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죽었어요. 살려주세요”...화재 전소 청주 소나무작은도서관 한달 넘도록 복구 막막

이삭 기자
박혜진 소나무지역아동센터장이 지난달 화재로 전소된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소나무작은도서관 내부를 19일 둘러보고 있다. 이삭 기자.

박혜진 소나무지역아동센터장이 지난달 화재로 전소된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소나무작은도서관 내부를 19일 둘러보고 있다. 이삭 기자.

지난 19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소나무작은도서관(작은도서관). 지난해 12월9일 오전 11시24분쯤 발생한 화재로 불에 타 버린 이곳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적막감이 맴돌았다. 화재 진화를 위해 강제로 뜯겨져 휘어진 출입문은 화재 당시 긴박한 상황을 말해주는 듯 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곳곳에 그을음이 가득했다. 벽면 스위치 부분에서 시작된 불은 20여분 만에 이곳을 집어삼켰다.

“한달여 전만 해도 아이들이 뛰어놀며 공부하던 곳인데….” 화재 현장을 둘러보던 박혜진 소나무지역아동센터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센터장이 이 도서관을 만든 것은 2017년이다. 소나무지역아동센터(지역아동센터)와 35m정도 떨어진 건물 3층에 있는 116㎡ 크기의 가정집을 도서관으로 꾸몄다. 거실은 아이들이 보드게임과 운동을 즐기는 스포츠교실로, 방 4곳은 영어교실, 미술교실, 인문학교실, 서재 등으로 변신했다. 박 센터장은 이곳을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활용해 왔다. 박 센터장은 대학교 시간강사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을 작은도서관 운영비로 충당해 왔다.

박 센터장은 “빈부격차 없이 모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작은 꿈을 품고서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며 “덕분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 공부하거나 교육을 받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에는 한부모, 차상위계층, 맞벌이 가정 자녀 29명이 돌봄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화재 전까지만해도 작은도서관에서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실내 스포츠,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수업을 받아왔다. 아이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체험교실도 진행됐다. 아이들의 시화전과 공예작품 전시회도 열렸다. 시인, 수필가, 작가 등 10여명이 모여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지역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화재는 이곳에 있던 5000여권의 책과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작품, 악기 등을 모두 까맣게 태워버렸다.

박 센터장은 “취약계층 아이들이 집에서 끼니를 거르지 않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수업에 공을 들였다”며 “도서관은 아이들의 공부방이자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는 소중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소나무작은도서관 화재로 전소되면서 지난 19일 소나무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센터에서 비좁게 수업을 받고 있다. 소나무지역아동센터 제공.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소나무작은도서관 화재로 전소되면서 지난 19일 소나무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센터에서 비좁게 수업을 받고 있다. 소나무지역아동센터 제공.

화재로 작은도서관 66㎡가 불에 타고 2800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작은도서관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들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도서관이 죽었어요”라며 안타까워 했다.

A군(11)은 “도서관에서 보드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공부를 했었다”며 “도서관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B군(13)도 “그림 수업때 선생님 초상화를 그려 도서관에 뒀는데 불이 나 다신 그림을 볼 수 없게됐다”며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인데 불에 타 속상하다. 다시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은도서관을 복구하는 데에는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책과 각종 집기 등이 온통 잿더미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치우는데만 1000만원이 넘게 쓰였다. 화재 후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그을음이 가득한 내부를 청소하고 도서관을 재개관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은도서관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데에는 7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 센터장의 의견이다.

현재 작은도서관은 검게 그을린 상태로 남아있다. 돌봄을 받고 있는 29명의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박 센터장은 “밀집된 곳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코로나19 확산우려가 있어 일부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밖에서 운동수업을 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작은도서관의 재개관을 위해 지역사회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충북보건과학대 총학생회는 재학생과 교직원들을 상대로 바자회를 열어 105만원 정도의 성금을 모아 박 센터장에게 전달했다. 이 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매년 소나무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김준성 충북보건과학대 총학생회장은 “작은도서관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바자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청주시새마을회도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

박 센터장은 “여러곳에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라며 “공사가 지연될수록 도서관 재개관도 늦어져 아쉬운 상황이다. 아이들이 빨리 예전처럼 도서관에서 공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