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참사인가

“죽지 않은 모두가 생존자” 살아남은 자의 ‘이태원 그날’

김희진 기자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놓은 추모 꽃다발이 쌓여 있다. 성동훈 기자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놓은 추모 꽃다발이 쌓여 있다. 성동훈 기자

재난이 특별하지 않다는 감각, 누구라도 그런 장소에 있을 수 있었고 내 옆에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느낌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157명이 숨졌다’는 건조한 문장으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참사 당일 이태원을 찾았던 이은영씨(가명·27)로부터 참사 전후 약 2시간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들었다. 은영씨는 참사 초기부터 골목길 아래쪽에 깔려있다 가까스로 구조된 생존자이다. 춤과 운동을 좋아하는 은영씨는 참사 이틀 전만 해도 겨울에 발레와 피겨를 배우려 했다. 빽빽하게 짜놓은 계획은 참사로 물거품이 돼버렸다. 온전히 회복할 날을 기다리며 재활치료 중인 은영씨는 사람들이 당시 상황을 오해하지 않기를,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멈추기를 바란다며 그날 밤 이야기를 전해줬다.

은영씨는 “그날 이태원에는 누구와 다를 바 없는,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 있었다”며 “안전을 기대했던 곳에서 누구나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태원에 간 저뿐만 아니라 그날 죽지 않은 모든 사람이 생존자”라고 했다. 그날 밤 상황을 은영씨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3년 만에 이태원에 가다

저한테 핼러윈은요, 고등학교 동창끼리 스무 살 때부터 챙겨온 기념일같은 날이에요. 평소 만나기 힘드니까 핼러윈에라도 다 같이 모여 옷을 맞춰 입고 매년 이태원에 갔어요. 코로나로 3년간 안 갔어도 이태원은 익숙했어요. 당연한 마음으로 올해도 그렇게 ‘이태원 가자’ 했던 거죠.

도착한 건 9시 반쯤이요. 항상 그랬듯 사람이 많았죠. 친구들이랑 이태원역 2번 출구 쪽에서 해밀톤호텔 뒷골목 쪽으로 갔어요. 핼러윈 땐 그쪽이 메인거리라서 ‘쭉 다 걷고 가자’는 계획이었어요. 경찰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진 않았어요. ‘예년처럼 싸움 붙거나 사람들 뭉치면 알아서 제지하겠지, 아 사람 많네’ 정도였어요. 사람 많은 곳에 경찰이 있는 건 이태원뿐 아니라 어느 곳이든 당연한 거니까요.

핼러윈 이태원은 늘 사람이 많아도 서로 의상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할 정도 질서는 유지됐어요. 지옥철처럼 번잡해도 걷는 사람들끼리 말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방송도 하고…. 재즈바 ‘올댓재즈’ 쪽부터 메인거리 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원래도 중앙 부분은 항상 떠밀려서 끼어서 가곤 했는데, 올해는 달랐어요.

평소와 다른 이태원, 막차타고 떠나려했다

통제되던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과 인근 도로가 11일부터 해제되어 취재진과 시민들이 길을 지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통제되던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과 인근 도로가 11일부터 해제되어 취재진과 시민들이 길을 지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얼마 걷지 않았는데 길가까지, 심지어 상가 문 앞까지 사람들이 끼어있었어요. 주로 서쪽으로 가는 거리라도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원래는 우측통행을 지켰어요. 언제나. 그건 확실해요. 언제나. 그런데 이날은 막 밀리면서 보니까 우측통행 안 지키면서 틈을 비집고 반대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더 몰리고, 끼이고, 이런 상황이었던 거죠.

저희는 가장 오른쪽 길가에 붙어가고 있었는데 자주 끼이고 눌렸어요. 몇몇 술집에선 문 열고 들어오라고 해줬어요. 잠깐이라도 피해있으라면서요. 저희 말고도 술집으로 피신한 사람이 꽤 많았어요. 길 좀 뚫린다 싶으면 내보내 주고…. 와이키키펍 삼거리에 가까워질 때는 질서가 하나도 안 지켜지는 거예요. 메인거리는 분명 서쪽으로 가는 게 맞는데, 어느 순간 반대로 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막 다들 화내는 분위기였어요. ‘왜 미냐’ ‘밀지 마라’ ‘여기 가는 방향 아니다’ ‘사람 눌린다’ ‘발 깔렸다’….

우여곡절 끝에 삼거리를 지나왔을 때 저희끼리 한숨 쉬면서 얘기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이 방향이 아닌데 사람들이 왜 이러냐, 메인거리 끝까지 못 갈 것 같다고요. 막차도 타야 해서 집에 가기로 했어요. ‘되돌아 10m정도 걸어가면 골목이 나오고, 그쪽으로 나가면 바로 이태원역 1번 출구다. 집에 가자. 지하철 안 끊길까?’ 이러면서 시간을 봤을 때 10시3분이었어요.

깔리고 나서야 상황이 파악됐다

돌아가는 길에도 사람이 너무 많고, 끼어들고, 질서가 하나도 없었어요. 셋이 팔짱 끼고 삼거리 쪽으로 돌아가는 흐름에 합류했어요. 스스로 걷는 게 아닌 것처럼 와이키키펍 앞을 지나 골목으로 꺾으려는데 갑자기 외침이 들렸어요. “사람이 깔렸어요! 오지마세요!”

그쪽을 보니까 한 여성이 부스스해진 머리로 일어나는 거예요. 밟혔나 봐요 조금…. 일단은 진정되는 분위기였고, 저희는 벽에 붙어 셋이 손잡고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쏠리면서 비집고 들어오더라고요. 결국 친구들 손을 놓치고 저만 앞으로 떨어져 내려가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서로 보여서 ‘잘 따라와’ 하던 상태였고요.

골목길 오른쪽에 지하클럽 있는 거 아세요? 골목 쪽에 턱이 있고 입구까지 계단이 두 세개 될 거에요. 그런데 거기 사람이 한 10명 엉켜서 쓰러져 있는 거예요. 골목길 벽이 지하클럽 건물 쪽에서 디귿자로 파여있어요. 사람들이 좁은 길에 끼어가다 갑자기 벽에 공간이 생기니까 밀려서 옆으로 쓰러진 거예요. 일정한 방향도 아니고 이리저리 엎어져서….

엎어진 사람 중 한 명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엄청 괴로운 표정인 거에요. 그때 건장한 클럽 가드 분들이 한 두명씩 구조해주고 있었어요. ‘어, 사람을 구하고 있네? 그래도 구출되겠지? 무슨 상황이지?’ 이런 생각을 하던 순간, 제가 그 위로 엎어졌어요 반쯤. 무릎을 꿇고 팔로 지지한 상태로요.

제 아래 깔린 사람은 거의 여성들이었는데 ‘제발 뒤로 가주세요’ ‘깔렸어요’ 소리가 들렸어요. 클럽 가드들도 ‘오지 마세요’ 외쳤고요. 엎어지고 나서야 모든 상황이 파악된 거예요. 119 신고해야겠다고 겨우 핸드폰을 봤을 때 10시10분 정도였어요. 그 순간 완전히 깔렸어요. 너무 눌려서 핸드폰을 들어올리는 것조차 안 되더라고요.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2일 조화와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게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2일 조화와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게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뒤로!”도 소용없던 순간, 정신을 잃었다

당장은 뭐라 해야하지, 멍했어요. 어이없었고요. 무슨 상황이지? 빨리 119 신고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잘 안 보이네?…. 사실 감정은 느낄 새가 없었고요. 그 와중에 깔린 곳 바로 아래가 연석이라 모서리에 종아리가 정말 부러질 것 같더라고요. 소리를 질렀어요. “제발 다리만 움직일 수 있게 해주세요” “다리 끊어질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막 소리를 질러요. 클럽 가드들은 “오지마!” 외치고, 아직 서 있던 사람들도 외쳤어요. “뒤로! 뒤로!” 꽤 많은 사람이 연달아 외쳤는데 1분도 못 갔어요. 안 먹히니까. 사람들이 전혀 통제가 안 됐어요. 아니 그 사람들도 통제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었겠죠.

‘아 소용이 없구나, 다들 오지 말라고 외치는데 왜 이 상황이 계속되지?’ 싶을 때 갑자기 너무 눌려서 숨쉬기가 힘든 거예요. 그제야 생명의 위협을 느꼈어요. 억지로 숨을 쉬려 했어요. ‘아직 몇 명 안 깔렸으니까 구출되겠지, 빨리 집에 가야지’ 이러면서 심호흡을 하다가…. 모르겠어요. 종아리가 너무 아파서인지 숨이 끊겨서인지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렸을 땐 제가 클럽을 정면으로 보고 있었어요. 클럽 사람들이 물을 뿌려줘서 깬 거였어요. 처음 아래쪽을 보고 엎어졌는데, 사람이 계속 쌓여서인지 위치가 바뀌었더라고요. 그런데 다리가 아무 감각이 없었어요. 골반부터 아래가 다요. 종아리가 부러졌는지, 부었는지 모를 정도로요.

클럽 사람들은 “기절하지마!” 라고 울면서 소리치고 있었어요. 안에서 물을 꺼내오고, 산소통 같은 걸로 바람 뿌려주면서 기절한 사람을 깨우려 했어요. 나중에는 그게 너무 반갑더라고요, 공기가 한꺼번에 들어오니까….

이태원 핼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8일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태원 핼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8일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아비규환 속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로를 살리려 했다

온갖 비명이 들렸어요. 속삭이듯 ‘살려줘’만 반복하는 사람,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신한테 기도하듯 중얼거리는 사람…. 그나마 힘이 남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요. 눈을 뜨면 손이 많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뻗는 손이요.

클럽 가드들이 그 손들을 잡아줬거든요. 저도 손을 뻗어봤어요. ‘가만히 있으면 나 죽은 줄 알겠다, 날 포기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오른팔을 어떻게 뻗어서 손만 폈더니 가드 한 분이 꽉 잡아줬어요. 자기가 정말 미안하대요, 죽지만 말아 달라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 손을 잡아주러 갔어요.

살고 나서, 아니 그 당시에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바닥에 깔린 내 눈앞에도 손이 이렇게 많이 보이는데 저 가드들 눈에 보이는 손은 얼마나 많을까…. 들리는 소리로는 1m 정도는 사람 머리와 팔로만 빼곡히 쌓여 있었을 것 같아요. 그들이 다 자기만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손잡아달라고 하는데 되게 절망적이었을 거에요. 그분들이 오히려 걱정돼요. 그때 클럽 앞에 있던 사람들은 다 울고 있었어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가, 어떻게든 버티면 산다 싶었어요. 숨 쉬는 데 집중했어요. 조금씩 들이마시고 내쉬고, 의식만 잃지 말자. 그렇게 한참 지났는데도 구조될 기미가 안 보였거든요. 몇십 분 있었나…. 사람들이 경찰이랑 소방이 왔대요. 기대하게 되잖아요. 근데 안 와요. 누구 하나 구조되는 기미가 없어요.

버티던 끝에 구조되다

그렇게 서너 번 반복했나. 나중엔 ‘구하러 왔다’는 게 양치기 소년 말처럼 들리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제 오른쪽(위쪽)부터 차례로 구조되는 것 같았어요. 진짜 온 거예요 구조하는 분들이. 저도 소리쳤죠. 저 여기 있다고, 살아있다고. 그분들이 제 팔을 붙잡아 끄집어내려는데 처음에 잘 안 됐어요. 다리가 안 빠져서요. 시간이 더 지나 어떻게 구조됐는데 눈을 뜨기 힘들더라고요.

의식만 또렷한 상태에서 들것에 실려 어딘가로 옮겨졌어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요. 도와주시던 시민들이나 구조대원한테 만날 때마다 중얼거렸어요. 다리에 감각이 없다고…. 그렇게 여기저기 옮겨다니다 구급차 옆에 눕혀지고 눈을 겨우 떠보니, 제 오른쪽에 사람들이 몰려서 저를 찍고 있었어요.

이후 응급차에 실렸어요.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들한테 연락했는데 그때가 11시31분이었어요. ‘구조했습니다. 이송 예정입니다’ 보고하는 걸 들었거든요. 한 시간 넘게 깔려있었더라고요.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구급대원들 대화가 들렸어요. 그때서야 확실히 알게 됐죠. 아, 사람이 누군가 죽긴 했구나, 정말 죽었구나….

응급실 도착하니까 장기는 타박상을 심하게 입은 상태라서 수치가 안 좋았고, 다리는 감각이 없어 못 움직이는 상태였고요…. 그 이후로 계속 치료 중이에요 입원해서. 다리는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고,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4일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4일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문재원 기자

“그날 죽지 않은 모든 사람이 생존자…다들 언젠가 꼭 괜찮아지길”

벚꽃·불꽃축제, 콘서트장, 지옥철 이런 데는 익숙했거든요. 이태원도 그런 곳일 뿐이지,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사실 못 해봤어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사고가 나는 건 당연한 게 아니잖아요. 많을수록 더 안전해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요. 그런 축제들이 사람들 많이 오라고 홍보도 하잖아요. 애초에 준비했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특별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얘기를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어요. 저는 생존자라는 말도요. 제가 아니라, 그날 죽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생존자인 것 같아요.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안전을 기대했던 곳에서 죽을 수 있는 거에요, 지금 이 상황은. 핼러윈 축제가 아니었더라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환경이라면 불꽃 축제에서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던 것이고…. 이번에 살았을 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와 같은 경험을 한 피해자나 생존자분들 다들 괜찮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이런 말이 상처가 되는 분들도 계실 거에요. 슬픔과 괴로움을 원하는 만큼 느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뚜렷하게 보일지도 몰라요.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우리를, 희생자를 지키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봐요.

병원에선 재활 치료를 해도 까치발을 드는 건 어려운 정도의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다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내년쯤엔 다시 좋아하던 춤을 추고 발레를 배울 거에요. 저도 제 일상과 스스로를 지켜나갈 것이고 동시에 슬퍼하고 애도할 거예요. 아마 오랫동안요. 이미 그러고 있기도 하고요. 다른 분들도 저처럼, 언젠가는 꼭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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