을 압박하라’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바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여 정치적 압박을 가해야 하는 수준까지 와있다는 얘기다. 유엔이 결코 진보적인 곳이 아니고,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임에도 이런 메시지가 나올 정도의 세상에 우리가 와있는 것이다.

최정화 : 기후위기로 인해 멸종위기 생물들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하지만, 많은 시민에게는 그게 와닿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연 결핍을 겪고 있다고들 말하는데, 우리가 다른 생물종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보니 멸종위기 생물 얘기를 듣고도 반응할 수 없는, 무감각해져 있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조천호 : 현재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먹을 것이 풍성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가면 식량 생산량이 10%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와 있다. 앞으로 식량 수요보다 공급이 줄어드는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고, 우리 아이들이 고통을 당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부분 식량을 수입하는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정치권은 (기후위기와 관련해) 초긴장 상태여야 하는데 별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정화 : 예를 들어 누가 나를 자꾸 때리면 아프니까 도망가거나 맞서 싸우거나 하게 될 텐데, 한국이 맞이하고 있는 파국은 너무 달콤한 기후위기다. 당장은 편하니까 그냥 주저앉아있는 상태가 바로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으로는 빈국들이 더 위험한 상태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우리가 더 위험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왼쪽)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왼쪽)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 기후정치 선언에는 개인들 노력만으로는 현실을 바꾸는 것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최정화 : 나도 고기를 매우 좋아했던 사람인데 채식을 하고 있고, 제로웨이스트도 실천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일들이지만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개개인의 실천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적인 차원의 기반이 바뀌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것도 기후정치 시민선언에 참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사실 제도는 그대로 두면서, 개인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캠페인 등은 개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사회는 바뀔 준비가 돼 있는 이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을 바꾸려면 교육과 문화적 측면에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조천호 :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개인들만의 노력으로는 각자가 ‘착한 소비자’가 되는 정도의 의미에 머무를 수도 있다. 시민들의 의식 변화나 행동 변화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들 역시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

최정화 :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예술이 분명히 사회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에도, 현재는 그냥 취향의 대상이 되어있는 상태다. 예술가들조차도 자신의 역할을 그렇게 크게 여기지 않고 있다. 아직 주춤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응원의 메시지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의 무의식까지 침투할 수 있는 것이 음악, 미술, 연극 등 문화예술이라고 보는데, 기후위기와 관련해 (예술가들이) 창작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또 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대부분 어디를 개발했다는 개발의 역사뿐이고, 자연의 역사는 빠져있다.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왼쪽)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1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 관련 대담에서 최정화 작가(왼쪽)와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총선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계 등이 준비 중인 시민선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준헌 기자

- 기후위기와 관련해 무기력감과 우울증을 겪고 있는 청년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천호 : 얼마 전까지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마치 인류가 절벽에서 뚝 떨어지는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1.5도를 넘어서는 것을 지뢰밭에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1.5도를 넘어선 뒤에도 1.6도, 1.7도가 되는 상황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라는 지뢰밭에서 인류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더 깊은 지뢰밭으로 갈 수도 있고, 다시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최정화 : 조 전 원장님이 저서에서 “인류는 이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충분한 자본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 상황을 바꾸지 않고 있다”고 설명하신 부분을 인상 깊게 봤다. 그런 관점에서 정치를 바꾸고, 바뀐 정치를 통해 시민들이 결단을 내려준다면 지금처럼 기후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상황에 대해 기후위기 대응에서 꼴찌라는 비판이 많이 나오는데, 정치를 바꾸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조천호 :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지난해 6차 보고서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적 대응이 가능하지만 “장애물이 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기득권층을 의미하는 그 장애물들을 치우는 것이 기후정치가 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에 있어 인류 가운데 소수의 기득권층의 책임이 큰데 이 같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가 아닌, 틀을 부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8시간 근무, 주5일 등은 모두 정치적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들 역시 정치적 요구를 통해 얻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윤봉길 의사가 폭탄 하나 던졌다고 우리나라가 해방됐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폭탄을 던지는 행위가 마땅히 있었어야 하는 일인 것처럼 우리 역사에서 (기후정치 시민선언이)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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