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통보제 도입해도 사각지대…‘병원 밖 출산’ 대책은

김향미 기자    민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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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회가 영유아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출생통보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르면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제도 도입 후에도 ‘병원 밖 출생’ 사례가 사각지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 임신부와 미혼모, 아동에 대한 지원 체계를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병원 밖 출생 아동 연 462명···‘출생신고 안 한’ 아동 합치면 더 많아

출생통보제는 그동안 부모에게만 부과한 출생신고 의무를 의료기관에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미등록 아동, 즉 ‘유령 아동’을 막기 위한 조치다. 현재 병원에서 출생한 신생아에게는 출생 직후 필수 예방접종을 위한 ‘임시 신생아번호’가 자동으로 부여되기 때문에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도 출생 사실 자체는 확인할 수 있다. 감사원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런 아동이 2236명이라고 밝혔고, 보건복지부는 이들의 안전 확인을 위한 전수조사에 나선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병원 밖 출생’ 아동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출생통보제 이외에도 병원 밖 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를 보면 2021년 출생아 26만562명 중 병원 밖 출산은 462명이다. 자택 112명, 기타 236명, 미상 114명 등이다. 이들은 병원 밖 출생이라도 출생신고가 된 경우다. 병원 밖에서 출산한 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의료기관도 방문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존재를 알기 어렵다.

“임신 단계부터 정보·상담 충분히 제공돼야”

준비되지 않은 임신,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위기 임신부’는 임신중단(낙태)과 출산 중에서 고민하고, 출산을 결심하더라도 입양과 양육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임신을 유지했지만 출산 다음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10~20대 미혼 임신부, 혼인외 자를 임신한 임신부, 신분 노출이 힘든 미등록 외국인 임신부 등이 취약환경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 임신부가 의료기관 출산, 출생신고, 양육 중 하나를 신중히 선택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으며, 입양을 하더라도 공적 절차를 거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려면 우선 위기 임신부들에게 출산 및 양육 지원책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미혼모들이 임신 초기부터 열달 가까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출산해 양육하면 어떤 지원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상담과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체계가 거의 없다”고 했다. 오 대표는 “저희와 상담을 거친 후 출산 후 주거나 학업을 마칠 수 있게 지원이 가능하다고 알려주면 ‘키울 수 있겠다’고 마음을 돌리는 사례들이 있다”고 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병원 밖 출산을 하는 가구를 보면 고립된 가정들이나 미혼모들이 많다”며 “기존 복지 지원체계 정보를 잘 알지 못하고, 혹은 병원비가 없을 때 지원받을 사람들이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노 교수는 “이들이 ‘사각지대’라는 것인데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정부와 지자체, 민간 복지관, 지역사회 이웃이 찾아나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 밖 출산 경험은 위기 임신부의 경제적·심리적 부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정말 당장 병원에 갈 돈이 없는 임신부들이 있다”며 “어떤 분들은 병원에 가더라도 (출산을 같이 준비하지 않는) 아이 아빠에 대한 정보를 물어오면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위기 임신부들에게 의료기관 진입 문턱이 높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또 “아직은 출산과 양육을 결정한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저희와 같은 민간 조직에서 후원을 받아 이들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422-37’에서 위기 임신부 상담하지만···홍보 없어 정보 부족

위기 임신부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독일의 ‘임신갈등상담소’의 사례가 많이 언급된다. 독일에서는 2013년 ‘임신여성의 지원확대 및 신뢰출산에 관한 법률’을 도입했다. 이 법률에 따라 전국에 1000곳 넘는 임신갈등상담소가 설치됐있다. 상담소에서는 성교육부터 가족계획 등 다양한 상담이 이뤄진다. 위기 임신부에게는 먼저 임신·출산으로 인한 갈등 해소 방안(양육수당 정보 등)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임신여성이 입양을 원하면 관련 절차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익명을 전제로 한 ‘신뢰 출산’을 원하다고 하면 이에 대해 상담한다.

한국에서도 위기 임신부를 위한 상담기관이 있다. 한국위기임신출산센터는 전국 11개 미혼모 지원시설(미혼모자기본형시설)에서 운영하는 전문 상담센터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미혼모 지원시설 ‘애란원’의 강영실 원장은 “위기 임신부들이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까, 베이비박스로 아이를 보내면 잘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또는 베이비박스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했다.

한국위기임신출산센터가 24시간 핫라인 상담 전화(1422-37)를 운영하고 있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동의 뿌리 지우는 ‘보호출산제’는 최후의 수단···위기임신출산지원 법제화해야”

어떤 이유에서든 산모들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을 때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면 이런 사례가 늘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면서 보호출산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보호출산제는 임신부가 신원이 노출되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하고 아이를 지자체에 인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익명 출산제’는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보호출산제 관련 법안은 의료기관에서 익명 출산을 지원하되 부모의 인적사항이 담긴 ‘출생증서’를 아동권리보장원이 보관한 뒤 성인이 된 자녀가 열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단 친생부모의 동의가 확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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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나 대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뿌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한국에서는 임신기 여성에 대한 상담이나 지원 시스템이 부족한데 미혼모들이 고민을 하다가 병원에서 익명 출산이 가능하다고 하면 그걸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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