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신 파문

학폭 피해 회복의 시간 갉아먹는 ‘시간끌기 소송’

김희진·김혜리 기자

‘학폭 불복 소송’ 판결문 분석

<b>경찰 뒤에 법무부</b>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 민생침해 금융범죄 대응 방안과 금융 부담완화 대책 마련을 위한 민·당·정 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경찰 뒤에 법무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 민생침해 금융범죄 대응 방안과 금융 부담완화 대책 마련을 위한 민·당·정 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가해자들, 정순신 아들처럼
재심·행정심판 등 ‘버티기’
징계 최대한 미뤄 학교 졸업
입시에도 별다른 불이익 없어
되레 피해자가 지쳐서 전학도

2019년 고등학생이던 A씨는 같은 반 B씨에게 그해 내내 괴롭힘을 당했다. 수업 시작 직전 편의점에 다녀오라고 시키거나 수행평가를 대신하게 했다.

시간이 가면서 폭행과 협박도 더해졌다. A씨가 피해 사실을 알리자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고 2019년 12월 B씨에게 전학 조치를 결정했다.

B씨는 버텼다. 재심에 이어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모두 기각되자 이듬해 5월 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 처분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소송은 B씨가 학교를 졸업한 뒤인 2021년 소를 취하하고서야 끝났다.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중간에 옮긴 사람은 피해자인 A씨였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은 가해 학생이 징계를 피하려 법과 제도를 이용해 ‘시간끌기’에 나서는 동안 피해 학생은 방치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8일 경향신문이 대법원 판결 열람시스템을 통해 학교폭력 처분 불복 소송 판결문 30여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 학생이 ‘정해진 공식’처럼 소송에 나서 징계를 최대한 미루고 입시에 불이익 없이 학교를 졸업한 사례가 빈번했다.

C씨는 고교 재학 중이던 2019년 11월 다른 학생을 성폭행해 퇴학 및 출석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소송을 끌었다.

그는 2021년 1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징계 처분 취소 소송을 심리한 대전지법은 형사재판 결과를 토대로 2021년 4월 C씨 청구를 기각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 약 1년6개월 만에 나온 결론인데, C씨는 이미 학교를 졸업한 상태였다.

전학(8호)이나 퇴학(9호)이 아닌 서면사과(1호)처럼 가벼운 처분에도 취소 소송은 줄줄이 이어졌다. 1~3호 처분을 받은 가해 학생은 1회에 한해 학생부에 처분 사실이 기재되지 않지만, 현실에선 입시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차단하기 위해 소송에 나선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학교폭력 전문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법원에선 학폭위 결정을 존중해 사실관계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아니면 가해 학생의 청구를 대다수 기각한다”며 “그럼에도 학교폭력 가해자로 처분을 받으면 낙인찍힌다는 두려움이 커지다보니 승소율이 낮더라도 일단 징계는 좀 모면해보자는 목적 자체로 소송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가해 학생이 제기한 학교폭력 행정소송 325건 중 승소한 경우는 57건(17.5%)에 불과했다.

가해 학생이 법을 이용해 시간을 끄는 동안 피해자의 고통은 늘어간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가해 학생 측이 신청한 집행정지를 대다수 받아들였다. 한번 집행정지가 인용되면 피해 학생은 회복이 어려워진다. 학교폭력 사건을 주로 맡아온 양나래 변호사는 “집행정지가 인용되면 가해 학생도 학교에 머물면서 소송으로 다투게 되는데, 피해 학생은 좌절감이 생길 수 있다”며 “피해 학생이 할 수 있는 건 탄원서 제출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정 변호사의 아들도 전학 처분이 결정된 2018년 3월부터 2019년 4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재판을 끌었는데, 피해 학생은 1년 넘게 학교에서 가해 학생을 마주쳐야 했다.

피해 학생은 할 수 없이 다른 법적 구제방안을 직접 찾기도 한다. A씨는 B씨가 전학 처분에도 버티자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B씨는 학교를 졸업할 때쯤 법원에서 보호처분 결정을 받았다. A씨 측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괴롭힘을 당한 후 2년이 지나서야 위자료를 받았다. 학폭위와 가정법원을 거쳐 민사재판 절차까지 밟고 나서야 겨우 일부 피해를 배상받은 것이다. 각종 소송을 거치는 동안 피해 회복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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