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근로공시제는 시작…“저절로 좋아지는 건 없다”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5) 첫 발 뗀 ‘성평등 임금공시제도’ 주목

임금격차 해결은 ‘문제 인식’부터

2017년 ‘임금투명화법’ 시행한 독일

기업들이 차별 줄이려 신경쓰게 돼

성별 임금격차 매년 1%P 감소 성과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성별근로공시제는 시작…“저절로 좋아지는 건 없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매우 커 OECD에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꼴찌’다. 2021년 기준 성별임금격차는 31.1%로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68만9000원을 받는다. 경향신문 특별기획팀은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데이터로 뜯어보고자 했다. 5회는 여성 고용률은 늘렸지만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지 못한 AA제도의 한계,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노력인 ‘성별 임금공시제도’에 대해 정리했다.

경향신문 특별기획팀은 민·관 965개 기관에 대한 성별 임금공시를 시도해 공개한다. 경향신문의 성별 임금공시 웹사이트(https://www.khan.co.kr/kh_storytelling/2023/gendergap/view_3.html)에서는 10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지방 공기업 등 총 965개사의 남녀 직원 수, 직급별 임금격차, 근속연수 차이, 해당 사업장이 분석한 임금격차 원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독일의 성별 임금격차는 22%로 당시 유럽에서 격차가 큰 국가에 속했다. 독일은 임금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 ‘임금구조 투명성 강화를 위한 법’을 2017년부터 시행했다. ‘임금투명화법’은 성별에 관계없이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을 받을 권리를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법에 따르면 2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직원의 임금 수준에 대해 회사측에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 있고 500인 이상 사업장의 고용주는 노조 대표와 함께 동일임금 지급에 대한 분석해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모든 사람이 열람이 가능하도록 공개한다.

성별 임금격차가 2015년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감소하던 독일은 임금투명화법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매년 약 1%포인트까지 감소폭이 증가했다. 2020년에는 성별 임금격차를 18%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전윤정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표적인 노력이 성별 임금공시제도”라며 “독일은 공시 이후 기업들이 차별을 줄이기 위해 신경쓰게 됐고 정부에서도 대책이 이어지면서 제도의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 서울시 ‘성평등 임금공시제’
최대 46.42%까지 임금격차 나오자
결과 받아든 기관들이 당황하기도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2019년 최초로 ‘성평등 임금공시제도’를 시작했다. 서울시는 첫해 시 소속 투자출연기관(22개)의 직급·직종·재직연수별 남녀 임금격차를 홈페이지에 공시했고 2021년에는 서울시와 서울시립대까지 공시 대상을 확대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기에 ‘공시’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공공 부문이라 성별 임금격차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대 46.42%의 임금격차가 있는 기관도 나왔다. 결과를 받아든 기관들도 당황했다. 성평등 임금격차개선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투자출연기관의 격차가 이 정도인데 민간 부문까지 확대해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불평등이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며 “동시에 공공기관도 노동시장 성차별 구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성별 임금격차가 크게 난 A기관은 ‘공시’를 반대했다. A기관은 고위 직급에는 남성이 많고 하위 직급에는 여성이 많아 임금격차가 크게 났다. 이 기관은 ‘전공 분야에 남성이 많아서’라고 해명했으나 기관 내 여성 비율은 45%에 달했다. “임금격차가 다른 이슈보다 더 중요하냐”라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기관마다 남녀 근속연수가 차이가 나서 격차가 있다는 호소도 많았다. 그러나 국미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이 발표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성별 임금격차 원인 진단 및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직종·직급·재직기간이 동일한 집단에서도 성별 임금격차가 확인되고 있었다.

A기관은 임금격차개선위원회의 적극적인 설득 끝에 공시를 했다. 이후 A기관은 직급별, 직위별 분석을 해서 심층적인 원인을 찾겠다고 했고 이후 연차별 개선계획을 수립하는데까지 나아갔다. 서울시는 ‘공시’는 시작이고 ‘개선’이 중요 목표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공시 후 서울시는 간담회를 열어 기관별로 성별 임금격차 개선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했고 이를 위해 성평등임금자문단을 운영했다.

이렇게 서울시는 성평등 임금공시제도를 시행하면서 기관들이 노사 협의를 통해 개선 계획을 세우고 시는 이를 보고받아 모니터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신 교수는 “공시는 처벌이 아니라 ‘자기 점검’이 목적”이라며 “문제를 인식하면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기관별로 임금격차의 요인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기관이 스스로 격차 요인을 확인하고 풀어가도록 유도했다.

법적 근거도 중요하다. 서울시는 ‘서울시 성평등 기본 조례’를 개정하고 성평등노동정책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성별임금격차개선위원회를 설치하고 차별조사관이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했다. 그러나 조례에 공시 주기가 명확하지 않고 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시정 노력 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한 상황이다. 류미경 서울시 양성평등문화팀장은 “임금공시 주기 등을 조례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따를 만한 상위법이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서울시는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위탁 기관도 포함해 ‘3차 성평등 임금공시’를 시행할 계획이다. 서울시 제도는 이후 고양시·창원시·충남도·경기도·광주광역시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로도 확산됐다. 신 교수는 “지방정부가 노동정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례로도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활발한 해외 성별임금공시
선진국들은 정책적 개입 중요시
고용과 임금 격차가 공정성 해쳐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성별근로공시제는 시작…“저절로 좋아지는 건 없다”

주요 선진국들은 성별 임금공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은 2021년 기준 여성 임금이 남성 평균의 90.1%로 성별임금 격차가 좁혀졌다. 스웨덴은 고용주와 노조가 매년 남녀 노동자들의 임금을 조사해 분석하는 ‘기업 임금 감사제도’를 시행 중이다. 1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고 수치는 공개되지 않지만 노동자가 고충을 제기할 경우 고용주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평등감사관을 두고 고용주가 임금 조사를 정확히 수행했는지 감사한다.

프랑스는 1990년대 이후 시간제 근무 여성이 크게 늘어나면서 2017년 기준 성별 임금격차가 16.8%였다. 프랑스는 이를 줄이기 위해 성별 임금 차이, 승진 지수 등 5개 지표를 마련해 종합지수를 만들었고 2019년부터 ‘남녀평등지수 공시제’를 시행했다.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기업은 성별 임금격차를 기업 홈페이지에 공시해야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남녀평등지수 사이트’에서도 누구나 기업별 지수를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남녀평등지수 결과를 발표한 기업은 2만7436개인데, 이중 시정조치 기준 점수인 75점 미만의 점수를 받은 기업은 전체의 12% 수준이다. 2021년 프랑스 성별 임금격차는 15%로 줄어들었다.

영국은 2010년 평등법을 개정해 25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공부문에 성별 임금격차 공개 의무를 부여했다. 기업은 자사 홈페이지에, 정부는 공정 임금 포털에 동시에 공개한다. 벨기에는 2012년 성별 임금격차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법(‘남녀임금격차 해소법’)을 제정한 국가다. 50인 이상 기업은 2년마다 임금 구조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회사가 성 중립적 보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 검토할 것을 의무화했다.

스위스는 2020년 개정된 성평등법을 바탕으로 100인 이상의 모든 기업이 임금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고 공표했다. 기업은 ‘Logib 자가분석도구’를 이용해 정기적으로 자사의 임금 관행을 분석하고 공개해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Logib은 교육 수준, 근속연수, 경력, 직위 등의 요인을 제외하고 오직 성별만이 총임금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표준 분석 도구다. Logib은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유럽만이 아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성별 임금공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성별 임금격차가 한국 다음으로 큰 일본의 사례다. 일본 도쿄도는 2019년 ‘여성활약추진법’을 개정해 여성 노동자에 대한 직업 생활 기회 제공, 일과 가정의 양립에 이바지하는 고용 환경 정비 두 항목에서 한 가지 이상을 선택해 기업이 행동계획을 관할 도도부현 노동국에 신고하도록 했다. 이는 2022년 101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됐다.

전 조사관은 “선진국들은 고용과 임금의 불공정성을 줄이기 위해 정책적 개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고용과 임금의 격차가 확대·재생산되면 사회의 공정성을 해치고 소득, 계층 간 문제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성별근로공시제는 시작…“저절로 좋아지는 건 없다”

정부도 성별근로공시제 시작…“법적 근거 필요”
민간 기업에는 자율 공시 유도하기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새 법 필요

정부도 성별 임금공시제도로 나아가는 첫 단계인 ‘성별근로공시제’를 공공기관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채용 단계에서는 서류 합격자부터 최종 합격자까지 성비, 근로 단계에서는 부서별 인원·승진자·육아휴직 사용자 성비, 퇴직 단계에서는 해고자·조기 퇴직자·정년 은퇴자 성비를 공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민간기업의 경우 기업 ‘자율’로 공시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신 교수는 “정부 공시제도가 있어도 젠더 관점 없이 기계적으로 정보를 나열한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임금격차의 구조적인 차별 요인을 찾아내겠다는 문제의식이 없으면 제도 효과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민간 회사를 포함하는 완전한 의미의 성별 임금공시제도 시행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이수진 의원, 정춘숙 의원이 각각 성별 임금공시제를 포함한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새 법을 만들기보다 고용정책기본법에 있는 고용형태별 근로공시제 ‘공시’ 조항에 성별·직급별 임금 정보를 넣어 조항을 신설하자는 의견, 남녀고용평등법에 공시 조항을 넣자는 논의도 있다.

현재 공시제도를 확대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성별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새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 연구위원은 서울시 임금격차 보고서에서 “성별 임금격차 해소, 성평등 노동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성평등임금공시의 정의, 적용 범위, 국가의 책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임금 여성’ 데이터까지 고민해야
독일, 임금 정보공개 청구권 모델 가능
‘여성의 노동권 확대’ 사회적 논의 확대돼야

여성들이 집중돼 있는 소규모 기업, 임시직·비정규직의 임금 데이터를 공개하는 제도도 중요하다. 성별근로공시제는 현실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소규모 기업들은 인사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독일에서 대기업이 아닌 200명 이상 500명 미만 기업에 적용되는 임금 정보공개 청구권 제도가 유용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제도는 같은 사업장에서 동등한 직무를 수행하고 동등한 성과를 내고 있는데도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다른 성별의 동료가 6명 이상 있을 경우 노동자가 기업에 임금 산정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용주가 이에 대해 응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분쟁해결절차를 청구할 수도 있다.

이승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박사가 2021년 분석한 ‘독일의 성별 임금격차와 유럽연합(EU) 및 독일의 임금공개법’ 보고서를 보면 독일 정부는 법 시행 후 2년이 지나 평가보고서를 냈는데 노동자가 임금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한 기업은 전체 대상 중 4%에 불과했다. 비교적 작은 기업에서는 이런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눈치 보기’는 확실히 늘어났다. 독일 정부는 각 기업에서 동일임금원칙의 준수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보수구조를 검토하는 비율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200인 이상 500명 미만 기업의 43%가 자신들의 임금 산정 방식을 다시 들여다 봤다.

성별 임금격차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채용, 배치, 교육·훈련, 승진 등 고용상 모든 과정에서 발생한 성차별이 누적된 결과다. 전반적인 ‘여성의 노동권 확대’라는 취지로 사회적 논의가 확대돼야 하는 까닭이다. 신 교수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조사관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시민권 확보, 경제적 자립의 기초”라며 “여성이 경제력을 가질 때 가정, 회사, 그리고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력에 접근하고 교섭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성별 임금격차 해소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임아영(소통·젠더데스크) 황경상·배문규·이수민·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조형국(사회부) 이아름·유선희(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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