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 짐승"… 총리실 '불법촬영물 근절' 만화 누리꾼 비판에 삭제

국무총리실이 불법촬영물 소비를 가볍게 묘사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었다가 누리꾼들의 항의를 받고 삭제했다. 해당 콘텐츠는 불법촬영물 소비를 ‘한때의 추억’으로 묘사하거나, ‘남성의 욕망’으로 봤다.

국무총리실이 지난 25일 웹하드 카르텔 근절 대책을 홍보하기 위해 공개한 카드뉴스 형식의 콘텐츠. 트위터 갈무리

대한민국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공식 트위터계정(@PrimeMinisterKR)은 지난 25일 ‘직박구리 폴더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카드뉴스 콘텐츠를 올렸다. 만화 형식으로 된 이 콘텐츠는 전날 방송통신위원회와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 발표한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총리실은 이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해마다 늘어가는 불법촬영물 피해, 그 악순환의 고리를 정부가 끊겠다”고 썼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는 “불법촬영물 범죄를 보는 총리실의 시각이 안이하다”는 비판 여론이 나왔다. 불법촬영물을 담아둔 폴더를 “누구나 한 번쯤 간직했던 비밀”로 표현하거나,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는 행위를 욕망이나 본능으로 묘사한 부분이 문제로 지적됐다. 카드뉴스 속 여성은 연인관계인 남성의 컴퓨터에서 불법촬영물을 확인하고는 “오빠 이 짐승”이라며 울먹거린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29일 비판 성명을 내고 “여전히 이 사회와 국가 기관이 불법촬영물의 유통 및 소비를 하나의 유머코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남성이 여성의 ‘칭찬’을 받는 부분도 문제가 됐다. 남성은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음을 안 후 ‘직박구리 폴더’를 지우기로 한다. 여성은 이러한 결정을 ‘멋있다’고 추켜세운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처벌받지 않기 위해 이제서야 (불법촬영물을 모아둔) 폴더를 삭제한 남성에게 대다수 피해자인 여성이 ‘오빠 너무 멋져’라는 말을 하게 하냐”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게 멋있는 행위냐”고 말했다. 한사성도 “불법촬영물 유통 및 소비를 근절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행위를 남성에게 기대어 해결하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29일 페이스북에 발표한 총리실 광고 비판 성명의 일부. 한사성 페이스북 갈무리

총리실 관계자는 “정부의 불법촬영물 근절 의지를 국민들에게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총리실 차원에서 제작한 콘텐츠”라며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들께서 불편해하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으며 불법촬영 문제를 가볍게 다루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총리실은 한 트위터 사용자로부터 “성범죄를 유희화하고 성범죄자를 비호한다”는 지적을 받고 지난 28일 콘텐츠를 삭제했다.

불법촬영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불법촬영 발생 건수는 2013년 4823건에서 지난해 6458건으로 약 1.3배 증가했다.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된 영상물이 웹하드를 통해 판매·유통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의 2차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불법촬영물을 찍고 유포하는 것 뿐 아니라 시청하는 것도 디지털 성폭력으로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