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증원’ 한발 물러선 정부···“원점 재검토” 접을 뜻 없어보이는 의료계

김향미 기자

의협 비대위, 대응 계획 논의

의사단체 공식 입장 발표 주목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증원관련 특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증원관련 특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정부가 내년도 의대 입시전형에서 각 대학별 증원된 인원에 대해 50~100% 범위 내에서 자율 모집을 허용하면서 사실상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안’을 풀었다. 두 달간 계속된 의·정 갈등이 해소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의료계는 일단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의대 증원 관련 특별 브리핑을 통해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금년에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8일 경북대, 경상국립대, 충남대, 충북대, 강원대, 제주대 등 6개 국립대 총장들은 증원된 내년도 입학 정원에서 50~100% 범위 내의 자율 모집을 허용해 달라고 건의했다. 6개 대학 외 다른 대학들의 참여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2000명 증원’을 추진하던 정부 입장에서는 먼저 물러선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서울 지역 의대를 제외한 32개 대학에 2000명 증원된 정원을 배분해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이번 조정은 2025학년도에 한해 자율 모집을 허용한 것으로, 애초 5년간 5058명의 정원을 유지해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확충한다는 의대 증원 계획에 변함은 없다고 설명했다. 현 시점으로 보면 2026학년도 이후에는 2000명 증원안이 적용된다는 의미다.

정부가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이면서 의료계가 이 조정안을 수용할지가 관건이 됐다. 한 총리는 의료계를 향해 “대학 총장님들의 충정 어린 건의에 대해, 이를 적극 수용한 정부의 결단에 대해 의료계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전공의, 의대생을 향해서는 조속한 복귀를 촉구하면서 “정부의 이번 결정은 어떤 주제든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가 모집 인원의 유연성을 제시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그간 학장, 교수, 총장님들이 말한 ‘정원의 유연성’에 대해 화답한 것이기 때문에 이걸 근거로 개별 대학 차원에서 학생들을 돌아오도록 설득할 명분이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2026학년도, 2027학년도 정원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에 의한 의료계의 통일된 안이 나오면, 열어놓고 논의하겠다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날 정부 발표 이후 의사단체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현재로선 의사단체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의 대화에 응하거나, 전공의·의대생들이 복귀할 가능성도 낮은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사단체들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해왔다.

김성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총리 말씀을 보면 대학 총장들이 제안해 정부가 수용한 걸로 돼 있는데, 일단은 입시전형에서 융통성을 부여해 선발권을 적용한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며 “총장들의 건의 이유는 한마디로 보면 ‘교육여건 미비’라는 것인데 대학은 그걸 확인하고 증원 수요를 내고 교육부는 그걸 심사하겠다고 해왔는데, 이번에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결국 2000명 증원의 합리적 근거가 없고, 증원 규모뿐만 아니라 정원 배분도 주먹구구로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런 점에서 이 제안은 ‘원점 재검토’라는 요구를 바꿀 사안은 아니지 않나.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분위기도 부정적이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정부가 2000명 증원을 과학적이라고 발표해왔는데,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해서 선발권을 넘겼다는 것은 그 자체로 2000명 증원안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증원이 조정돼 1000명이 되든 1500명이 되든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전공의들 분위기와 관련해서 그는 “대전협 7대 요구안에서 가장 첫번째로 의대 2000명 증원안과 필수의료 패키지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는데, 그 부분이 수용이 돼야 (전공의들이) 정부와의 대화든 복귀든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의학 교육의 질 저하 우려를 표명해온 의대 교수들의 입장에 이목이 쏠린다. 오는 25일 의대 교수들의 사직 효력이 발생해 실제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면 의료공백이 크게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백지화 상태에서 정원에 대해 논의하자는 입장은 처음과 같다”며 “증원이 어떤 데이터에 근거해 나온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정원이 줄어도 사직서 제출이나 진료 축소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의협 비대위는 오는 20일 회의를 열어 향후 대응 계획을 논의한다. 비대위 회의에는 대전협 대표와 전의교협 대표 등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논평을 통해 “모집인원 확정을 앞두고 돌연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를 빌미로 기존의 원칙과 결정을 번복한 채 백기를 든 것”이라며 “정부는 의사들의 불법 집단행동을 극복하고 필수의료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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