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 선생님, 근로계약서는 쓰셨나요?”

이성희 기자

서울시 ‘노동법 사각’ 운동트레이너 근로·표준계약서 마련

월 200만원 미만·계약서 작성 없는 프리랜서 고용 개선 기대

시·민간 업체 협약 추진…법적 강제 없는 ‘권고사항’은 한계

운동트레이너 경력 6년 차 이모씨(32)는 과거 2년 넘게 일했던 스포츠센터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에 특정 장소로 출근을 하고 사업주의 업무 지시 및 감독·관리를 받았지만 프리랜서로 계약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탓이다. 같은 처지에 있던 지인은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서울시가 올해 ‘서울형 운동트레이너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서울시는 2021년부터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직종을 발굴해 전국 최초로 표준계약서 개발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앞서 간병인과 플랫폼 방문레슨 종사자, 1인 미디어콘텐츠 창작자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개발했다. 이씨는 표준계약서 도입 소식에 “운동트레이너들이 노동자로 보장받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기본권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며 반겼다.

20일 ‘서울형 표준계약서(운동트레이너) 개발 연구 결과보고서’를 보면, 운동트레이너들은 사실상 노동자처럼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표준계약서 개발을 위해 서울시가 용역을 맡긴 것으로, 지난 4~5월 서울 지역 운동트레이너 1275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도 실시했다.

조사 결과 운동트레이너 고용 및 계약 형태는 프리랜서(위·수탁)가 51.5%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근무시간의 경우 ‘단일 사업장에서 하루 평균 8시간 정기근무를 한다’는 응답이 66.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아예 사업주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사례도 36.9%나 있었다.

근무환경도 열악했다. 월 기본급으로 ‘200만원 미만’을 받는 트레이너가 전체의 47.5% 수준이었다. 이는 8시간 근무 시 최저임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업무 내용도 협의 당시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지도·수업’ 등만을 협의했는데 채용 이후 청소 및 정리정돈과 같은 ‘시설관리’(45.4%)(20.3%) 등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응답자 중 51.5%는 추가 근무 시 시간 외 근무수당이나 대체휴일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씨는 “트레이너가 한 달에 100만원을 받고 수업하면서 전단지나 현수막 등 고객 유치 영업까지 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서울형 운동트레이너 표준계약서는 계약서 작성 필요성을 알리고 종사자와 사업주 인식 개선 및 실질적인 권익 향상을 목표로 개발됐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근로계약용과 프리랜서계약용 등 2종이다.

근로계약용 표준계약서에는 근무시간 및 휴게시간은 물론 담당 업무와 근무 장소, 유급휴일, 급여 및 지급 방법과 시기, 사회보험 적용 및 공제 등도 적도록 했다.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항목도 들어 있다. 사업주가 트레이너의 성명·초상·목소리·이미지·캐릭터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상업적인 이용을 허락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것이다.

프리랜서계약용 표준계약서는 사업주와 트레이너가 대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사업주와 트레이너 지위, 부당한 위탁 취소 및 변경 금지 등과 같은 조항으로 채워져 있다.

이씨는 표준계약서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받으면서 삶의 질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한 스포츠센터에서 처음으로 정규직에 고용돼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를 처음 써봤고, 4대 보험에도 가입했다. 이씨는 “올해 5월 인생 첫 자동차를 구입했다. 연 15% 이상이던 중고차 담보대출 금리가 6%대로 떨어지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표준계약서 활용은 권고사항이라 확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에 서울시는 최근 주요 스포츠센터 민간 사업자 및 협회와 민관 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7개 기관의 서울 내 지점 136곳이 협약에 참여했다. 서울형 트레이너 표준계약서는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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