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빛 풍광에 취하지 마세요, 저 폭포처럼 낙하하고 싶어지면 어떡해요

글·사진 | 최병준 기자

70년대로 떠나는 풍경여행, 연천 재인폭포

휴가철은 끝났고, 아직도 덥고, 그래도 조금 쉬었으면 좋겠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연천 재인폭포같이 ‘빤한’ 여행지가 좋다. 휴가를 다녀왔지만 무더위에 집에 있기 싫다는 사람들도 가볍게 찾을 만하다. 게다가 재인폭포는 앞으로 보기 힘들다. 재인폭포 인근에 한탄강댐을 만들고 있는데, 물이 차면 재인폭포 절반까지 잠긴다. 요즘도 비가 많이 내리면 통제된다. 갈수기엔 출입은 가능하지만 정작 물줄기가 졸아들면 폭포답지 않다.

옥빛 풍광에 취하지 마세요, 저 폭포처럼 낙하하고 싶어지면 어떡해요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연천 재인폭포는 한번쯤은 들어본 관광지지만 정작 요즘 찾는 사람은 드물다. 왜? 거기는 1970년대식 여행지이지 2000년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70~80년대 최고 인기여행지는 제주 정방폭포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 “와!” 하며 사진 한 장 ‘박고’ 왔다. 요즘 여행자들은 너무나 유명한 그런 여행지 대신 올레길, 오름, 생태관광지를 찾는다. 재인폭포도 마찬가지다. 재인폭포는 70~80년대만해도 경기 북부에서 가장 이름난 여행지 중 하나였다. 현지에서 만난 버스기사는 “옛날엔 어디 버스가 비어서 다녔습니까. 만원으로 꽉꽉 찼지요”라고 했다.

재인폭포는 구닥다리 여행지다. 바구니에 통닭과 밥 싸들고 와서 검은색 ‘주부’(튜브)를 타고 물놀이 했던 그런 여행지말이다. 한데 지금은 취사가 금지돼 이런 여행을 할 수 없다. (물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도 시대에 따라 마케팅을 잘 해야 한다. 이를테면 재인폭포와 함께 물놀이장으로 유명했던 한탄강은 캠핑 트레일러가 들어섰다. 70~80년대 캠핑은 ‘돈 없어서 하는 캠핑’이고 요즘 캠핑은 자연을 조금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시설 좋은 콘도를 마다하는 캠핑이다. (텐트가 아니라) UV코팅된 그늘막 한 장이 20만~30만원 정도로 비싸니 캠핑은 ‘장비전쟁’이다. 어쨌든 한탄강이 물놀이장에서 캠핑장으로, 또 구석기축제장으로 교육여행지로 변신에 성공하면서 아직도 ‘가볼만한’ 여행지로 인식된다. 정작 연천의 대표여행지였던 재인폭포는? 옛날 그대로다.

그렇다면 재인폭포는 뭐가 좋은가? 70년대 여행지들은 경관이 뛰어났다. 과거의 여행지에 대한 거의 유일한 기준은 풍경이었다. 당시엔 생태여행이니, 학습여행이니 그런 것까지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 산수 좋은 곳, 즉 풍광 좋은 데가 으뜸이었다. 재인폭포도 그렇다. 주변 시설은 허름하다. 재인폭포 관광지 앞에 있는 가게도 초라하다. 섀시문을 빼고는 70~80년대 가게다. 가겟집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이스께끼’를 하나씩 빨고 있고, 연천과 재인폭포를 오가는 버스 시간표가 적힌 나무판이 걸려있었다. (아래 사진)

“한탄강 댐 들어서면 이사가야 해요. 옛날엔 장사가 잘됐는데 요즘은 그래요. 댐 만들지 말자고 소송했는데 주민들이 졌어요.”

가겟집 아낙은 재인폭포가 옛날처럼 못하다고 했다.

철책문을 지나서 울퉁불퉁 길이 파인 비포장길에 들어서야 재인폭포 주차장이 나온다. 편편한 주차장 끝머리에 계단이 있고 내려가면 재인폭포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는 20년 이상 된 듯하고, 녹도 슬어있다. 계곡 귀퉁이 팔각정도 단장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듯 허름했다. 여기가 여행지가 맞나 할지 모르지만 막상 폭포 하나는 장관이다. 단 조건이 있다. 비가 온 뒤 2~3일 있다 가야 한다. 수량이 너무 많으면 통제될 거고, 너무 적으면 폭포가 말라붙기 때문이다. 폭포앞 연못의 물빛도 연녹색이다. 주변은 엉망이지만 때만 잘 맞춰가면 폭포는 장관이다. 폭포가 떨어지는 연못은 반지름이 20m 정도(수량에 따라 다르다. 겨울엔 아예 말라붙기도 한다.)로 크지 않지만 물빛 하나는 일품이다. 높이는 18.5m다. 하류에선 할머니들이 발 담그고 놀고 있고 젊은 연인들도 보였다.

옥빛 풍광에 취하지 마세요, 저 폭포처럼 낙하하고 싶어지면 어떡해요

재인폭포에 얽힌 스토리도 음악으로 치면 신파조의 트로트를 연상시킨다. 재인(才人)이란 줄타기 명수를 뜻한다. 재인의 아름다운 부인에 반한 고을 원님이 폭포에 줄을 매달아놓고 재인에게 줄놀이를 시켰다. 재인이 줄을 탈 때 줄을 끊어 재인을 죽이고 부인에게 수청을 들라했다.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문 뒤 폭포로 몸을 던져 자결했다. 부인의 이름이 코문이(코를 문 이), 마을 이름은 코문리였는데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고문리(古文里)가 됐다. 경기도 연천판 춘향전이다.

재인폭포가 한물간 여행지라고 70년대식으로 놀 수는 없는 노릇. 재인폭포는 환경이나 지질학적인 학습여행지로 찾아가면 좋다. 일단 지형을 눈여겨보자. 재인폭포 지형은 한탄강과 비슷하다. 산과 산 사이로 계곡이 생기고 강줄기가 휘돌아가는 게 아니라 땅이 꺼진 곳으로 물이 흐르는 한탄강과 비슷하게 생겼다. 재인폭포와 비슷하게 생긴 포천의 비둘기낭도 똑같은 지형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추가령구조곡이다.

재인폭포 주변의 기암은 주상절리다. 용암이 식는 과정에서 생긴 6각형 모양의 형태는 과거 화산 분출의 흔적이다. 시각을 달리하면 70년대 여행지가 아니라 학습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있는 구석기 유적지도 찾아볼 수 있다. 1978년 한탄강변을 찾은 미군병사가 돌조각을 발견했는데 이게 구석기 돌도끼로 판명되면서 한반도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①주먹도끼 ②주상절리 ③추가령구조곡만 좀 챙겨보자고 하면 된다. 디카족에게도 좋다. 물빛이 특이해서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폭포 앞은 시원할 것이라는 편견은 옳지 않다. 습한 곳은 덥다. 발을 담그고 쉴 수는 있지만 ‘시원한 여행지’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환경운동연합은 한탄강댐에 물이 차면 폭포 절반까지 잠길 것이라고 했다. 비 많이 오면 못보고, 비 안오면 폭포답지 않고…. 재인폭포는 앞으로 운좋아야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귀한 여행지로 대접받을지 모른다. 함부로 갈 수 없다면 더 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니까 말이다.

▲ 여행길잡이

*재인폭포는 연천군 바로 못미처에 있다. 경기북부에서는 자유로를 타고 문산에서 빠져 전곡방향으로 달리면 된다. 연천까지 계속 달리면 연천읍내 못미처 오른쪽으로 재인폭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서울 동부권에서는 의정부를 거쳐 연천방향으로 가면 된다. 서울외곽순환도로 송추IC에서 빠져도 된다. 의정부를 지나 3번국도를 타면 된다.

*수량이 늘어나면 재인폭포가 통제된다. 연천군 문화관광과(031-839-2065)에 출입여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 현지에는 안내소가 없다. 입장료, 주차료는 따로 없었다.

*식당이 많지 않은 것이 흠이다. 재인폭포 앞엔 허름한 가게만 두개 있다. 연천읍내의 식당도 고만고만하다. 재인폭포 인근보다는 한탄강 유원지에서 차로 15분 거리인 망향비빔국수(031-835-3575)가 좋다. 비빔국수는 4000원, 곱빼기는 5000원. 아기국수는 안 맵다. 1000원. 신용카드는 안 받으며 선불이다. 이정표가 없는 시골길이라 내비게이션 없이는 찾기 힘들다.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231-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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