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 힘든 환자 찾아가는 의료진…존엄한 삶을 지키는 파수꾼들

이창준 기자

‘살림의료’ 협동조합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소속 ‘살림치과’의 박인필 원장이 의료 서비스 대상자의 집에 직접 방문해 검진을 하고 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소속 ‘살림치과’의 박인필 원장이 의료 서비스 대상자의 집에 직접 방문해 검진을 하고 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지역 사회를 병동처럼 순회
‘마을 간호 스테이션’ 운영

혼자서 일상 어려운 환자에
방문 의료·간호·재활 치료
가족의 일상회복도 도와

박지수씨(34·가명)는 올해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 걱정에 출근길이 늘 불안했다.

2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박씨의 아버지는 최근 경증 치매 증상까지 보이고 있는데, 박씨와 박씨의 언니가 출근하고 나면 낮에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어머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역시 퇴행성관절염 탓에 거동이 편치 않아 아버지에게 응급 상황이 생길 때면 늘 박씨나 박씨의 언니가 급히 직장에서 뛰쳐 나와야 했다.

이런 박씨가 그나마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하게 된 것은 지난 2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도움을 받게 된 뒤부터다. 조합에 소속된 요양보호사가 주중에는 매일 박씨의 집을 방문해 하루 3시간씩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를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어머니께만 아버지 돌봄을 맡기는 게 항상 불안했는데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신 뒤부터는 뭘 해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지역 사회에 의료와 돌봄 등 통합 복지 서비스를 민간 차원에서 제공하는 비영리협동조합이다.

2012년 설립된 이후 조합 차원의 의원(살림의원)과 재가복지센터(살림재가복지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나 와상 환자(누워 지내야 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방문 의료와 방문 간호, 방문 재활치료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씨의 아버지는 박씨의 언니가 우연히 본인 진료 차 살림의원에 내원하게 되면서 조합의 돌봄서비스를 받게 됐다. 살림의원 소속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박씨의 집에 방문해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소견서를 작성해 장기요양보험등급을 받도록 도왔고 박씨는 아버지의 등급 판정 이후 조합이 제공하는 방문 요양서비스를 신청했다.

매주 1회 조합 소속 작업치료사가 박씨의 집에 방문해 아버지의 보행훈련과 연하(음식물을 삼키는 것) 훈련을 돕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주 5회 낮시간 집에 찾아와 아버지를 돌본다.

조합은 방문 의료 서비스를 통해 임종을 앞둔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도록 돕기도 한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영신씨(58·가명)는 지난 3월15일 급히 살림의원을 찾았다. 5년 전부터 폐암 투병 중이던 시아버지가 물도 잘 마시지 못할 만큼 몸상태가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시아버지를 응급실이나 호스피스 병원으로 모실까도 생각했지만 평소 “집에서 최후를 맞겠다”던 시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족들과 논의 끝에 조합에 방문 의료를 신청한 것이다.

의원에서 왕진을 나온 의사는 수액 투여를 비롯한 응급 처치를 진행했고 시아버지는 이내 생기를 되찾았다. 기력을 회복한 시아버지는 이날 김씨를 비롯해 김씨의 자녀와 시누이 등 자신을 찾아온 자식, 손주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그는 이틀 후 의사의 권유에 따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러 가는 길 택시에서 아내의 어깨에 기대 잠들 듯 숨을 거뒀다.

설립 이후 꾸준히 지역 사회 중증·와상 환자 등을 대상으로 방문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던 조합은 올해부터는 ‘마을간호스테이션’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통해 의료 및 돌봄 역량과 적용 범위를 기존보다 더 확대해 제공하고 있다. 마을 단위의 지역 사회를 마치 하나의 병동스테이션처럼 운영해 병원에서 입원하듯 지역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집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해당 사업이 올해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사회백신 프로젝트’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의료 및 돌봄 공백을 빈틈없이 메우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2019년 1100건가량이던 왕진 건수는 올해 기준 10월까지만 2000건가량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1년차 사업은 의료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내년부터는 점차 주거와 생활, 영양 쪽으로까지 복지 서비스를 계속 확대해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향신문과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이웃돕기캠페인인 ‘희망2022나눔캠페인’에 대한 국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공동 기획기사 ‘일상회복을 위한 사회백신’을 5회에 걸쳐 싣습니다. 캠페인으로 모인 기금은 코로나19 일상회복 지원·위기가정 긴급지원·사회적 약자 돌봄지원·교육 및 자립 지원 등을 위한 복지사업에 쓰입니다.

사랑의열매 지원 사업 소개
사업명: 마을간호스테이션·의료복지안심주택 연계형 통합돌봄 ‘병원에서 마을로’
사업기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업취지: 코로나19로 병원 이용이 제한된 환자들에게 의료 지원과 돌봄, 방문 재활 등 복지서비스 제공
지원규모: 9억6000만원(4년)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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