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 한국사회의 민낯 ‘세월호’

원인 규명에 2년… ‘효율’서 ‘안전’ 중시로 경영문화 바꿨다

아마가사키(효고현) | 윤희일 특파원

(8) 일본에서 배운다… JR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사고 후

지진·쓰나미·태풍 등의 자연재해와 늘 싸우면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 재해와의 오랜 싸움 속에서 구축해온 일본의 안전 의식과 시스템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107명의 희생자를 낸 2005년 4월의 JR후쿠치야마(福知山)선 열차 탈선사고와 전 세계를 방사선 공포로 몰아넣은 2011년 3월의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계기로 ‘안전대국 일본’의 신화는 무참하게 깨졌다.

일본 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JR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한 지 9년이 흘렀다. 이 철도를 운영하고 있는 JR니시니혼(西日本)은 사고 이튿날부터 지금까지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을 사고에 대한 반성과 향후 다짐으로 꾸미고 있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의 출발점이 바로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JR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 현장에 지난 15일 사고 당시 탈선된 열차가 충돌한 아파트 앞으로 열차가 지나고 있다. 2005년 4월25일 선로를 이탈한 열차가 아파트를 들이받아 107명이 숨지고 563명이 다쳤다.  아마가사키(효고현) | 윤희일 특파원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JR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 현장에 지난 15일 사고 당시 탈선된 열차가 충돌한 아파트 앞으로 열차가 지나고 있다. 2005년 4월25일 선로를 이탈한 열차가 아파트를 들이받아 107명이 숨지고 563명이 다쳤다. 아마가사키(효고현) | 윤희일 특파원

[심층기획 - 한국사회의 민낯 ‘세월호’]원인 규명에 2년… ‘효율’서 ‘안전’ 중시로 경영문화 바꿨다

▲ 107명 희생된 철도 최악 참사… 9년간 반성글
빡빡한 운행시간 느슨하게 조정 등 대대적 개혁

JR니시니혼은 이후 2년여의 조사를 거쳐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뜯어고쳤다. 사고 직전까지 ‘효율’과 ‘이익’을 중시하는 쪽으로 내달리던 경영문화를 다시 ‘안전’으로 바꿨고, 빡빡한 열차 운행일정을 대폭 조정해 기관사들에게 ‘여유’를 돌려줬다. 이 사고 이후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이런 모습은 세월호 참사에 이어 서울지하철 2호선 추돌, 충남 아산 오피스텔 부실시공 등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철저한 원인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민심 수습을 겨냥한 조직개편 등의 충격요법을 먼저 들고 나오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사고 원인을 먼저 하나하나 따지고, 또 거기서 얻은 교훈을 결코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안전의 시작일 겁니다.” JR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뒤 사고재발 방지를 위해 시민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아사노 야사카즈(72)의 이 말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보이는 듯했다.

■ ‘효율 중시’ 경영이 낳은 ‘인재’

2005년 4월25일 오전 9시18분 일본 효고(兵庫)현 후쿠치야마선의 쓰카구치(塚口)역에서 아마가사키(尼崎)역으로 가던 열차가 탈선해 철로 옆 아파트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107명(승객 106명, 기관사 1명)이 숨지고, 승객 562명과 근처를 지나던 행인 1명이 다쳤다. 사고 이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2년여에 걸쳐 실시한 조사에서 열차가 시속 70㎞ 이하의 속도로 진입하도록 돼 있는 곡선 구간을 시속 116㎞의 과속으로 진입하다가 탈선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나치게 빡빡한 운행일정 속에서 사고 직전 역에서 ‘오버런(멈추지 않고 더 달림)’을 범해 징계 처분을 받을 것을 우려한 기관사가 차장과 무선교신을 주고받는데 정신을 빼앗겨 뒤늦게 제동을 하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조사위는 사고 배경에 오버런 등의 ‘과오’를 범한 기관사에 대한 징벌성 일근교육, 타사와의 ‘경쟁’과 ‘수익’을 중심으로 구성한 열차 운행일정 등 ‘효율’만을 중시해온 회사의 기업체질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후쿠치야마선을 운영하는 JR니시니혼은 충돌 흔적이 남아 있는 아파트를 매입해 사고현장을 보존했고, 이 아파트를 ‘안전구축의 원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마가사키(효고현) | 윤희일 특파원

후쿠치야마선을 운영하는 JR니시니혼은 충돌 흔적이 남아 있는 아파트를 매입해 사고현장을 보존했고, 이 아파트를 ‘안전구축의 원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마가사키(효고현) | 윤희일 특파원

[심층기획 - 한국사회의 민낯 ‘세월호’]원인 규명에 2년… ‘효율’서 ‘안전’ 중시로 경영문화 바꿨다

■ 초·분 단위로 조정한 ‘안전’

지난 15일 오후 1시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아마가사키역 인근 사고 현장. 탈선한 열차가 충돌한 9층 높이의 아파트는 사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 있었다. 사고 이후 JR니시니혼이 매입한 아파트에는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아파트 옆 후쿠치야마선 철로 위로는 여전히 수많은 열차가 지나다녔다. 인근의 한 주민은 “사고 이후 변한 것은 열차 운행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JR니시니혼은 지나치게 이익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기관사가 잠시도 짬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든 열차 운행시간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사고 이후 다카라즈카(寶塚)~아마가사키 구간의 열차 운행 시간에 ‘여유’를 줬다. 특급열차의 경우 사고 이전에는 다카라즈카에서 아마가사키로 가는 데 13분15초가 걸렸지만, 지금은 15분20초 걸린다. 2분5초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쾌속열차의 운행시간도 16분25초에서 18분15초로 1분50초 조정됐다. JR니시니혼은 사고 이후 이 노선뿐 아니라 JR교토(京都)선, JR고베(神戶)선 등 모든 운행노선을 대상으로 열차 운행시간 조정을 단행했다. 짧게는 10초에서부터 길게는 2분5초까지 시간을 더 줌으로써 기관사 등 승무원들이 한결 여유를 갖고 열차 운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JR니시니혼 관계자는 “여유가 생긴 시간이 짧게는 몇 초에서 길어봐야 2분여에 불과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승무원들이 안전운행을 하는데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라며 “‘효율’ 중심의 경영방침을 ‘안전’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회사의 의지가 집약된 조치”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이 사고 이후 열차 운행시간 조정을 포함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풍토 조성’을 사고대응의 기둥으로 설정한 JR니시니혼은 ‘안전에 관해서는 뭐든지 하겠다’며 시스템을 바꿔나갔다. 안전운행의 필수 요소로 지목된 운전 상황기록장치 확충 작업도 진행해 지금까지 신칸센은 100%, 재래선은 90%까지 마쳤다. 사고 당시 기관사가 차장과 교신을 하다가 사고가 난 점을 감안해 열차 주행 중 기관사의 무선통신과 메모를 금지했다. 기관사가 새로 들어오는 경우 입사 3개월, 6개월, 1년, 2년 등의 간격으로 업무 역량은 물론 심리적 불안요소 등을 면밀하게 체크하는 시스템도 새로 도입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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