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학생부 기재’ 소송전 부작용…폭력 근절엔 의문

김나연 기자

2019년 관련 소송 1609건…2012년 도입 때보다 76배 늘어

대입 때까지 ‘지연’ 수단 악용…‘엄벌주의’ 개선 대책 필요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의 처분을 받으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된 것은 2012년이다. 가해 학생의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남김으로써 피해 학생 보호를 강화하고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학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전력은 학생부를 제출해야 하는 대학 수시모집에서 학생에게 큰 타격을 줬다.

취지도 좋고, 효과도 있었지만 부작용도 생겼다. 지난 25일 임명 하루 만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직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처럼 학교폭력을 저지른 자식의 처분 기록을 지우기 위해 소송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자료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조사 자료를 보면 2012년 21건이던 행정심판은 2019년 1609건으로 76배 정도 늘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7일 늘어나는 학교폭력 관련 소송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학교폭력 전담 재판부를 별도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세환 법무법인 동주 변호사는 28일 기자와 통화하며 “대입을 위해 조치 사항이 완화되거나 삭제될 때까지 소송을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학폭위가 내린 처분은 실행되지 않는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도 별도의 분리 없이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피해 학생에게 또 다른 가해가 되기도 한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가해 학생은 조치를 다시 받기 전까지 피해 학생과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머문다”며 “오히려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가거나 학교로부터 도망치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이어 “피해 학생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가해 학생 처벌이 아닌 사과”라며 “소송으로 가해 학생과 부모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면 누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가겠냐”고 말했다.

가해 학생의 부모가 벌이는 소송전은 교사가 본연의 교육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이상우 경기 금암초 교사(49)는 “소송 중에는 교실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건 물론이고 아예 지도 자체가 안 된다”며 “작은 공감에도 ‘편들기’가 돼버리기 때문에 교사가 피해 학생에게 위로를 해주거나 가해 학생에게 최소한의 교육적 지도를 하는 게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입시에 학교폭력 전력 반영을 확대하는 ‘엄벌주의’는 학폭위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만 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우 교사는 “입시에서 학교폭력의 영향력이 강화되면 대입에서 피해를 안 보기 위해 어떻게든 부인하려는 경우만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도 “학교폭력을 입시에 강화해서 반영하겠다는 것은 단순 처벌 위주로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자세”라며 “피해 학생의 상처가 나아지는지, 그것이 공동체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를 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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