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숭한 짓, 성폭력이구나”…‘용기의 언어’ 된 미투

김지혜 기자

몸 더듬던 한의사·허벅지 만지던 상사 ‘성범죄 인지’

‘미투 운동’ 확산에 그동안 숨겨왔던 피해사례도 봇물

“동네 한의사가 하던 그 ‘숭한 짓’, 예전에는 뭔지 몰랐는데 이제 보니 바로 ‘미투’였구먼.”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는 최근 노인 여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들의 몸을 상습적으로 더듬던 한의사의 추행을 ‘숭한 짓’으로만 생각해왔다는 이 여성은 최근 언론을 통해 ‘미투 운동’을 접하고 나서 그것이 성추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원 김모씨(29)는 회식 때마다 옆자리에 앉아 은근히 허벅지를 만지던 상사의 ‘못된 손’이 직장 내 성추행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참고 넘길 일이 아니라 고발해야 할 성폭력이라는 것을 미투로 알게 된 것이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혐의를 폭로한 지 한 달. 사회 전 분야로 번진 미투 운동은 이제 성폭력 피해를 말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고 있다. 미투 운동이 대중화되면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그것이 성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거나 피해를 호소해 구제받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인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성폭력 교육의 부재와 만연한 통념 때문에 그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받은 피해를 ‘성폭력’이라 이름 붙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성폭력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성폭력은 낯선 이에게 흉기로 위협받아 당하는 강간을 의미한다’ 등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피해 여성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과연 성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자기 의심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다양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미투 운동의 대중화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피해 역시 ‘성폭력’이라 이름 붙이고 더 나아가 ‘나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과 용기를 얻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투 운동 이후 묵혀두었던 성폭력 피해를 말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들에는 피해 고발 상담 건수가 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학교·가정·직장 등에서 일상적으로 겪은 성추행, 성희롱 피해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국 여자 90% 이상이 성추행, 성희롱 경험이 있다”는 배우 김여진씨의 트윗처럼 성폭력 피해를 일상적으로 경험해온 한국 여성들의 미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한국 여성들의 피해 실태를 파악한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조사는 평생 한 번이라도 신체적 성폭력(성추행 포함) 피해를 입은 여성은 전체의 21.3%, 성희롱을 겪은 여성은 전체의 7.2%라고 밝혔지만 여성계는 실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본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가부 실태조사는 표본이 적을 뿐 아니라 국제표준에도 맞지 않는 문항으로 실시돼 정책 연구자마저 인용하지 않는다”면서 “성폭력 피해 실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를 갖춰 미투에 화답하는 적절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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