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시대에 휘말린 청춘의 사랑, 이 하나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오염시켰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JTBC 드라마 ‘설강화’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우려가 일었던 JTBC <설강화>가 지난 18일 첫 방영 이후 더욱 거센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급기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까지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며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JTBC 제공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우려가 일었던 JTBC <설강화>가 지난 18일 첫 방영 이후 더욱 거센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급기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까지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며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JTBC 제공

드라마 <설강화>가 12월18일 JTBC와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배우 정해인과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지수가 주연을, 유현미 작가와 조현탁 PD가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한편, 이 드라마의 방영 중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에는 12월21일 기준 32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시청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광고주들도 줄줄이 제작 지원을 철회하는 중이다. <설강화>는 지난 3월 시놉시스 공개 때도 방영 중지 청원이 올라와 20만명 이상이 동의한 적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드라마 하나에 두 번이나 방영 중지 청원이 올라오고, 많은 이들이 동의했을까?

민주화운동 폄훼하고 안기부 미화
특정 이데올로기의 선전·선동 위해
감성적 수단을 동원한 파시즘처럼
드라마라는 예술이 정치 도구가 돼

<설강화> 논란을 거칠게 요약하면 민주화운동 폄훼(역사 왜곡)와 군부 미화다. 드라마의 시공간적 배경은 1987년 서울, 대선 정국이다.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는 안기부에 쫓기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여대 기숙사에 뛰어든다. 임수호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한 은영로(지수)가 그를 숨겨주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데…. 당시 안기부가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워 잡아들였고, 국가폭력 희생자가 실존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스토리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드라마는 허구이고, 창작물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지금껏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가 역사를 기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데 유독 <설강화>가 논란인 이유는 이 드라마가 교묘하게 선을 흐리고 정교하게 악의적이기 때문이다.

<설강화>는 현실의 많은 맥락을 차용하고, 가치 판단을 애매하게 뒤섞고, 권력자의 논리가 진실인 세계관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자 주인공 영로의 원래 이름은 ‘영초’였다. 실존하는 민주화운동가 천영초의 이름과 같다. 굳이, 굳~이.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수정되었지만, 현실 기반의 허구를 다루는 제작진의 감각을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영초가 다니는 호수여대는 당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던 이화여대가 모델인데, 학교 기숙사는 순수하고 고귀한 여대생들이 머무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임수호가 베를린 출신 명문대 대학원생 신분을 쓴다는 설정은 ‘동백림 간첩조작 사건’, 임수호가 접근하고 교류하는 야당 총재 한이섭 역할 또한 당시 야당 소속이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설강화>는 현실의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모든 것은 드라마라며 적극적으로 탈정치화한다.

극중 호수여대 1학년생 은영로(지수)가 피투성이가 된 채 기숙사로 뛰어든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를 구해주는 장면. JTBC 제공

극중 호수여대 1학년생 은영로(지수)가 피투성이가 된 채 기숙사로 뛰어든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를 구해주는 장면. JTBC 제공

JTBC는 민주화운동 폄훼라는 지적에 대해 “간첩이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고 해명했다. 중요한 것은 임수호가 극중에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는 기여도가 아니다. 남파공작원 임수호가 학생 신분으로 남한 사회에 잠입했고 학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설정 자체다. 임수호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탄압이 실존하기 때문이다. 영로는 오빠가 데모하다가 잡혀갔다며, 그 기억 때문에 번번이 임수호를 돕는다. 그런데 진짜 간첩을, 그것도 학생으로 위장시켜서 심는다? <설강화>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운동권 학생 중에는 (실제로) 위장한 간첩이 있었다. 임수호의 고난과 운동권 학생의 고난은 ‘멋모르는’ 선량한 시민이 구별하기 힘들다. 안기부는 이를 찾아낼 의무가 있으며 추적은 정당하다.” 임수호가 도망치는 장면 위에 민중가요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삽입된 연출은 안기부의 관점을 재현하는 것에 가깝다.

‘그럴 만했다’는 당위가 주어지는 순간 가해와 폭력은 슬그머니 논쟁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큰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절차상 잘못 정도로 심각성이 축소된다. <설강화> 시놉시스 공개 당시 큰 비판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이자 안기부 요원인 이강무(장승조)를 ‘대쪽 같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조작과 폭력을 일삼는 기관에서 높은 위치에 오른 이가 ‘대쪽’ 같다는 것은 곧 그 기관의 규범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온갖 끔찍한 고문 기술을 개발하고 일삼았던 이근안이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말한 것과 통하는 지점이다. JTBC는 그가 간첩을 만들어내는 안기부에 환멸을 느껴 해외 파트에 간 것을 대쪽 같다고 표현했다고 하지만, 글쎄? 동백림 사건이 있었던 나라에서 안기부 직원의 근무처는 조작의 피해자가 국내에 있냐 외국에 있냐를 가를 뿐이다.

이강무는 중요 등장인물이고 애절한 멜로의 당사자다. 시청자들의 호감을 사야 하는 인물이다. 현대적 감수성에서 이강무는 ‘꽤’ 폭력적이긴 하다. 그래서 안기부 미화가 아니라는 주장도 더러 보인다. 하지만 등장할 때마다 꽃이 떨어지고 선행을 해야만 미화가 아니다. 그 시절 안기부가 그 정도로 묘사된다는 것부터가 폭력을 수용 가능한 범위로 조물조물 무쳐서 입에 쏙 넣어주는 미화의 손맛이거든요. 입에 좀 맞으신지? ‘진짜 간첩’이라는 설정이 있는 한, 이강무의 폭력성은 철저한 프로 의식 혹은 좀 거친 매력 정도로 허용된다. 이러한 관용은 군인 출신 정치인 인물에게도 적용된다. 군인이 사람을 죽이던 시절, 육사 핵심 사조직에까지 소속된 이들은 어떤 인물일까? 인물 묘사를 보자. “두둑한 배짱과 담력을 가졌다”, “‘호랑이 장군’이라 불릴 만큼 기백 또한 대단”, “한국대에 편입해 국문학을 전공했을 정도로 시 좋아하고 유순하고 섬세”하단다. 권력을 매력적으로 연출하고, 공감하거나 이해할 여지를 만들어준다. <설강화>의 이런 정성은 ‘정치의 미학화’로도 독해할 수 있다.

‘그 때는 진짜 간첩이 있었으니까
국가기관도 그럴 만한 사정 있었다’
‘설강화’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이 위험한 욕망을 중화하려 한다
교묘하게 정교하게 악의적이게

베냐민(W Benjamin)은 “특정 이데올로기의 선전 선동을 위하여 미적이고 감성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파시즘의 전략”을 ‘정치의 미학화’(이전 번역에서는 ‘심미화’)라고 명명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레니 리펜슈탈(L Riefenstahl)이 만든 <의지의 승리>라는 다큐멘터리다.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이 영화는 예술적으로 탁월한 완성도를 뽐낸다.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연출과 이미지는 대중을 사로잡았고, 나치즘을 효과적으로 선전했다. ‘미학’이란 단순히 아름답게 가장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정치의 미학화’는 정치적인 것을 어떤 감각적 지각의 형태로 조직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선거철에 서민의 손을 잡거나 재난 지역에 가서 눈물짓는 정치인의 모습도 정치의 미학화에 해당한다. 독재자가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학살을 일삼을 때조차, 카리스마와 결단력으로 연출되면 미학화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정꾸’(정치 꾸미기)다. <설강화>는 언뜻 보면 드라마라는 허구의 예술이 정치적 도구가 된 것 같다.

베냐민적으로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정치의 미학화 사례이다. 독재 시절 권력자도 멋있을 수 있고, 일방적 가해자로 보이는 국가기관에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진짜 간첩이 있었으니까)는 정치적 메시지가 너무 뚜렷하다. 허구를 허구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배우들의 비주얼과 자본이 투입된 연출은, 설레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이 위험한 욕망을 중화하려 한다.

<설강화>는 대놓고 악이 선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미화가 아니고 사랑 이야기라는 해명은 나름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 폭력의 주체가 퍼뜨렸던 이야기가 진실로 작동하는 세계관을 만들고,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 ‘악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설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한열 열사 측은 21일 “광주항쟁을 포함한 민주화운동은 독재자가 시민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것에 대해 대항하는 저항운동으로 이것을 북한과 스토리상 연관을 짓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이자 모욕”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주연 배우의 팬덤이 이한열열사기념관에 항의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청자들이 한류를 겨냥한 <설강화>의 문제점을 영어로 번역해 알리고, “미화된 나치와 유태인 여성의 로맨스”라는 비유로 외국인의 이해를 도우며, 불매 리스트를 작성해 광고주를 압박한다. 정치의 미학화에 대항하는 ‘예술의 정치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예술이 사회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고, 실제적인 삶과 밀접하게 상호 작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예술에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대중 역시 예술의 정치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자유가 있다. <설강화>는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결코 예쁘게 꾸며서는 안 되는 사건이 있고, 서사를 주지 말아야 할 가해가 있다. 지금도 국가폭력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공작이라고 굳게 믿는다. 비극적인 시대상에 휘말린 청춘들의 사랑 하나를 표현하고자, 너무 많은 것을 오염시켰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