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 고교 학비’ 하한 규정에…국외 추방 공포에 떠는 고교 1학년생

강현석 기자
24일 광주광역시의 한 카페에서 몽골 출신의 고교 1학년인 A가 그동안 한국 학교에서 공부하며 받은 상장 등을 설명하고 있다. A는 학비 500만원 이상을 내야 하는 학교를 찾지 못해 이번 달 몽골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강현석 기자.

24일 광주광역시의 한 카페에서 몽골 출신의 고교 1학년인 A가 그동안 한국 학교에서 공부하며 받은 상장 등을 설명하고 있다. A는 학비 500만원 이상을 내야 하는 학교를 찾지 못해 이번 달 몽골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강현석 기자.

전남의 한 사립대안고등학교 1학년인 A학생(16)은 ‘미등록외국인’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는 기숙사에서 눈을 뜨면 휴대전화부터 열어본다. 오는 31일로 ‘고등학교 이하 교육기관 유학생에 대한 일반연수 자격 비자(고교이하 유학 비자)’가 만료되는데, 그 전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몽골 출신인 A학생은 열 살이던 2018년 6월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먼저 정착한 이모의 권유가 컸다. 부모님도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자식이 크길 바랐다. 몽골에서는 1980년대 한국처럼 학생이 많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받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A학생은 그동안 받은 상장들을 꺼내 보였다. 2023년 11월 열린 ‘전국이중언어말하기대회’에서 교육부 장관이 수여하는 중등부 동상을, 2022년 광주시교육감이 주는 ‘이중언어말하기대회’ 중등부 금상을 받았다.

중학교 3학년 학생회장에 당선됐다는 그는 한국어능력시험에도 도전해 5급에 합격했다. A학생은 “한국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여러 대회에 나갔다”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겠는데,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무부가 정한 체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다.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체류 기간 연장을 위해 출입국외국인사무소를 찾았다가 지침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됐다. 법무부는 2022년 3월 고교이하 유학 비자 발급 대상에서 ‘무상교육 기관’을 제외한 것이다. 한국은 초·중·고교가 무상교육인 만큼 외국인들은 이들 학교에 재학한다는 이유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게 됐다.

다만 법무부는 학비가 연간 500만원 이상 교육기관에 재학 중이면 체류 연장을 허용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침변경이 “국가 예산이 지원되는 무상교육 기관에 무분별한 외국인들의 유학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일반 고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된 A학생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지난해 12월 서울에 있는 ‘재한몽골학교’에 대기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 호남지역에서 500만원 이상 학비를 받는 곳은 자율형사립고 두 곳뿐인데, 이들 학교는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어 사실상 입학이 불가능하다.

몽골 출신으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A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전남교육청 등에 제출했다. A는 학비 500만원 이상 학교를 찾지 못해 몽골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A 제공.

몽골 출신으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A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전남교육청 등에 제출했다. A는 학비 500만원 이상 학교를 찾지 못해 몽골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A 제공.

주변의 도움으로 학교를 수소문해 기숙사비 등으로 연간 500만원을 받는 전남의 사립대안학교에 입학했고 지난달 6일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비자 연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기숙사비는 학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기준 미달로 거부당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인 그는 법을 어겨야 할 처지에 놓인 현재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했다. A학생은 “미등록외국인도 고교를 다닐 수는 있지만 이런 사실은 기록에 남게 될 것이고 나중에 한국 대학 입학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라면서 “법을 어기면서까지 공부를 지속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계속 공부하는 유일한 방법은 체류 기간 만료 전,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그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초청해 주는 것이다. 법무부 지침에는 ‘초청이 있는 경우 무상교육 기관이라도 예외적으로 사증발급을 허용한다’는 조항이 있다.

전남도교육청 등에 진정서를 제출한 A학생은 “본국으로 추방당한다는 공포와 슬픔에 마음이 아프다”면서 “그동안 한국 교사들의 가르침으로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밝혔다.

박고형준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는 “‘무상교육은 안 되고 500만원 이상 학비를 내는 곳에서만 유학하라’는 것은 외국인 아이들의 교육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면서 “현재 ‘고교 유학생’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전남도교육청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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