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위헌’ 결정

급속한 개인주의·성개방으로 인식 변화… ‘존재의 이유’ 상실

곽희양 기자

미혼·이혼인 상대방까지 처벌… “국가형벌권 과잉”

합헌 소수의견 이정미·안창호 “가족공동체 파괴”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의 침해’로 판단한 데에는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배경으로 작동했다.

헌재가 1990년 처음으로 간통죄 위헌 여부를 판단할 때부터 ‘사회 상황과 국민의식의 변화’라는 관점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번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위헌 의견을 낸 박한철·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전통적인 가족구조와 가족구성원의 역할이나 지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급속한 개인주의와 성 개방적 사고가 확산됨에 따라 결혼과 성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다”고 전제했다. 또 “정조의무 보호 못지않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간통죄의 존재 이유도 상실됐다. 1990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이혼 남녀의 차별 없이 재산분할청구권과 자녀에 대한 친권이 보장됐다. 박 재판관 등 5명은 이 같은 변화상을 언급하며 “오늘날 간통죄는 간통행위자 중 극히 일부만 처벌될 뿐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해 그들의 기본권을 제한할 뿐”이라면서 “혼인제도와 정조의무를 보호하기 위한 실효성은 잃게 됐다”고 밝혔다.

존재 이유를 잃은 간통죄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간통을 한 사람의 배우자만 간통죄 고소와 고소 취소를 할 수 있다. 박 재판관 등 5명은 간통죄가 “책임의 정도가 훨씬 큰 배우자의 이혼수단으로 활용되기도, 사회적 명망 있는 사람이나 상간자로부터 재산을 편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간통죄의 형평성에 대한 지적도 있다. 미혼이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이들이 상간자라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은 국가형벌권의 과잉이라는 것이다. 김이수 재판관은 “미혼인 상간자의 행위에 대해선 윤리적 비난이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 추궁을 통해 책임을 묻는 것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며 “형사처벌하는 것은 간통행위 배우자의 복수 감정을 국가가 대신 해소해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밝혔다.

간통죄는 배우자의 사전동의나 사후승낙이 있는 경우 성립하지 않는다. 현재 대법원은 명백한 이혼의 의사가 표출된 경우 간통을 사전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해 강일원 재판관은 “어떤 경우가 이혼의 명백한 의사 합치가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이유와 형태로 이뤄지는 간통에 대해 일률적으로 징역형만 부과하는 것은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을 잃은 것”으로 봤다.

합헌 의견을 낸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시대상의 변화를 다르게 봤다. 이들은 “급속한 개인주의적, 성 개방적 사고방식에 따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남녀의 정절 관념은 전통윤리로서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판단했다.

여성변호사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헌법재판소가 지난 네 차례의 결정과 달리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부응해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보고 존중한다”며 “그러나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불륜을 용인하거나, 부부간의 정조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부부간에 정조의무를 위반한 점에 대하여는 형벌이 아니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할 것이므로, 간통죄 폐지에 따른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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