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떠밀려 ‘맞불 집회’ 나온 대우조선 노동자 “부끄럽고 미안하다”

김현수 기자    권기정 기자

노동자들, 사측 ‘맞불 농성’ 독려 탓 시위 동참

협력업체, ‘인간 손잡기’ 참여 메시지 보내기도

“윤 대통령 ‘공권력 투입’ 발언, 노노갈등 키워”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의 인간 손잡기 행사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 인간 손잡기 행사는 하청노조의 파업중단을 요구하는 반대 집회다.  A코드는 정상 근무인 8시간을 뜻하고, B코드는 정상 근무에 1시간30분의 추가 근무를 의미한다. 김현수 기자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의 인간 손잡기 행사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 인간 손잡기 행사는 하청노조의 파업중단을 요구하는 반대 집회다. A코드는 정상 근무인 8시간을 뜻하고, B코드는 정상 근무에 1시간30분의 추가 근무를 의미한다. 김현수 기자

“하청노동자가 오히려 나쁜 놈이 됐지. 비겁한 거야 우리는...”

지난 19일 오후 10시쯤 경남 거제시 아주동 식당 골목의 한 술집. 이곳에서 만난 대우조선해양의 노동자 A씨는 소주 한잔에 부끄러움을 털어냈다. 술기운에 불콰해진 얼굴에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움이 배어있었다.

50대인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대우조선해양과 함께했다. 6~7년 전 조선업 불황을 맞이한 때도 임금을 삭감해가며 거제도에 남았다. 한국을 조선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거제도에 남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1독(선박 건조 공간)에서 농성을 벌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에 ‘불법 집회를 중단하라’고 외치며 맞불 집회에 동참했다. 이유를 묻자 “같은 협력업체 직원이었지만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회사 분위기 때문이었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A씨는 “힘들고 위험한 조선소 일을 해가며 한 달에 손에 쥐는 게 300만원 안팎이다. 그런데 강성귀족 노조란다. 기가 찰 노릇”이라고 혀를 찼다. 이어 “가정이 있다는 핑계로 (파업에) 동참은 못 했어도 돌은 던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하자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동료 4명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지난 14일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과 가족, 거제시민 등 4000여명은 “120명이 10만명의 생계를 막고 있다”며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인간 손잡기’ 행사를 벌였다. 인간 띠는 회사 정문부터 남문, 서문을 이어 옥포매립지 오션플라자까지 약 3.5㎞ 구간에 이어졌다.

40대 B씨도 파업을 벌이고 있는 하청업체 노조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는 “파업에 동참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왜 모르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우조선이 힘들 때 끝까지 남아서 조선업을 지탱했던 하청일꾼들을 불법집회를 벌이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일부 언론에 실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직접 나와서 조선업의 실상을 파악했으면, 한 번이라도 노동자 이야기를 들어 봤다면 나올 수 없는 기사”라며 “원청직원이라고 해봐야 얼마 안 되는데 4000~5000명이 거리에 나와서 시위하느냐. 다들 회사 측에서 시위에 나가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선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중인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이 철구조물 안에서 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거제 | 이준헌 기자

지난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중인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이 철구조물 안에서 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거제 | 이준헌 기자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는 인간 손잡기 행사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는 오후 5시30분부터 오후 6시10분까지 행사에 참여하면 B코드를 인정해주겠다는 내용이다. A코드는 정상 근무인 8시간을 뜻한다. B코드는 정상 근무에 1시간30분의 추가 근무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노동자인 30대 C씨는 “집회 참석인원도 확인하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시간제나 일당제로 일하는 상황에서 괜히 찍혀서 일감을 안 줄까 겁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권력 투입과 관련된 발언에 서운한 감정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와 관련된 질문에 “불법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더이상 국민들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사를 불문하고 산업 현장에서 법치주의는 엄정하게 확립돼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조선업 하청노동자의 처우가 열악해 인력난에 허덕인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며 “대통령이 중재 역할을 해야지 공권력 투입 가능성만 내비치며 노동자를 압박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회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는 멀리하고 ‘법치’만 외치는 모습은 대통령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우조선 문제는 사내하청의 문제고 위험을 외주화하고 비용을 외주화한 구조의 문제”라며 “그런 문제를 풀어야 할 게 정치 영역”이라며 “정치로 문제를 풀라고 대통령이 됐는데 법에 따라 하겠다 하면 검찰총장을 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1000여명이 참여한 카카오톡 ‘대우조선해양을 지키는 모임’ 오픈채팅방. 대우조선해양 직원으로 추정되는 불특정다수인들이 하청노조원을 ‘하퀴벌레’라고 표현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갈무리

1000여명이 참여한 카카오톡 ‘대우조선해양을 지키는 모임’ 오픈채팅방. 대우조선해양 직원으로 추정되는 불특정다수인들이 하청노조원을 ‘하퀴벌레’라고 표현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갈무리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노노갈등만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하청노조를 처리해야 할 범죄조직으로 규정해 노동자 간 갈등만 키운다는 것이다.

한편 1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톡 ‘대우조선해양을 지키는 모임’에는 대우조선해양 직원으로 추정되는 불특정 다수인들이 하청노조원을 ‘하퀴벌레’(하청업체와 바퀴벌레의 합성어)라고 부르며 박멸할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노조 지회장은 “조선업을 떠받치는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거제도를 떠나는 노동자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거제도에서 배를 만들며 살고 싶은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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