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저서, 처음부터 이적도서였다?

정용인 기자

“아침 8시쯤이었던가 집에서 부대로 전화가 왔어요.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이상한 데 가입했냐’고.”

기자와 자리를 마주한 서울대생 이규열씨(27)의 말이다. 압수수색을 당하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2012년 4월 19일이다. “그 뒤 행보관 원사가 담배 한 대 태우자고 했습니다. 아,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요. 그분이 담배 태우면서 ‘너 혹시 한총련이었느냐’고 묻더군요. 솔직히 말했습니다. 학생운동을 했지만 한총련은 아니었다고. ‘종북만 아니면 됐다’고 답하더군요.” 몇 시간 뒤 연대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기무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이씨는 지난주 이 코너에서 다룬 책의 주인이다. 막스 베버의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날 그의 수양록(일기), 그리고 편지들과 함께 관물대에서 ‘털렸다’. 조사는 8일 동안 진행됐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책을 하나하나 증거로 제시하면서, 어떻게 취득했고, 무슨 목적으로 읽었냐고 묻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이게 나오니 웃긴 거예요. 보자마자 ‘그건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데) 도움 안 될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때 돌아온 답이 이겁니다. ‘그건 범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고’.”

‘어느 국방부의 흔한 금서’라는 제목으로 퍼진 사진. 책의 주인은 서울대생 이규열씨로 밝혀졌다. / 이규열 페이스북

‘어느 국방부의 흔한 금서’라는 제목으로 퍼진 사진. 책의 주인은 서울대생 이규열씨로 밝혀졌다. / 이규열 페이스북

재판이 마무리되는 데는 꼬박 2년이 걸렸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사회주의 이적단체에 가입했다는 것. 최종 결론은 무죄. 그러나 2008년 촛불시위, 용산시위에 참여한 집시법 위반 혐의는 인정되어 50만원 벌금 선고유예를 받았다. “검찰에 전화해 항의하니 책은 재판이 다 마무리돼야 돌려줄 수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8월에서야 책을 돌려받을 수 있었어요.” 지난주부터 궁금한 핵심 의문은 이것이다. 막스 베버 책은 도대체 왜 압수해갔을까. 기무사에 물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돌아온 답.

“확인해보니 착각은 아닙니다.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를 혼동했다든지 그런 건 아니었답니다.” 기무사 관계자가 내놓은 다음 답이 더 깜짝 놀랄 소리였다. “공안문제연구소라고 있어요. 종전에 거기에서 이 책을 판단한 것이 있는데, 이적표현물과 연관된 의심스러운 표현이 있어 압수수색 대상으로 올라 있답니다. 수양록이나 편지 역시 수사상 필요에 의해 적법하게 압수된 것이었고, 수사가 끝난 뒤 바로 환부해줬다고 합니다. 책은 원래 재판이 종료될 때 반환하는 것이 원칙이고요.”

그러니까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수사지침 상 원래 이적도서 쪽으로 규정됐던 도서라는 말. 공안문제연구소는 경찰청 산하기구였다. 현재는 치안정책연구소에 통합돼 사라졌다. 치안정책연구소 담당자를 찾아 문의했다. 그는 곤란해 했다. “글쎄요. 전혀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자료도 남아 있지 않고요. 지금은 치안 관련 정책만 연구할 뿐인데요.” 문서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확정될 수 없지만, 기무사 쪽 주장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티즘…>이 문제도서로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린 지금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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