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책 변호사 “보수·진보가 뭔지 제대로 알면, 정치도 예능처럼 재밌어져”

글 박경은·사진 이석우 기자

시사예능 ‘썰전’으로 주목받는 전원책 변호사

전원책 변호사는 그동안 많은 유행어를 만들었다. <썰전>을 통해서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올 단두대’를 유행시켰다. 오랫동안 정치토론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전거성’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측한 것이 대부분 맞아떨어지면서 ‘전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전원책 변호사는 그동안 많은 유행어를 만들었다. <썰전>을 통해서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올 단두대’를 유행시켰다. 오랫동안 정치토론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전거성’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예측한 것이 대부분 맞아떨어지면서 ‘전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인터뷰를 요청한 뒤 한 달 만에, 그것도 휴일인 토요일에야 전원책 변호사(62)를 만날 수 있었다. 발언 한마디까지 온라인 연예뉴스 코너에 실시간 소개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의 주인공이 된 그는 시사예능 <썰전>(JTBC)을 통해 정치평론을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지난달 30일 서초동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그날 밤까지 보내야 할 2종의 원고 작업에 틈틈이 걸려오는 전화업무, 출연요청 프로그램 기획안 검토 등 일에 파묻혀 있었다.

▲ ‘썰전’서 유시민과 찰떡 케미
유 전 장관은 ‘적진’에 있지만 한 단어만으로도 알아들을 만큼 호흡 잘 맞으니 토론이 즐거워

▲ 변호사는 생업, 본업은 시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2권 내
요즘 걸그룹 내세운 코리안 컬쳐…이게 무슨 창조경제인가 ‘답답’

▲ 첫 TV토론 프로 출연은 1992년
해박한 지식·거침없는 언변, 보수 논객으로 이름 알리기 시작…지금도 ‘전원책 어록’ 회자돼

▲ 현실 정치에 참여할 생각은
정치 바꾸려면 대중이 바뀌어야…외곽에서 평론하고 조언함으로써 이념의 대중화에 기여할 것

- 너무 바쁘시다. 이러다 ‘전거성’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예전과 비교해 일정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체력이 좀 달린다. 요사이는 몸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자책감도 많이 든다. 때가 되어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배고파야 먹는 습관 때문에 식사시간이 많이 불규칙한 게 원인인 것 같다. 체력이 떨어지니 두뇌적 순발력도 떨어지고 알던 내용이나 봤던 것들도 잘 잊어버린다.”

- 정치평론 프로그램이 이렇게 인기를 얻은 적은 없다.

전원책 변호사 “보수·진보가 뭔지 제대로 알면, 정치도 예능처럼 재밌어져”

“아마도 예능 형식을 차용해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다른 시각을 가진 토론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원인을 살피고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그 이면엔 충분한 정책분석이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다. 종편이 생기면서 정치와 관련한 비평 프로그램이 많아졌지만 정책분석 없이 정략분석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의 프로그램은 정치평론이 아니라 관전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 유시민 전 장관과의 ‘케미’(서로 호흡이 잘 맞고 어울리는 정도)도 화제가 됐다.

“예전부터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는 있었다. 손석희씨가 사회를 보고 나랑 유시민 전 장관이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는. 지난해부터 몇 차례 <썰전> 출연 요청을 받았으나 고사하다가 올 초 유 전 장관이 함께하지 않겠냐고 제의해 결심했다. 소위 ‘적진’에 있는 인물이지만 그와의 대화와 토론은 즐겁다. 서로 비슷한 책을 거의 읽었기 때문에 한 단어만 이야기해도 그 배경과 방향, 의도를 안다. 예전엔 서로 대화하면 ‘언중유골’의 긴장감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예능이다보니 서로 쉽게 받아주면서 호흡이 제대로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 그런 호흡 때문인지 정치평론을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확장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원책 변호사 “보수·진보가 뭔지 제대로 알면, 정치도 예능처럼 재밌어져”

“20세기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고 난 뒤 세계적으로 정치가 대중화됐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념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주의가 뭔지, 자유주의나 진보주의가 뭔지 제대로 모른다는 거다. 정치인도, 일반인도,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념이 대중화되지 않으면 정치가 엄숙해지고 권력을 무서워하는 사회가 된다. 그러니 우리 정치판엔 유머도 없다. 그나마 난 이 프로그램이 이념의 대중화에 조금은 기여한 것 같다고 본다.”

- 우리 사회는 왜 이념의 대중화가 안되어 있는 건가.

“서구는 200~300년 넘는 민주주의 역사를 갖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기요틴(단두대)에서 죽었고 피를 흘리면서 그 역사를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누가 강제해서 만들지 못한다. 지금의 이 혼란상도 어쨌든 한번은 경험하고 지나가야 할 과정들이다. 그런데 위정자들의 잘못 때문에 우리 사회에선 그 과정이 너무 더디다. 공자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하지 않았나. 아마도 현재의 20~30대가 이 사회의 주축이 되는 30년 후에는 훨씬 나아지리라고 본다. 그때가 되면 정치의 영역 자체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그는 변호사인 동시에 시인이다. 자신의 본업이 시인이고 변호사는 생업이라고 소개할 만큼 시작에 애착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77년 한국문학신인상을 수상했고 1990년엔 신춘문예로 등단해 2권의 시집을 냈다.

- 요즘은 시를 안 쓰나.

전원책 변호사 “보수·진보가 뭔지 제대로 알면, 정치도 예능처럼 재밌어져”

“마지막으로 쓴 지 3년은 된 것 같다. 안 그래도 그동안 써놓은 것들 중에 추려서 시선집을 내자고 하는데 꾀가 나서 그런지 그 작업이 귀찮다. 한창 시를 쓸 때는 문예진흥원에서 선정한 올해의 좋은 시에도 내 작품이 꼽혔었고 대학 교과서에 실린 작품도 있다. 얼마전 노량대교를 건너다 트레일러에 얹혀 가는 소나무를 보게 됐다. 문득 시상이 떠오르더라. 원래 가려던 곳도 잊고 한참을 따라가며 초고를 구상했다. 예전 같으면 붙잡고 씨름하며 시를 완성했을 텐데….”

- ‘문학소년’이었을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부산고 시절 문예반장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당시 문학소년의 수준이 아니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백일장에서도 장원을 했다. 그때 교장선생님은 나더러 두 마리 토끼를 좇지 말라고 꾸중하시기도 했다. 당시 문예반장은 서울대 떨어진다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나 역시 그 징크스를 이어갔다. 내가 교지에 실었던 작품을 우연히 보노라면 지금 내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 후배 문인들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것 같다.

“한동안 후배 시인들의 시를 보는 재미가 컸다. 톡톡 튀는 언어 유희도 좋았고 관심을 끄는 친구들도 많았으나 요즘은 발견하기 힘들다. 예전만 해도 시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시와는 상반된 시대다. 시의 반대가 뭐라고 생각하나. 바로 ‘물질’이다. 시는 노래이고 정신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근원적인 질문, 즉 철학에 대한 깊은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 근원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빈약한 것은 우리 문화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대중문화를 보라. 걸그룹, 보이그룹을 앞세워 세계에 나가는 ‘코리안 컬처’가 창조경제인가. 어릴 때부터 정규교육 대신 연예인으로 훈련받는 것이 북한의 교예단과 뭐가 다른가 싶다. 오디션으로 후보자들을 뽑고, 여기에 외국인 멤버들을 섞어서 걸그룹, 보이그룹을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하다.”

- 그런 디테일한 부분을 알고 있다니 좀 의외다.

“내가 국내에서 연예전문 변호사 1호였다. 누가 타이틀을 붙여준 건 아니지만 방송이나 연예계 쪽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 분야에서 많은 일을 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방송사와 연예인 사이에 말도 안되는 불공정 노예계약이 정말 많았다. 지금은 일반화된 표준계약서의 원형과 틀을 그때 만들었다. 얼마전 서점에서 엔터테인먼트 법학이라는 책을 봤는데 당시 내가 맡았던 사건이 판례로 네댓 건 수록돼 있더라.”

변호사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그가 처음으로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1992년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이었다. 이후 그는 150여차례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논리, 거침없는 언변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느냐” “국가가 왜 흡연자에게 삥을 뜯느냐”는 등 토론 도중 그가 했던 말들은 ‘전원책 어록’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 진보 진영에서도 호감을 얻는 보수 논객, 혹은 진짜 보수 등으로 평가된다.

“글쎄, 난 적이 많은 편이다. 내 주장을 펼치는 형식이 강경하고 호불호가 분명하다. 강경보수라고 날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 아마도 보수든 진보든 자신의 틀을 벗어나 정략적인 발언을 하는 데 대해 심하게 비판하고 강경하게 대응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히려 내용적인 면에서는 신자유주의자의 반대파에 가깝다.”

-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현실 정치의 외곽에서 조언하고 평론하는 나 같은 사람의 역할도 필요할 것 같다. 예전만 해도 우리 미래를 위해서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사이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떻게 정치판을 바꾸겠나. 결국 대중이 바뀌어야 한다. 수준이 높아지는 대중이 있어야 정당도 바뀌고 정치도 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념을 대중화하는 데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 얼마전 출간한 <잡초와 우상>도 그 일환인가.

“우리 정치판에서 정책가 혹은 사상가라고 부를 만한 경륜과 일가를 이룬 사람을 찾기 힘들다. 바람이 있다면 죽기 전에 일가를 이루는 것이다. 이전에 발표한 <자유의 적들> <진실의 적들>과 함께 이번 책까지 3부작을 기획했다. 여기에 앞으로 2권을 더 쓰려고 계획 중이다. 내가 죽은 뒤에도 내 책들이 두고두고 자료로 쓰이고, 후학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번 책에선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울분이 느껴진다.

“정치를 하려면 정말 소명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수억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들을 보면 궁금하다. 권력이 주는 즐거움과 혜택을 알기 때문 아닐까. 관심과 감시를 받는 불편한 자리임을 알면서도 기어이 되려고 하지 않나. 소명의식은 물론이고 병역과 납세 등 공적인 의무를 정말 제대로 다한 사람들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

- 내년에도 우리 국민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된다. 뭘 고민하고 염두에 둬야 할까.

“정치는 미래 세대를 향해야 한다. 특히 우리처럼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은 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의 20~30대를 위한 정치가 자리 잡는다면 미덕이 쌓이면서 국가 발전이 빨라지고 공동체 전체가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어떤가. 미래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선거를 위해 정치를 하고 있지 않나.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신학자 제임스 클라크의 말처럼 말이다.”

인터뷰 내내 정치에서부터 역사, 철학, 법, 영화, 과학 등 전방위에 걸쳐 그는 풍부한 식견을 흥미롭고 유려하게 펼쳐보였다. 오후 4시에 시작한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시간은 오후 8시30분을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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