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 담긴 촛불혁명 1년의 기록

백철 기자
영화 <광장@사람들>에서 박진, 김덕진 두 사람이 촛불혁명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시네마달

영화 <광장@사람들>에서 박진, 김덕진 두 사람이 촛불혁명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시네마달

지난해 10월 29일, 1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집회가 열렸다. 이후 6개월, 23차에 걸쳐 매주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박근혜 퇴진 범국민대회는 문자 그대로 ‘범국민’ 대회였다. 매번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들었다. 집회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은 시민운동가, 노동운동가들도 연단에 올랐지만, 평범한 시민들도 마이크를 잡고 수많은 인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평범한 시민들의 자유발언

당시 범국민대회 준비에 앞장섰던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은 대선 직후인 지난 5월 말 해산했다. 하지만 몇몇 활동가들은 지금도 퇴진행동기록기념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촛불혁명의 기억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책과 영상 등 다양한 방식의 기록물을 정리하고 있다. 기록기념위는 내년 3월까지 활동할 예정이다.

퇴진행동의 기록물 중에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담긴 기록도 있다. 지난해 12월 촛불집회에서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연단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10월 말에 처음 왔을 때 저는 너무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1차, 2차, 3차를 나오면서 저처럼 점점 깨어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저들이 두려운 것은 100만, 200만이 모이는 게 아니라 우리가 깨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발언이 기록된 <광장에 서다>(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영화 <광장>의 첫 작품)에서 이 시민은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평소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듯이 차분한 말투였지만 발언 중간중간 약간 자신감이 섞인 흥분감도 느껴진다. 이 시민은 자신의 발언 요지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손팻말의 앞에는 ‘박근혜 즉각퇴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등의 구호도 적혀 있다. 처음엔 손팻말만 쳐다보던 이 시민은 발언이 길어지면서 청중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어갔다. 오른쪽 구석에는 시민의 발언을 수화로 통역해주는 이의 모습도 보인다.

다음 장면에는 60대 여성으로 보이는 이의 발언이 나온다. 이 시민은 “저는 새누리밖에 모르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농락당하고 속았어요. 공무원에게 속고, 구청장에게 속고, 국회의원한테 속고, 대통령에게 속고…” 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 시민은 앞 사람과 다르게 표정을 크게 찡그리고 매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속고”를 반복하는 부분에서 청중들은 발언에 호응하듯 ‘박근혜는 하야하라’라고 적힌 빨간 손팻말을 높이 들었다. 너무 흥분했기 때문인지 이 시민은 발언 중간에 목소리가 갈라지기까지 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남긴 자유발언 내용을 글자로 기록하는 것도 값지고 의미 있다. 하지만 글자만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촛불혁명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정확히 전하기가 쉽지 않다. 발언자의 표정이나 어조, 청중들의 반응까지 종합적으로 살피려면 영상기록만큼 좋은 게 없다.

■영상활동가 80여명이 기록에 참여

10월 28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될 다큐멘터리 영화 <광장>과 <모든 날의 촛불>은 영상 활동가들이 담은 박근혜 퇴진 촛불혁명에 대한 기록물이다. 두 영화에는 모두 13편의 중·단편 영화가 들어 있다.

두 편의 영화를 만든 곳은 다름 아닌 퇴진행동이다. 정확히 말하면 퇴진행동에서 영상기록을 담당했던 퇴진행동 미디어팀에서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고 결과를 냈다. <모든 날의 촛불>의 공동 기획자이자 <광장>의 배급 프로듀서인 넝쿨(활동명) 감독도 퇴진행동 미디어팀에서 팀장을 지냈다.

넝쿨 감독은 “최대한 이 촛불의 흐름을 꼼꼼하게 기록하자”는 취지로 영상 활동가들이 미디어팀에 모였다고 말했다. 넝쿨 감독에 따르면, 박근혜 퇴진 촛불이 처음 일어날 때만 해도 영상 활동가들은 개별적으로 집회를 찍었을 뿐 조직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19일 4차 촛불집회 이전부터 퇴진행동 내에 미디어팀이 생겨나 조직적으로 활동하게 됐던 것이다.

넝쿨 감독은 “미디어팀에 소속된 영상 활동가만 10여명이 있었고, 미디어팀 소속은 아니지만 같이 활동했던 분들까지 합하면 80명 정도가 영상기록에 힘썼다. 매주 집회 때마다 10~15명 정도가 현장을 기록했는데,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한 날이나 박근혜 파면이 결정된 때에는 20여명 정도의 활동가들이 현장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촛불혁명 당시,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본집회가 열렸다. 그 전에는 본집회장 인근 곳곳에서 사전집회가 열렸다. 퇴진행동 미디어팀 등 영상 활동가들은 각자 좀 더 관심있는 분야에 따라 사전집회를 스케치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던 이들은 집회장에 찾아온 시민들의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았고, 여성주의 운동에 관심이 있던 활동가는 페미니즘 단체의 사전집회를 촬영했다. 친박집회가 비슷한 시간대에 열렸을 경우, 친박집회를 찍는 활동가도 있었다. 서울 외 지역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현지에서 촬영한 이들도 있었다.

본집회가 시작할 때가 되면 미디어팀 활동가들은 애초 정해진 위치에 맞게 자리를 잡고 촬영을 시작했다. 어떤 이는 무대 정면을 찍고 또 다른 이는 집회장 옆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고층빌딩 위에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찍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집회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될 무렵, 영상 활동가들은 다시 정해진 위치로 이동한다. 행진 대열마다 방송차가 배치됐고, 영상 활동가들은 방송차에 올라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았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경험 큰 몫

퇴진행동 미디어팀에서 활동했던 김환태 독립영화 감독은 “예전에도 대형 집회를 영상으로 담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방송차에 올라서 미디어팀 조끼를 입고 촬영한 것은 처음이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촛불시민들의 행진 모습을 보고 ‘내가 정말 역사의 현장에 있고 이것을 내가 직접 기록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넝쿨 감독은 “미디어팀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상 활동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데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전남 진도 팽목항, 서울 광화문광장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활동을 기록하던 영상 활동가들이 조직적으로 모인 것이 4·16연대 미디어위였다. 넝쿨 감독은 “4·16 미디어위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퇴진행동 미디어팀에 대부분 합류했고, 퇴진행동 미디어팀 1기 팀장인 김일란 감독도 4·16연대 미디어위에서 활동했다”며 “오랜 기간 사회의 여러 현장에서 독립 다큐 감독들이 활동을 해 왔고, 4·16 미디어위에서 함께한 경험이 있었기에 촛불이라는 사회운동을 조직적으로 공식기록으로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퇴진행동에서 제작한 영화 <광장>과 <모든 날의 촛불> 포스터. / 시네마달

박근혜 퇴진행동에서 제작한 영화 <광장>과 <모든 날의 촛불> 포스터. / 시네마달

퇴진행동 미디어팀의 영상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광장>은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다루려 했다. 첫 작품인 <광장에 서다>(12분, 감독 김철민)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촛불집회 영상기록물에 가깝다. 각계각층 시민들이 연단에서 한 자유발언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촛불혁명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했다. <광장의 닭>(12분, 감독 황윤)의 경우 촛불혁명에서 많이 등장한 ‘닭근혜’라는 단어에서 ‘동물권’에 대한 문제인식을 펼쳐나간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게 된 활동가의 작품도 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14분)의 김상패 감독은 영화에서 “쉰여섯에 처음 들어본 카메라, 광화문광장은 나의 실습무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촛불혁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집회를 조직한 이들도 영화에 출연한다. <모든 날의 촛불>의 첫 작품인 <광장@사람들>(57분, 감독 김환태)은 촛불집회의 여러 실무를 담당했던 박진·김덕진 두 사람의 입을 통해 촛불집회의 의의를 설명하는 작품이다. “앞으로 이 사회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사람들은 언젠가 온다”는 사회운동가들의 신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6개월간 찍은 분량은 7TB를 넘어

현재 제작된 다큐멘터리 두 편의 분량을 합치면 4시간이 조금 넘는다. 영상 활동가들이 남긴 전체 영상기록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넝쿨 감독에 의하면, 퇴진행동 미디어팀과 여러 영상 활동가들이 6개월간 남긴 영상기록의 전체 분량은 7테라바이트(TB)를 넘는다고 한다. 1TB가 1024기가바이트(GB)이고, 상업 장편영화 1편의 용량은 많아야 4GB 정도다.

많은 분량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영상 활동가들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1991년부터 독립 다큐영화를 만들어온 김환태 감독은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었고, 오래 전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힘들게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쁘게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영상 활동가들에게 ‘보람’과 ‘헌신’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김환태 감독과 형·동생 사이였던 박종필 감독은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퇴진행동 미디어팀 출범에 큰 역할을 한 김일란 감독의 위암 수술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넝쿨 감독은 김일란 감독과 함께 ‘성적소수문화 인권연대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실 독립 다큐영화로 수익을 내는 건 어려운 구조이고,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는 파이 자체도 매우 작다. 감독 인건비까지 책정하면 제작비가 너무 높아지기 때문에 생계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고 감독 인건비는 그냥 ‘깔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연분홍치마는 13년을 이어온 단체이지만, 구성원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넝쿨 감독은 “매달 활동비로 1인당 120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조금은 안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에 후원 주점도 개최하고 정기 후원회원을 모집하고, 부족한 부분은 영상 제작이나 강의 등으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한편, 퇴진행동기록기념위는 미디어팀 등 영상 활동가들이 만든 영상기록들을 조만간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넝쿨 감독은 “이 방대한 기록은 특정 조직이 보관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오랫동안 기록들을 유지·보관할 수 있는 국가기관에 맡기자는 데 뜻을 모았다”며 “서울시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영상기록들을 넘기고, 이 기록들을 보고 싶은 시민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 백서 어떻게 만들어지나

퇴진행동기록기념위원회는 촛불혁명을 기록하는 백서를 제작하기로 했다. 기록기념회에 따르면, 백서 제작에는 총 1억67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이 예산은 500페이지 2권 분량에 달하는 백서의 인쇄비, 발송비와 집필자의 원고료, 편집비가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기록기념위는 올 연말까지 백서 제작을 완료하고,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대학에 배포하기로 했다. 또한 일반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자책 형식으로 공개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백서의 1권은 6개월에 걸친 촛불집회에 대한 일종의 역사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백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순 없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모든 날의 촛불>의 첫 작품 <광장@사람들>에서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광장@사람들>에는 박진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현 기록기념위 백서팀장)과 김덕진 퇴진행동 대외협력팀장이 등장한다. 영화는 두 사람이 지난해 10월 29일 열린 1차 박근혜 퇴진 범국민대회부터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주요 장면을 되새기며 그 의미에 대해 대담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영화에서 박진 팀장은 “공포정치가 (박근혜 정권) 4년을 지배했고, 억눌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마음이 막 억눌려 있는 그런 때에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팩트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두 사람은 박영수 특검 출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등 주요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파면 여부가 결정될 즈음 격화된 친박집회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는다. 김덕진 팀장은 “집회 때마다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거짓말, 촛불은 태극기 바람에 꺼진다는 말을 한다. 옆에서 세 배 넘는 사람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백서의 2권은 퇴진행동을 비롯한 단체들이 발표한 여러 가지 입장문이나 홍보물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박진 백서팀장은 “서울 광화문집회에 관한 기록들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벌어졌던 여러 촛불집회 관련한 기록물들도 최대한 담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백서에 그동안 공개된 자료 이상으로 퇴진행동에 관한 생생한 기록물들이 포함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지난해 12월 박진 팀장은 “퇴진행동 내부의 회의록이나 시민운동을 시작하려는 시민들에게 전해주고픈 노하우 등도 백서에 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박 팀장은 “백서에 기본적으로 담을 자료만 해도 정리할 양이 많아서 회의록이라든가 노하우까지 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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