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런 개그…‘동남아인 희화화’에 상처받는 외국인들

박채연·이유진 기자

개콘 ‘니퉁의 인간극장’ 등 외국인 여성 흉내 낸 캐릭터 인기

이주민 “한국 사람·문화 좋아해서 왔는데…무시당하는 느낌”

한국인도 “보기 불편” 반응…일각선 “시대착오적 개그” 지적

KBS2 <개그콘서트>의 ‘니퉁의 인간극장’에서 연기자들이 필리핀 니퉁을 소재로 한 연기를 하고 있다(위 사진). <SNL 코리아 시즌4>에서 연기자들이 베트남 유학생 응웨이 기자와 아나운서 역할을 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쿠팡플레이 유튜브 채널 캡처

KBS2 <개그콘서트>의 ‘니퉁의 인간극장’에서 연기자들이 필리핀 니퉁을 소재로 한 연기를 하고 있다(위 사진). <SNL 코리아 시즌4>에서 연기자들이 베트남 유학생 응웨이 기자와 아나운서 역할을 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쿠팡플레이 유튜브 채널 캡처

“우리 아들 돈 빨아먹으려고 그러지?” “니똥인지, 니퉁인지.”

한국말이 어눌한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니퉁(김지영)에게 시어머니(김영희)가 다그치며 이렇게 말한다. 지난 12일 3년4개월 만에 방송을 재개한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니퉁의 인간극장’은 7.0%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보였다. 니퉁과 남편, 시어머니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 코너는 유튜브 채널 ‘폭씨네’에서 인기를 끈 니퉁 캐릭터를 공개 코미디 무대로 옮겨온 것이다.

“벹남(베트남)에서는 존경한다는 뜻이 니 잘났다예요~”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4>에서는 베트남 유학생 응웨이 기자(윤가이) 캐릭터가 등장한다. “K팝을 좋아해 6개월 전 한국에 유학을 왔다”는 이 캐릭터는 일본인·이탈리아인·중국 동포 등을 흉내 낸 다른 어학당 친구들과 어울린다.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동남아시아 여성을 흉내 낸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 댓글 등에선 “재밌다” “웃기다”는 반응이 이어지지만 경향신문이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대면·화상 인터뷰로 만난 외국인들은 이주외국인을 희화화하는 이들 캐릭터에 마음 편하게 웃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 원모씨(24)는 SNL 응웨이 기자에 대해 “화가 났다. 베트남 사람들의 말투와 하나도 똑같지 않다”며 “한국 사람과 문화를 좋아하고 존경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저희 모습으로 장난하는 거냐”고 했다. 몽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떠르지 재벤(52)는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은 우리를 무시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어설픈 일반화’가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는 평도 나왔다. 떠르지씨는 니퉁 캐릭터에 관해 “시어머니에게 당당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좋다”면서도 “이주여성이 모두 시어머니를 부정적으로 보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국제결혼은 무조건 고부갈등이 벌어질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을 따라 하는 개그는 차별과 조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네팔 출신 우다야 라이 전국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은 “공장이나 일터에서 이주노동자의 말투를 따라 하며 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김춘옥 충남이주여성상담소 활동가는 “이런 프로그램을 본 한국 사람들이 ‘거기(베트남)서 온 사람들은 진짜 남편 돈 빨아먹느냐’는 질문을 실제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특히 흑인과 동남아시아인을 희화화한 캐릭터는 이전에도 있었다. 1980년대 시커먼스, 2000년대 ‘사장님 나빠요~’를 유행어로 한 블랑카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은 2024년부터 전체 인구 5% 이상이 장·단기 체류 외국인으로 구성된 ‘다인종 국가’가 된다.

일각에서 이런 개그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필리핀계 영국인 마크 투아존씨(22)는 ‘니퉁의 인간극장’을 보고 “사람들은 미디어의 부정적인 묘사나 고정관념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이런 개그를 보면 ‘한국 사회가 여전히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낮춰보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베트남·필리핀 현지에서도 이 같은 개그에 부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응웨이 기자가 나오는 <SNL 코리아 시즌4>의 경우 베트남어 자막과 함께 베트남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빠르게 전파됐다. 원씨는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베트남 사람들을 바보같이 본다고 느끼는 반응들이 많았다”고 했다.

한국인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보기 불편한 개그”라는 반응이 나왔다. 직장인 김동휘씨(25)는 “희화화할 대상이 소수자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단일민족 국가라는 인식이 강해서 타 문화권에 대한 배려를 여전히 어색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누리꾼들도 ‘니퉁의 인간극장은 시대착오적이며 혐오를 조장한다’ ‘개콘을 보면서 웃기엔 국민의식 수준이 너무 높아져버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진원 뉴욕시립대 사회학 교수는 “블랑카 캐릭터의 경우 풍자와 해학으로 일컬어졌지만, 엄밀히 보면 한국 사람이 (외국인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문제”라며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아시안계가 아시안계 어머니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백인 남성이 나와서 하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개그의 수준도 세계화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한류로 외국에서도 한국 문화와 콘텐츠에 더욱 주목한다”며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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