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윤석열 공약 ‘설악산 케이블카’ 조건부 동의

김기범 기자    강한들 기자

과학적·사회적 불가 판정에도

윤 대통령 공약에 ‘판정 무시’

설악산조차 난개발 대상으로

양양군, 사업비 조달 ‘물음표’

설악산 케이블카.

설악산 케이블카.

환경부가 지나친 환경 훼손 논란으로 사회적 갈등이 돼 온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허가 판정을 내렸다. 4년 전 사업을 불허할 때보다 환경 훼손 정도가 심해진 사업계획을 허가하면서 환경단체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국립공원, 백두대간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으로 겹겹이 보호되고 있던 설악산조차 개발 대상이 되면서 국립공원 전역에서 난개발 광풍이 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27일 오전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오색삭도(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검토한 결과 ‘조건부 협의(조건부 동의)’ 의견을 통보했다고 이날 밝혔다. 원주청은 양양군이 지난해 12월28일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에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한 저감 방안 등이 제시돼 있다”며 조건부 동의 의견을 통보한 이유를 설명했다. 환경부가 제시한 조건은 산양 등 법정보호종에 대한 공사 전·중·후의 모니터링을 통해 상황별 저감 대책을 시행할 것과 사업 시행으로 인한 자연생태 영향 및 지형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상부 정류장의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 등이다. 이 밖에 주요 시설물의 규모·형태·색상·배치 등은 주변 자연생태 경관과 조화를 이루어 계획하고, 풍속이나 적설 등 설악산의 기상 상황을 고려해 시설물에 대한 강화된 설계기준을 적용해서 설계·시공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강원 양양군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훼손 위기에 놓인 설악산 내 사업 예정지 모습.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제공.

그러나 환경영향평가서 검토를 맡은 전문검토기관들이 모두 불가, 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음에도 환경부가 사업을 허가했다는 점에서 환경단체들의 반발은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19년 환경부가 부동의로 사업 불허했을 때보다 사업계획에 설악산을 더 훼손하는 내용이 담겨있음에도 환경부가 무리하게 사업을 허가했다는 것도 비판을 키우는 부분이다. 환경단체들이 법적 수단도 강구할 것으로 예상돼 케이블카를 둘러싼 갈등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오색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서 검토 전문기관 의견서를 보면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큰 케이블카 설치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명시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환경연구원이 제출한 “입지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입지 부적정을 이유로 부동의한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결정한 것에 따라 이번 협의 의견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원주청은 2019년 입지 부적정 등을 사유로 양양군에 ‘부동의’ 협의의견을 통보했다. 당시 양양군은 중앙행정심판위에 ‘부동의 처분 취소심판’을 제기했으며 중앙행정심판위는 “국립공원위원회 공원계획변경 단계에서 자연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입지 타당성을 검토한 사항을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2016년 5월 9일 녹색연합이 설악산 오색지구~끝청봉 구간에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멸종위기 산양의 모습. 환경부 내부 자료와 환경단체 조사, 케이블카 추진 측인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 조사는 모두 이 지역이 산양의 핵심 서식지임을 나타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2016년 5월 9일 녹색연합이 설악산 오색지구~끝청봉 구간에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멸종위기 산양의 모습. 환경부 내부 자료와 환경단체 조사, 케이블카 추진 측인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 조사는 모두 이 지역이 산양의 핵심 서식지임을 나타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이번 환경영향평가 통보로 설악산의 신규 케이블카 설치사업은 7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전망이 나온다. 남은 절차는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 등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예산은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데 5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경우 정부의 투자사업 심사를 통해 경제성 등을 검증받아야 한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사업은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혁균형발전특위가 선정한 강원도 15대 정책과제 중 하나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환경부가 사업자인 양양군에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해 주면서 이미 기존에 전국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추진되던 다른 케이블카 사업들도 더 활기를 띠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다수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겹겹이 보호받던 설악산조차 케이블카 설치 가능성이 커진 상황임을 감안하면 전국 어느 곳도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는 전 국토의 1.65%에 불과한 국립공원 공원자연보존지구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백두대간 보호지역 핵심구역, 천연보호구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등 여러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마무리됐지만, 사업자인 양양군이 사업 예산을 조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2015년 양양군의 사업계획에서 케이블카 설치에 필요한 예산은 587억원 정도였으나 현재는 물가 상승과 원자잿값 인상 등으로 1000억원을 넘어선 상태다.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은 양양군이나 강원도가 자체 조달하기는 불가능한 금액이지만 양양군과 강원도는 국비 없이 자체적으로 사업비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들 지자체가 사업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해도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신규 투자사업은 정부로부터 경제성(BC) 검증을 받아야 한다.

1000억원대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다른 사업과의 기회비용 논란도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1000억원의 예산이면 강원도민이나 양양군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업들 다수를 추진할 수 있는데 그 예산을 케이블카에 쏟아부어야 하냐는 것이다. 또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면 양양군이 아닌 강원도 내 더 소외된 지역이면서도 바다 조망도 가능한 고성군 등에 만드는 것이 더 경제성도 높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강원행동, 케이블카반대설악권주민대책위 등 환경단체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설악산 케이블카를 허가한 환경부에 대해 “더 이상 정부조직으로서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환경부는) 설악산을 그대로 두라는 국민의 바람과 전문기관의 거듭된 부정 평가는 무시한 채, 설악산케이블카를 무조건 추진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하명만을 받들었다”며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설악산을 제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환경단체들은 “환경부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국립공원을 팔아넘긴 파렴치한 집단이고, 역대 가장 무능한 환경부”라며 “특히 한화진 장관은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무시하고 사업을 허가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을 대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한 만큼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환경부에게 더 이상 국립공원의 내일을 맡길 수 없다”며 “강력한 저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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