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코로나와 싸운 간호사는 객석의 간호사를 꼬옥 안아주었다

노도현 기자

‘코로나 노동’ 주제로 연극

실제 주인공들 앞에서 연기

노조 “공감·위로의 메시지”

극단 낭만유랑단 배우들이 10일 경기 파주 경기미래교육 파주캠퍼스 콘서트홀에서 연극 ‘섹스인터시티’를 공연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제공

극단 낭만유랑단 배우들이 10일 경기 파주 경기미래교육 파주캠퍼스 콘서트홀에서 연극 ‘섹스인터시티’를 공연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 제공

“밥은 언제 먹나요?” “시간 나면…. 먹지 않아야 싸지 않는다!”

7년차 간호사 윤주는 신규 간호사의 질문에 이같이 답한다. 불규칙적인 3교대 근무와 4시간 자고 또 출근해야 하는 ‘지옥의 근무표’ 탓에 좀비처럼 일한 지 오래다. 짬이 나면 컵라면이나 도시락을 들고 좁아터진 비품실을 찾는다. 가장 힘든 건 환자를 제대로 간호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이다. 의사 진료를 보조하는 PA간호사 성주는 3교대 근무를 하진 않지만 시도 때도 없이 ‘콜’을 받는다. 처방, 드레싱 등 의사 업무를 대신하며 불법의료에 내몰린다. 그가 한 일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병원의 유령 같은 존재다.

6년 전 메르스 현장을 지킨 간호사 경주는 코로나19 전사가 됐다. 메르스 종식 후 인터뷰에서 “많은 감염병을 대비하기 위한 프로토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스크 한 장 지급받지 못하고 코로나19에 감염된 간병노동자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다. 남의 일이 아니다. 간호사인 자신도 간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지난 9일 극단 낭만유랑단의 연극 <섹스인더시티>가 열린 경기미래교육 파주캠퍼스 콘서트홀. 연극은 2021년에도 식욕, 배변욕, 수면욕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외면해야 하는 간호사의 노동에 주목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가 공가 인정을 받는 ‘조합원 하루교육’의 일환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아주대병원·일산백병원·의정부의료원 등 경기지역 병원 노동자들이 한 칸씩 띄운 채 객석을 메웠다. 노조는 다음달까지 파주, 수원, 안양 등에서 조합원 대상 공연을 총 12회 연다.

강의가 아닌 연극을 준비한 건 ‘코로나 우울’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2~3월 보건의료노동자 4만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다수는 일상생활(78.7%)과 심리상태(70.6%)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비슷한 시기 일반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55.8%가 ‘코로나19로 인해 불안·우울하다’고 답한 것에 비하면, 의료노동자들의 심리상태가 더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백소영 노조 경기지역본부장은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압박감과 책임감에 어디 나가는 것조차 어렵다. 코로나19 의료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심리치료를 받을 시간도 없다”며 “하루라도 여유를 갖고 문화생활을 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극 <섹스인더시티>는 2016년 초연 당시 부적절한 관행인 임신순번제와 태움(직장 내 괴롭힘), 메르스 문제를 부각했으나 지금은 노동 자체와 코로나19가 중심이 되도록 변주했다. 작품의 실제 주인공인 간호사들 앞에서 공연한 건 처음이다.

연출을 맡은 송김경화씨는 “간호사들이 쓴 책과 통계자료 등을 기반으로 리서치를 했다”며 “간호사들이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의 노동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에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40만명, 이 중 의료현장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절반인 20만명뿐이다. 인구 1000명당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9명)보다 적은 4.2명이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앓는 ‘코로나 우울’의 확실한 치료제는 노동환경 탈바꿈이다. 이들은 “말뿐인 위로는 필요 없다”며 정부의 의지 있는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