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못하는 구천면로에 벽화 대신 ‘오래 머물 거리’를 그리다

류인하 기자

강동구, 3개월간 건물주·점포주·주민 1 대 1로 만나 설득

하수관·간판 교체와 청년·저소득층 시설 ‘도시재생 실험’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에 위치한 상가건물 외부환경개선작업 전(위 사진)과 후. 건물 외벽을 도색하고 1층 상가 간판 등을 교체했다.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에 위치한 상가건물 외부환경개선작업 전(위 사진)과 후. 건물 외벽을 도색하고 1층 상가 간판 등을 교체했다.

개발에서 제외된 구도심의 운명은 대부분 뻔하다. 각종 도시계획과 입주민 간 이해관계에 묶여 리모델링조차 어려운 구도심 건물들은 점차 제 기능을 잃고 사람이 찾지 않는 곳으로 변한다. 비교적 규제가 덜한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고, 새로운 상권은 그곳에 형성된다.

서울 강동구의 대표적인 구도심은 구천면로다. 지하철 5호선 명일역~천호초등학교 사거리로 이어지는 1㎞ 길이인 구천면로는 한때 강동구의 중심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광주·이천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산의 국도 1호선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명일역 3·4번 출구에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섰지만, 1번 출구로 이어지는 구천면로는 낡고 오래된 건물과 다세대주택만 즐비하다.

구천면로는 재개발·재건축이 불가능하다. 양방향 2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2~3층 상가들은 대부분 ‘도시계획선’에 물려 있다. 건물을 증축하고 싶어도 도시계획선에 물린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만 증축해야 하는데, 소형 상가건물이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용적률도 200%밖에 되지 않아 재건축을 해도 최대 3~4층 높이밖에 지을 수 없다. 상당수가 70~80대인 건물주들 역시 “그냥 이대로 살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활기를 잃어가던 이곳에 강동구가 최근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414억2000만원에 달하는 사업비 전액을 구비로 투입해 강동구만의 도시재생을 시작한 것이다.

무허가 건물이 있던 곳(위 사진)을 철거하고 마을공원으로 조성했다.  강동구 제공·류인하 기자

무허가 건물이 있던 곳(위 사진)을 철거하고 마을공원으로 조성했다. 강동구 제공·류인하 기자

김종건 강동구청 도시경관추진단장은 “박물관이나 공예관 하나 지어놓고 벽화만 그리는 그런 도시재생이 아니라, 주민들이 오래도록 살고 싶고 외부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5일 밝혔다.

강동구는 주민들에게 도시재생을 하는 이유와 이후 달라질 주변환경 등을 설명하는 작업부터 진행했다. 지난 5월부터 건물주와 점포주, 일반주민 총 6021가구를 대상으로 일대일 방문면담을 시작했다. 그 결과 건물주 89명 중 28명을 만났고, 점포주는 287명 중 272명(95%)을 만났다. 구천면로 반경 300m 이내 주민들에게는 다세대주택 호별로 안내문을 배부했다.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하수관로와 간판 교체작업을 본격 시행하면서였다. 강동구는 지난 5~11월 보도 지하로에 깔려 있던 오래된 U자형 하수관로를 모두 파내고 O자형 최신 하수관으로 교체했다. 건물 외벽과 간판에 대한 교체작업도 해나갔다.

처음에는 ‘그런 것 필요없다’고 하던 건물주와 점포주들도 하나둘 마음을 바꿔 교체를 요청했다. 밤이 되면 어둡고 무섭다는 주민 의견에 따라 가로등과 공공 와이파이, 폐쇄회로(CC)TV 등의 기능이 담긴 스마트폴을 동네 곳곳에 설치했다.

최근 구천면로에 문을 연 어린이식당. 내년 1월 본격 운영을 앞두고 현재 시범운영 중이다. 류인하 기자

최근 구천면로에 문을 연 어린이식당. 내년 1월 본격 운영을 앞두고 현재 시범운영 중이다. 류인하 기자

마을 거점시설도 7곳 조성했다. 요식업자를 위한 공유주방을 비롯해 뜨게공방(생활예술 공동공간), 디자인랩, 댄스연습실 등이다. 한 건물에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식당과 북카페를 함께 조성했다.

김 단장은 “이 일대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하고,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어 저소득 맞벌이 가구와 청년 1인 가구 비율이 높다”며 “청년들과 저소득 맞벌이 가정 자녀들을 위한 시설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강동구는 한 상가동을 통째로 사들여 ‘천호아우름센터’를 열었다. 1층에는 정신건강상담과 장애인 재활치료 등을 받을 수 있는 천호보건지소가, 2층에는 1인 가구 지원센터가 들어섰다. 1인 가구를 위한 코인세탁소와 요리작업실 등도 있다.

내년 2월부터는 전신주 이설작업도 진행된다. 길 한복판에 박혀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했던 전신주 57개와 통신주 5개, 가공배전선도 모두 땅 밑으로 들어간다. 이에 따라 도로 곳곳을 예술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도 착수했다.

김 단장은 “구도심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주민과 함께 관리하고 개발하고 이익도 함께 나누면서 구천면로만의 매력을 만들다 보면 누구나 오고 싶은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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