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습지 지킨 산장지기 삼대의 환경운동

오제(일본 군마현) | 김기범 기자

일본 자연보호운동 ‘발원지’ 오제국립공원을 가다

지난 10월26일 일본 오제국립공원 내 해발 1660m 높이에 있는 호수 오제누마에서 오리떼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 군마현, 니가타현, 후쿠시마현 등에 걸쳐있는 오제국립공원은 20세기 초반부터 펼쳐진 댐 반대운동으로 일본 자연보호운동의 효시가 됐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지난 10월26일 일본 오제국립공원 내 해발 1660m 높이에 있는 호수 오제누마에서 오리떼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 군마현, 니가타현, 후쿠시마현 등에 걸쳐있는 오제국립공원은 20세기 초반부터 펼쳐진 댐 반대운동으로 일본 자연보호운동의 효시가 됐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해발 1660m 높이까지 산을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찬 상태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에 다시 숨이 막힐 정도였다. 고즈넉한 고산지대, 일본 오제습원의 거대한 호수 오제누마는 늦가을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높은 지대에서 보기 힘든 오리떼들은 호수 곳곳에서 한가롭게 수초를 뜯고 있었다. 지난 10월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방문했던 오제국립공원은 불필요한 댐을 만드는 것과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 평화로운 풍경을 통해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일본 최고 습지 지킨 산장지기 삼대의 환경운동

오제국립공원은 일본 군마현, 니가타현, 도치기현, 후쿠시마현 등 4개 지자체에 걸쳐 있으며 시부츠산과 히우치가다케산, 고산지대에 넓게 펼쳐져 있는 오제습원(濕原) 등으로 이뤄져 있다. 습원의 상류인 오제누마는 해발 1660m, 거대한 습지인 오제가하라는 해발 1400m 정도 높이에 있다. 습원은 습기가 많은 초원을 말한다. 국내에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제습원은 일본의 자연보호운동이 본격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산림을 보호하며 탐방하는 문화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오제에서의 댐 반대운동을 계기로 일본자연보호협회가 생겨났고, 탐방 코스의 훼손을 줄이고, 식생을 보호하기 위해 목조데크도 일본에선 처음 이곳에 설치됐다. 목조데크를 설치하면 탐방객이 직접 땅을 밟으며 발생하는 ‘답압’이 땅을 굳게 만들어 주변 식생이 살기 어려워지는 것을 막고, 다수의 탐방객이 왕래하면서 점차 탐방로가 넓어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오제에서의 댐 반대운동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습지보호운동을 연구하는 자연의벗연구소 오창길 소장에 따르면 1903년 일본 정부가 오제에 수력발전을 위한 댐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일본 자연보호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히라노 조조(1870~1930)는 “댐이 완성되면 오제습원이 수몰되고, 자연환경이 크게 파괴된다”고 주장하며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히라노는 1890년부터 오제습원 주변에 현재 ‘조조산장’으로 불리는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오제의 가치를 알려온 인물이다. 개발과 경제발전 외의 가치는 전혀 인정되지 않던 시대, 다소 파격적인 그의 주장에 일본 식물학의 대부로 알려진 다케다 히사요시를 포함한 학자, 예술가들이 모두 힘을 보탰다. 히라노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아들이 댐 반대운동을 이어갔다. 1950년대 댐 건설 계획이 무산된 뒤 1960년대 도로 건설 계획이 시작되자 손자인 히라노 야스가 도로건설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1971년 결국 일본 정부는 공사 중지를 발표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오제국립공원이지만 1년 중 탐방이 가능한 기간은 4월 말부터 10월 말 사이 6개월뿐이다. 겨울이 빨리 오고, 늦게 물러가는 탓에 10월 말에서 4월 사이에는 눈과 얼음으로 탐방이 중단된다. 오제를 찾았던 지난 10월26일은 오제 내의 산장들 중 일부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산장 관계자들은 26일은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지만 25일만 해도 얼음이 얼어서 목조데크 위를 걷는 것이 위험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히라노 조조가 이곳에 처음 산장을 짓고, 댐 반대운동을 벌였던 때만 해도 사람이 다닐 만한 도로도 없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험난한 환경이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오제를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아니었다면 혼자 산장을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환경단체들이 지난 1일 영주댐에서 발견한 누수 현상과 이로 인한 균열로 의심되는 흔적.<br />내성천의친구들 제공

환경단체들이 지난 1일 영주댐에서 발견한 누수 현상과 이로 인한 균열로 의심되는 흔적.
내성천의친구들 제공

험난한 환경 속에서 벌인 댐 반대운동이 사회적인 공감을 얻으면서 오제습원은 1934년 닛코국립공원의 일부로서 국립공원에 처음 편입됐고, 1956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2005년에는 람사르협약에 따른 람사르습지로도 등재됐다. 현재처럼 별도의 국립공원이 된 것은 2007년이다. 이제는 옛날 노래가 되어버렸지만 1949년에 발표된 ‘여름날의 추억’이라는 노래는 “여름이 오면 생각난다, 아득한 오제의 먼 하늘”처럼 오제를 떠오르게 하는 가사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댐이 건설됐다면 수몰된 채 잊혀졌을 오제에 대한 노래가 국민가요가 될 정도였으니 외로이 산장을 지키며 자연보호운동을 벌여온 히라노 일가 3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던 셈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8월 조조산장 직원에게서 일본 지바현에서 방사한 황새가 오제습원을 찾아온 사진을 제보받아 보도하기도 했다. 황새가 1600m가 넘는 고산 습원까지 찾아온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댐이 건설됐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조산장을 4대째 지키고 있는 히라노 다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오제에 대한 다양한 개발 얘기가 나왔었지만 이젠 개발이라는 말을 아예 꺼내기조차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댐 건설계획이 무산된 후 도로 건설이 추진됐을 때도 지역 여론이 찬반으로 갈렸지만 역시 자연보호운동을 통해 막아냈다”며 “이제는 주민들 사이에도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더 낫고, 불필요한 댐을 만드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인식이 퍼져있다”고 소개했다. 애초에 오제에 댐을 지으려 했던 도쿄전력도 현재는 군마현, 니가타현 등과 함께 오제국립공원을 가꾸는 일에 협력하고 있다. 오제국립공원을 찾았던 지난 10월 말에도 도쿄전력 자회사인 오제임업이 목조데크 보수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히라노가 시작한 댐 반대운동은 ‘쓰레기 가지고 돌아가기’ 등 자연보호운동의 확산으로도 연결됐다. 오제국립공원 방문자센터 직원인 우노 쇼타로는 “일본에서 탐방 후 ‘쓰레기 가지고 돌아가기’ 캠페인이 처음 벌어진 곳이 바로 오제”라고 소개했다. 조조산장을 비롯해 오제국립공원 내 숙박시설에서도 쓰레기는 탐방객 본인이 다시 가져가야 하며 샴푸나 비누 등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조조산장의 목욕탕에서는 따뜻한 물도 1인당 세 바가지만 사용하도록 정해놓고 있을 정도로 환경훼손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국립공원이 지정되기 전부터 있던 조조산장에 대한 환경오염 지적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물이 풍부한 산간지역 곳곳에 댐을 지으려는 계획이 추진되는 것은 일본만의 일은 아니다. 1977년 지정된 한국의 첫 국립공원 지리산에서도 수년째 댐 건설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모래강 내성천에는 지난 10월 주민·환경단체의 끈질긴 반대운동을 무시한 채 영주댐이 완공돼 담수를 시작한 상태다. 특히 영주댐엔 최근 누수가 발생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환경단체 ‘내성천의 친구들’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영주댐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균열이 일어난 장면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예산 낭비와 자연 훼손 우려로 반대가 극심했던 경북 영양의 영양댐은 국토교통부가 지난 11월 포기를 선언하면서 무산됐지만 국내에서 영양댐처럼 개발에 맞서 자연을 지켜낼 수 있었던 사례는 아직까지 많지 않다. 오창길 소장은 “히라노 일가 3대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오제습원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곳인지를 알려줬다”며 “국내에서도 댐 건설로 인한 편익과 자연보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와 반성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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