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업무 확대·공보의 투입
현장 혼선·지역 의료공백 불러
사태 장기화에 환자들 ‘발동동’
1만명에 육박하는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지 4주차로 접어들며 의료공백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다. 일부 중증환자들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 남아 있는 의료진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대체인력으로 공중보건의 등을 파견하는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립선암(3기) 진단을 받은 A씨(65)는 지역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하고 지난달 26일자로 입원할 예정이었다. A씨는 “병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수술 아닌 방사선 치료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며 “나중에 들으니 ‘의사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고 현재는 “무한 대기 중”이라고 했다. A씨는 “중증환자들에겐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다”며 “(다른 신체기관으로) 전이가 되면 엄청난 돈이 들고, 상태가 악화하는 문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달 19~20일쯤부터 전공의 수천명이 사직서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 100개 수련병원에서 계약을 포기하거나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는 1만1994명(92.9%)이다.
지난 20일간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병원들은 수술 취소와 진료 연기, 환자 전원 등 진료기능을 축소했다. 남아 있는 교수와 전임의, 간호사 등이 의료현장을 지켰다.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중증·응급환자 진료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갑작스러운 역할 변동은 혼선을 낳고 있고, 사태 장기화로 의료진은 소진될 수밖에 없다.
한 서울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B씨는 “지금 교수님들이 전공의 선생님들 대신 처방을 하는데 아무래도 하던 일이 아니다보니까 업무 혼선이 생길 때가 있다”며 “그러면 간호사 업무 부담이 가중되기도 하고,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한 대처가 늦어지는 사례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공의가 있는 수련병원들은 비슷한 상황일 텐데 진료량을 줄이면서 응급·중증환자 진료 위주로 유지하고 있다”며 “남아 있는 인력으로는 더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이번주가 고비가 될 것 같다”고 했다.
1만명 떠났는데 공보의 등 158명 충원뿐…“전문의 채용이 바람직”
그는 “저만 해도 이달에 주간당직 3번, 야간당직 7번을 하고 있다”며 “더 많이 당직하는 분들도 있는데 외래진료나 수술을 일부 줄여도 이 정도 잦은 당직을 더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8일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간호사들에게 일부 의료행위를 허용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8일 “시범사업이 의사의 업무를 간호사에게 전가한 측면이 있다”며 현장 혼선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의료사고 시 간호사가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간호사 업무 확대만으로는 의료공백을 메우기 어렵다. 정부는 11일부터 4주간 20개 의료기관에 군의관 20명, 공중보건의사(공보의) 138명 등 총 158명을 주요 상급종합병원에 파견한다.
파견 정책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대형병원들의 전공의 의존 문제를 해소하려면, 또 전공의가 없어 발생한 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이 전문의를 더 채용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병원은 또 다른 값싼 노동력으로, 정부는 공보의 인력을 파견해 땜질식 대응을 하는 것”이라며 “최소 4주간 공보의들이 빠져나간 지역 보건소 등에선 그 빈자리만큼 의료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 교수는 “정부가 전쟁상황에 준하는 위기일 때 공보의, 군의관 등을 파견할 수 있지만 정책 시행 과정의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꾸기 위해 공공인력이 파견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엄 교수는 “지역의료를 살리자고 뽑은 공보의를 수도권 대형병원에 투입한다는 것은 정책 방향이랑 반대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