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촘촘하게 … 머리에 ‘희망’ 심는다

김현정 헬스경향기자

두피 떼어내지 않고 뒤통수 모낭 채취…흉터 없이 자연스러운 헤어라인 연출

“사업이 부도가 났지만 외환위기 때라 모두가 어려울 때였고, 주변에서 많은 격려를 보내주던 상황이라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탈모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건강]굵고 촘촘하게 … 머리에 ‘희망’ 심는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정승원씨(48)는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튼튼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기계공업의 기초인 공작기계를 생산하다보니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소위 잘 나가는 사업가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한보철강 같은 큰 회사가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는 정씨도 별 도리가 없었다. 함께 연쇄부도의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믿었던 직원들까지 노조를 결성하면서 정씨를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

타고난 긍정적 성격 탓에 다시 시작해보고자 애쓰던 중 갑자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잠을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전적인 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30대 후반의 아직 젊은 나이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빠지는 머리의 모양이 앞에서부터 매끈하게 빠지는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잡초 뽑아놓은 것 같이 빠져서 더 속상했습니다.” 의사의 진단 결과 스트레스성 탈모였다.

고심하던 끝에 정씨는 일단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계속 누군가를 만나서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너무 위축되고, 스스로 자신감이 없었다. 머리카락까지 빠지다니, 하늘이 자신을 외면한 것 같았다. “남들이 모두 저만 보는 것 같았습니다. 투자 문제로 누군가를 만나도 제 머리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았어요”라고 당시를 회고하는 정씨의 모습이 애잔하다.

결국 정씨는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낙향했다. 소소하게 농사를 짓기는 했으나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10여년간 보내야 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탈모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포헤어모발이식센터에서 모발이식수술을 받고 새 삶과 희망을 찾게 됐다는 정승원씨. 듬성듬성하던 머리가 이제는 숱이 많은 검은 머리카락으로 가득찼다.

포헤어모발이식센터에서 모발이식수술을 받고 새 삶과 희망을 찾게 됐다는 정승원씨. 듬성듬성하던 머리가 이제는 숱이 많은 검은 머리카락으로 가득찼다.

그러던 정씨에게 한 지인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모발이식수술을 받아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정씨는 수술을 결심하고, 지난해 9월 모발이식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압구정동의 포헤어모발이식센터를 찾았다. 정씨가 받은 수술 방법은 CIT(Cole Isolation Technique: 콜 테크닉) 방식의 수술법. 두피를 떼어내지 않고 뒤통수에서 모낭만을 선별 채취해 이마 부위로 옮겨심기 때문에 뒷머리에도 흉터가 남지 않는 방법이었다. 수술 후 빠른 시간 내에 사회 복귀가 가능한 C2G(삭발하지 않는 CIT) 시술도 있었지만, 정씨는 새로운 시작과 각오를 다지며 머리도 완전히 삭발했다.

6시간여 동안 1000모낭이 넘는 모발이식수술이 진행됐다. 이규호 원장과 4명의 의료진들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정씨를 격려했다. 심을 때는 모발의 굵기와 결, 방향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다. 수술을 집도한 포헤어모발이식센터 이규호 원장은 “뒤통수 부분에서 앞머리의 특성과 유사한 모낭만을 티 안나게 채취해 자연스럽고 촘촘한 헤어라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간이 상당히 지체된 후 모발이식을 선택해 뒷머리가 없어 이식수술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정씨의 경우 그래도 뒷머리가 상당수 남아있었기 때문에 수술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원장은 정씨에게 모발이 다시 자라기까지는 2~3개월, 완전히 다시 나기까지는 9~10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니 마음을 푹 놓고 편안하게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정씨는 “그렇지만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더군요. 계속 조바심을 내며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고, 가족들과 이웃들도 이식을 받았는데 왜 머리가 나지 않느냐고 채근했어요”라고 당시의 마음을 전한다. 그 당시의 안절부절 못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러던 중 6개월이 넘어서면서부터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자라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나는 방향이나 굵기 등도 예전과 거의 다르지 않아 손질도 쉽게 할 수 있었다. 11개월이 지난 현재 정씨는 이제 머리카락을 오히려 조금 자르고, 제모를 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될 정도다. 훨씬 젊어지고, 안정된 모습에 만족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긴 것이 기쁘다는 정씨. “사업을 접고 낙향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탈모였는데, 이제 다시 무엇인가를 해봐야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며 “한창 머리가 빠지고, 사회생활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중년인 이 나이에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는 의욕이 내 속에서 꿈틀대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고 행복해한다.

일반적으로 1000모낭 정도 이식하면 그 두 배인 2000개 이상의 머리카락이 새롭게 나게 된다고 한다. 정씨의 머리에 심어진 ‘희망’, ‘꿈’은 그 이상의 배수로 뻥튀기 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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