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당연한 대법원 판결 왜 이제야 했나”

김향미·김한솔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83·사진)에게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판결은 ‘좋은 뉴스’였다.

이 할머니는 2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처럼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왜 빨리 못하고 이제야 했나 싶다”며 “온갖 고생만 다하고…”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처럼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가 세간의 관심사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당연한 대법원 판결 왜 이제야 했나”

그러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이 할머니는 “문제 해결을 안 하려고 생각하니까 안된다고 하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가 없었다’는 거짓말만 자꾸 하고 있는데 그건 죄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1944년 16세에 대만으로 끌려가서 일본군 위안부로 고초를 겪다 해방이 된 뒤 부산으로 귀국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군인의 방에 끌려 들어가는 것에 반항하다 칼에 찔린 상처가 아직 남아 있고, 전기고문을 당한 후유증도 여전하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며칠 전 일본이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철거를 시도한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심란했다. 일본 의원들이 ‘위안부는 민간 업자가 운영한 것이다’ ‘한국인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한 얘기를 듣고는 몹시 화가 났다.

이 할머니는 “자기네 나라(일본)에 설치한 것도 아닌데 간섭을 하고, 일본이 20년 넘게 죄를 모르고 이러는 걸 보면 이젠 정말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카메라회사 니콘의 공모전에 당선된 재일 사진가 안세홍씨의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이 설명없이 취소됐다는 소식에도 화가 났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앞장선 주인공 중 한 명이다.

한국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상대로 ‘한일회담 문서 공개 소송’을 원고 대표로 제기해 2004년 2월13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승소했다. 이 할머니는 또 2006년 7월 당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외교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 재판에 대표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한국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헌재 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위안부 문제를 풀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이 할머니는 “외교통상부가 어느 나라 외교통상부인지 모르겠다”며 서운함을 표했다.

대구에 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대법원 판결 이후 일제피해자모임 참석차 대전에 머무르고 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 할머니는 지난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면서 일제 피해자들의 대표가 되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당시 출마의 변을 이렇게 적었다.

“전쟁은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그 폭력 앞에서 인권은 여지없이 짓밟히는 것이 통례이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본질적으로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 사죄를 받아냄으로써 명예를 회복하고 아직도 진행형인 일제 피해자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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