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난리 겪고도 여전히 ‘이름만 빗물받이’

글·사진 강은·김원진 기자

강남역·신림동 둘러보니

서울 강남구 서울지하철 강남역 일대에 있는 빗물받이에 3일 담배꽁초 수십개가 버려져 있다.

서울 강남구 서울지하철 강남역 일대에 있는 빗물받이에 3일 담배꽁초 수십개가 버려져 있다.

대로변은 태풍 대비해 정비
이면도로 상점가 ‘행정 공백’

수십 곳 꽁초나 덮개로 막혀
시민 동참·근본 대책 필요성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 앞. 지난 3일 밤 도로변을 따라 띄엄띄엄 놓인 벤치에 몇몇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들은 다 태운 담배꽁초를 하나같이 벤치 옆 길가 빗물받이에 버렸다.

빗물받이는 빗물이 하수관으로 빠지도록 거리에 만든 시설이다. 10~30m 간격으로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상습 침수 지역에는 10m 미만 간격으로 설치할 수 있다.

경향신문은 이날 서울 강남역 사거리 일대와 관악구 신림역~도림천 주변 빗물받이 현황을 살펴봤다. 지난달 8일부터 열흘간 수도권에 내린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곳들이다.

3일 관악구 신림동 골목길에 있는 빗물받이들에 덮개(왼쪽)나 쓰레기통 등이 놓여 있다.

3일 관악구 신림동 골목길에 있는 빗물받이들에 덮개(왼쪽)나 쓰레기통 등이 놓여 있다.

서울에는 현재 55만7000여개의 빗물받이가 깔려 있다. 대로변의 빗물받이는 정리가 돼 있었지만, 음식점과 술집 등이 밀집한 이면도로의 빗물받이 상당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5일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이 북상하는 초강력 태풍인 ‘힌남노’의 영향권에 놓일 것으로 예보된 상황이다.

강남역 11번 출구 주변에는 모래주머니 20여개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태풍 힌남노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강남역 대로변 빗물받이도 대부분 정비돼 있었다.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가 적지 않았지만, 빗물받이 바닥에 쌓일 정도는 아니었다. 강남역 사거리 대로변 일대 70여개 빗물받이를 플래시로 비춰보니 바닥에서 지면까지 50㎝가량 되는 깊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달 집중호우로 주민 모두가 대피했던 서초 진흥아파트 인근 빗물받이도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낙엽 조금과 종이 쓰레기 2~3개 정도만 들어있었다. 최근 폭우 당시 지하주차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강남역 A빌딩 앞 빗물받이는 뚜껑이 열려 있었다. 아직도 지하에 호스를 연결해 빗물을 빼내는 중이었다.

신림역~도림천 인근 대로변 빗물받이도 정리돼 있었다. 일부 낙엽과 담배꽁초가 눈에 띄었지만 배수를 방해할 만큼은 아니었다.

이면도로로 들어가자 사정은 달랐다. 음식점·술집이 밀집한 골목에는 자치구의 행정력이 닿지 않았다. 신림역 4번 출구 일대 30여개 빗물받이는 꽁초와 같은 쓰레기로 막혀 있거나 덮개 등이 올려진 채 방치됐다.

밤이 깊을수록 담배를 피는 젊은이가 늘었다. 이들이 지난 곳의 빗물받이에는 담배꽁초와 비닐 등 쓰레기가 어김없이 들어찼다. 오랫동안 모래와 자갈이 퇴적돼 도저히 빗물받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경륜장 인근 건물에서 청소일을 하는 B씨(55)는 “주말에는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너무 많이 버려 싸움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무나 부직포 소재로 된 덮개가 올려진 빗물받이도 이 일대에는 20개가 넘었다. 식당과 바로 인접한 곳이 대부분이다. 인근에서 족발집은 운영하는 C씨는 “날이 더울 때는 하수구 악취가 심해서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다”고 했다.

일부 가게 앞 빗물받이에는 덮개가 두세 겹 쌓여 있었다. 주점 메뉴판이 올려진 입간판과 금연구역 안내판 등이 세워진 곳도 보였다. 도림천변 생선구이 가게 앞에는 빗물받이 위로 240ℓ들이 음식물 쓰레기통 4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 2일 저지대와 침수 취약지역의 하수관로와 빗물받이를 점검하고 준설하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빗물받이 연결관 청소에도 나섰다.

점검을 강화했다지만, 대로변을 벗어나면 여전히 빗물받이가 관리되지 않는 한계가 드러났다. 김병식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기자와 통화하며 “‘내 집 앞 눈 치우기’처럼 시민들이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기후위기 시대인 만큼 잦은 집중호우에 대비해 빗물받이 크기를 키우고, 빗물받이 외 정책 수단을 조합해 집중호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식 교수는 “빗물받이의 크기를 지금보다 키워야 한다”며 “투수율을 높인 보도블록 설치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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